호남 반도체 산단 성공요건 '인·수·전'...부메랑 된 '탈원전·4대강'

[the300] [정책의 탈정치화 下] (종합)
(전남광주=뉴스1) 김태성 기자 = 정부는 6일 광주 군공항 부지에 호남권 반도체 산업단지를 조성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광주 군공항 활주로와 주변 부지의 모습. 2026.7.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전남광주=뉴스1) 김태성 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800조원을 투입해 건설하는 서남권(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필수 성공 요건은 이른바 '인·수·전(인력·용수·전력)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5일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기업은) 전기와 용수, 인재와 땅 등 조건을 갖춘 곳이 있다면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 투자를 유인하는 정부의 '인수전' 인프라 지원 정책이 상호 정합성을 유지해야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재명 정부는 집권 2년차를 맞아 반도체 등 첨단산업 육성에 국가적 명운을 걸고 인프라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과거 진보 정권이 고수한 에너지·수자원 정책이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탈원전'과 함께 '4대강 보' 해체 논란이 충분한 전력 및 용수 공급을 사실상 가로막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국가적 어젠다인 에너지와 국가 수자원 관리 정책이 국익과 미래가 아닌 이념과 정치 논리에 휘둘린 탓이다. 진보 진영의 신성 불가침 의제였던 환경과 생태 중심의 정책 의제가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를 시험대에 올린 셈이다.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차질없는 이행을 위해선 탈원전과 4대강 자연화라는 정치적 도그마에서 벗어나 국익에 부합하는 합리적 정책 결정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친환경 생태주의 등 이념에 집착할 경우 지역 균형발전과 경제 대도약의 국가 성장 전략인 3대 메가 프로젝트가 실패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는 "실용의 요체는 정책의 순긍정 효과가 큰 것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탈원전'과 '감원전' 기조에서 전환해 신규 원전 추가 건설을 포함한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검토 중이다. 영산강과 섬진강 수계 활용과 댐 건설 등 수자원 정책의 전면 재검토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유 전 부총리는 "과거 노무현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처럼 정부가 이념과 정치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국익 우선'의 원칙을 천명하고, 긍정 효과가 부정 효과보다 가장 큰 정책 젠다와 수단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4대강 보 위로 4번 뒤집힌 물정책...반도체 앞에 청구서가 놓였다
"말이 좋아 12년이지, 절대 쉬운 얘기가 아니다. 용인도 아직 후반부 용수와 전기가 완벽히 갖춰지지 않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근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완공을 12년 앞당기기로 한 데 대해 한 말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3대 메가 프로젝트의 핵심인 서남권(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에 가장 큰 걸림돌도 결국 용수(물)와 전력이란 얘기다.
공업용수 부족 문제는 산업화 이후 계속해서 따라붙은 국가적 과제였다. 지난 2009년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4대강 살리기' 사업도 홍수와 가뭄 대책, 수질 개선 목적 등이 제시됐으나 출발은 '수자원 확보'였다.
당시 4대강 사업의 핵심은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본류 준설과 16개 보 설치다. 제방 보강과 농업용 저수지, 환경기초시설 확충 작업도 포함됐다. 2011년 본류 공정률이 96%였다. 2012년 상반기에 16개 보와 본류 공사가 마무리됐다. 영산강 승촌보·죽산보도 이 때 완성됐다.
공과는 선명했다. 준설과 제방 보강, 수위 유지를 통해 용수 확보와 치수 능력을 높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물 체류시간이 길어지며 녹조가 창궐했다. 유명한 '녹조라떼'란 말이 이 때 나왔다. 강 바닥 골재 채취 등에 따른 생태계 훼손 지적도 제기됐다. 지역 수요와 무관한 토목사업도 적잖았다. 사업추진 속도와 경제성 평가를 둘러싼 논란도 컸다.
객관적 평가를 단숨에 집어삼킨 건 바로 정치였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집권과 동시에 4대강 사업을 대표적 적폐로 규정하고 단계적으로 보를 트기 시작했다. 집권 2년 뒤인 2019년 2월에는 금강과 영산강 3개 보를 헐겠다고 했다. 2021년 1월 죽산보 해체와 승촌보 상시개방을 결정했다. 4대강 자연화였다.
이미 완공돼 운영되던 국가 수자원시설을 폐기·축소하는 방향으로 단숨에 국가계획이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사업 공과를 시설과 기능에 따라 평가할 여유는 없었다. 한 야당 관계자는 "4대강 전체가 그저 각 정치 진영에서 소비되는 선악의 상징이 된게 이 시점"이라고 했다.
정권이 바뀌자 4대강의 운명은 또 달라졌다. 2023년 윤석열 정부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결정에 문제를 지적했다. 물관리위는 죽산보 해체 결정을 취소했다. 승촌보 상시개방도 백지화됐다. 오히려 가뭄과 홍수 등 위기 대응에 4대강 보를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오락가락은 이어졌다. 지난해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다시 4대강 재자연화 방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다만 최근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중심에 둔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보다 정밀한 수자원 관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지난 15년 간 4대강 보는 그대로 서 있었으나 보 위로 △건설해서 활용하겠다는 정책 △부수고 상시 개방하겠다는 정책 △다시 해체 결정을 취소하고 치수에 활용하겠다는 정책 △다시 재자연화 하겠다는 정책이 쉴 새 없이 오간 셈이다.
보를 개방하느냐 마느냐에 각각 맞춘 취수장과 배수장 수리, 대체 용수 대책 수립, 수질과 수중생태계 조사, 경제성 분석 등이 각종 위원회와 연구기관 용역을 통해 반복해서 이뤄졌다. 감사와 재검토도 적어도 한 두번 씩은 따라붙었다. 모두 막대한 비용이다.
눈에 보이는 비용보다 더 큰 것은 불확실성에 따른 청구서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호남지역 연구자는 "인근 농민들은 어떤 수위를 전제로 농사를 지어야 하는지, 지자체는 어떤 치수사업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며 "영산강이 수자원이냐 아니냐를 놓고 싸우던 판"이라고 했다.
이 시간에 다목적댐 건설이나 활용, 발전용수 확보, 농업용수의 산업용수 전환, 하수 재이용 등에 대한 의사결정이 먼저 이뤄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무엇도 완결하지 못하고 결론만 바뀌었다.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시작점에 선 상황에서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일이다.
정부가 수자원 확보 전략 설계에 들어간 시점에서 앞선 정책의 교훈은 더욱 소중하다. 정부와 수자원공사는 광주권역 반도체클러스터에 필요한 일일 용수 65만톤 중 30만톤을 화순 동복댐에서 확보하기로 했다. 저수량을 늘린 후 용수를 공급한다는 건데 말처럼 간단치 않다. 수몰될 마을에서 1000여명의 이주민 발생이 예상되는데 동의 작업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수량이냐 수질이냐, 환경이냐 발전이냐를 다른 계산서로 계산하면서 허송세월 할 여유가 없다. 3대 메가 프로젝트가 받아들 첫 번째 정책폐기청구서가 물이라면 모든 요소를 한 장의 계산서에 올려놓고 한꺼번에 계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클러스터에 참여하는 기업 관계자는 "이후 수자원을 확보하는 모든 작업에 상상 이상의 투자와 지역사회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모든 구성원들이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짓는데만 15년, 뒤집는데는 단 5년...냉온탕 오간 '원전 정책'
[영덕=뉴시스] 이무열 기자 = 경북 영덕군이 정부의 신규 대형 원자력발전소 건설 후보지로 최종 선정됐다. 사진은 18일 경북 영덕군 상공에서 드론으로 내려다본 석리, 매정리, 노물리 일대의 모습. lmy@newsis.com /사진=이무열
3대 메가 프로텍트의 핵심인 호남권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계기로 이재명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감원전'에 '신규 원전 건설'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하지만 과거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어 온 에너지 정책 탓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됐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전력 수요 급증과 기저전원 안정화에 대응하기 위해 신규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도입 여부를 전문가 검토와 국민 공론화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원전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민주당 정권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 정책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원전의 필요성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할 당시 경제·산업계에서 수없이 강조했던 부분이다. 재계에선 제조업 비중이 높은 한국에서 원전 비중을 낮추면 그 공백을 LNG 등 화력발전으로 메울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국제 연료가격 변동이 전기요금과 기업 원가에 더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반도체와 철강, 석유화학, 배터리처럼 전력 사용량이 많은 업종의 경우 공급 안정성 측면에서 원전이 꼭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러나 결과적으로 경제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한 영향도 작용했으나 재생 에너지와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시대적 흐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친환경 에너지로는 부족하다'는 산업 현장의 의견보다 이념과 정치 논리가 국가 정책을 결정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문재인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일시 중단시켰고 신한울 3·4호기와 천지 1·2호기 등 신규 원전 계획은 중단하거나 취소했다. 월성 1호기는 설계수명 이전에 조기 폐쇄했다. 2023년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는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된 탈원전 정책으로 발생한 비용이 2017년부터 2030년까지 47조 40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원전 발전량을 가스발전으로 대체하면서 생긴 비용이 대부분이다. 이는 한국전력의 빚으로 쌓였다. 세계 최고 수준이던 원전 산업의 경쟁력도 하락했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이재명 정부 역시 출범 초기에는 원전 정책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가능한 부지가 있고 안전성이 확보되면 하겠지만, (원전 신설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산업계를 중심으로 원전 필요성에 대한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안정적 전력 공급이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의 성공 요건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판단을 바꿨다.
문제는 시간이다. 정책은 국무회의 한 번이면 되돌릴 수 있지만 원전 건설과 산업 생태계 복원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핵폐기장 건설 등으로 인해 원전 건설에는 통상적으로 15년 가까이 소요된다. 정부는 광주 반도체 팹을 2030년까지 가동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현실적으로 호남권 반도체 생산을 위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할지 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기후에너지환경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시절 취소된 원전은 신한울 3·4호기(각각 1.4GW급), 대진 1·2호기(각각 1.5GW급), 천지 1·2호기(각각 1.5GW급)로 모두 6기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40년 전력 수요가 급증해 대형 원전을 최대 6기가량 추가로 지어야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는데 공교롭게도 규모가 일치한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을 주장했던 민주당이 책임있는 정당이라면 탈원전 정책은 잘못한 것이라는 분명한 사과와 반성을 해야 한다"며 "사과와 반성이 있어야 이념에 따라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