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한국에서 이러지 마시고, 조용히 외국에서 사세요”

미국 여권 신청서의 성별 선택란에 있던 X 표기는 트럼프 집권 후에 사라졌다. [사진-크리스 제공]    
미국 여권 신청서의 성별 선택란에 있던 X 표기는 트럼프 집권 후에 사라졌다. [사진-크리스 제공]    

가톨릭 퀴어로 살아가기⑷ 떠나지 않는다는 것

미국 여권 신청서의 성별 선택란에 있던 X 표기는 트럼프 집권 후에 사라졌다. 트럼프 정부 들어 성별 X 표기가 사라졌다. 2024년 9월, 우리 부부는 미국 시민권을 신청했다. 미국 귀화 신청서(N-400)의 성별 선택란에서 나는 ‘X’를 골랐다. 바이든 정부 때였고, 성별 정정 증빙 서류 없이도 성별 X 표기가 가능했다. 배우자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시민권 인터뷰가 잡혔다. 그러나 내 인터뷰만 갑작스레 보류되었다.

아리는 미국 영주 신분을 유지하려면海外에 오래 머물기 어렵기 때문에, 아예 시민권을 따는 이들도 있다. 다행히 아리는 2025년 2월, 시민권 인터뷰 당일 귀화 선서까지 마쳤다. 그사이 트럼프 정부가 들어섰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성소수자 차별과 배제, 특히 트랜스젠더를 향한 부당한 정책들이 정당화되기 시작했다. 석 달 후 간신히 들어선 인터뷰실에서 백인 남성 심사관은 내가 제출한 서류를 보더니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말했다. “여자잖아요. 이런 거 하지 마요.” 거대한 장벽 같이 느껴지는 말 앞에 나는 아무 말도 얹지 못했다.

귀화 신청서와 여권 신청서에서 성별 X 표기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법제도적 권리와 국가의 보장이라는 것이 정권의 향방에 따라 이토록 쉽고 무참하게 거꾸로 갈 수 있다는 걸 뼈아프게 깨달았다. 오래 기대해온 성별 X 표기는 F로 바뀌었고, 내 심사는 또다시 보류됐다. 귀화 신청 당시, 배우자와 나의 미국 체류 기간은 하루도 차이가 없었지만 나에게만 보완 서류 제출 조건이 붙었다. 한국 장기 체류 사유에 대한 보충 자료를 제출한 끝에 겨우 귀화 선서식 날짜가 잡혔다. 귀화증서를 받고 아리와 함께 한국으로 왔다. 귀화증서에는 “Married”라고 적혀 있지만, 배우자 이름은 따로 기재되어 있지 않다.

한국에서 건강보험 피부양자 등록을 마치기까지

아리는 어머니의 외동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홀로 지내고 계신다. 내 부모님도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 부모님과 함께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기에, 마음의 준비를 하며 산다. 가족이 여기 있으니까, 그것으로 우리가 한국에 다시 거주할 이유는 충분했다. 한국에 돌아와 국내 거소 신고를 마쳤다. 외국 국적 동포 신분번호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리에게 건강보험 지역 가입 고지서가 날아왔다. 건강보험료가 예상보다 많이 부과됐다. 나는 한국 직장에서 4대보험에 가입되어 있으니, 아리를 내 피부양자로 등록해 보기로 했다.

피부양자 등록을 신청하자 관할 지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어진 혼인 확인 절차는 집요했다. 영어 혼인 증명서의 한글 번역과 공증으로는 확인이 어렵댔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정부에 아포스티유를 직접 신청했다. 혼인증명서 원본과 발급 수수료 결제 카드 정보가 적힌 서류를 국제우편으로 보내고 5주를 기다렸다. 신용카드 결제 승인 문자가 휴대폰으로 왔을 때, 나는 한참 동안 그 문자를 들여다봤다. 아포스티유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요청으로 대한민국 외교부를 통해 우리 혼인증명서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한 서류였다. 그 절차가 진행되고 승인되었다는 건, 대한민국이 우리 결혼을 반쯤은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우리가 혼인한 국가인 캐나다와 귀화한 국가인 미국이 서로 다르니, 다른 사람과 중혼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라고 했다. 귀화증서에 배우자 이름이 없어 중혼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결국 미국에서 매년 부부 합산으로 신고해온 세금보고 증명서까지 제출하고 나서야 절차가 마무리됐다. 한국에서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한 결혼인데, 그 와중에 중혼 의심을 받는 역설을 마주했다.

우리는 미국 귀화 신청도, 캐나다 혼인증명서 아포스티유 발급도 모두 직접 했다. 대행업체를 끼지 않은 건 커밍아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웹사이트로 처리할 수 있고, 영어 번역은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미국 정부도, 캐나다 정부도, 대한민국 외교부도, 국민건강보험공단도 우리 관계를 인정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권리가 우리에게는 서류 한 장마다 숨이 막히는 싸움을 거쳐야만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이러지 마시고, 조용히 외국에서 사세요”

그러나 복잡한 서류를 통과한 이후에도, 일상에서 타인의 시선을 통과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였다. 미국 집은 1년 가까이 비어 있는 상태다. 화분과 우편물을 관리해 주는 이웃들이 ‘언제 돌아오느냐’는 문자를 자주 보내온다. 미국의 이웃들은 우리를 환대하며 기다리는데, 정작 한국인들은 우리더러 ‘떠나라, 오지 말라’고 한다. “한국에서 이러지 마시고, 조용히 외국에서 사세요.”海外를 오가는 퀴어로서의 경험을 글로 쓰면 종종 달리는 댓글이다. 노골적인 욕설은 없지만 벼린 칼날 같기는 마찬가지다.

가톨릭 안에서 날아오는 말들은 더 아프다. “천주교에 퀴어가 어디 있느냐”, “교회의 가르침을 왜 따르지 않느냐.” 어느 교구 소속이냐는 반(半) 협박조의 댓글부터, 하느님 이름을 달고 퀴어 인권 활동을 하는 건 미친 짓이라는 신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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