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트럼프 시비에 이웃에서 앙숙된 미국과 캐나다

2026년 6월16일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오른쪽)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REUTERS
2026년 6월16일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오른쪽)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REUTERS

국경 맞댄 가장 가까운 이웃은 옛말… 미국 관세 폭탄에 ‘맞불’로 무역전쟁 선언한 마크 카니 총리

2026년 6월16일 프랑스 에비앙레뱅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오른쪽)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REUTERS

캐나다 중동부에 온타리오주가 있다. 주도 토론토는 캐나다 최대 도시다. 캐나다 수도 오타와도 온타리오주에 있다. 온타리오주는 캐나다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다. 온타리오는 선주민어로 ‘거대하고 아름다운, 물이 반짝이는 호수’란 뜻이다. 미국과 국경을 맞댄 온타리오 호수에서 따온 이름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6년 8월27일 온타리오 호수를 ‘아메리카 호수’로 개칭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캐나다 쪽은 호수 주변에 ‘지금도 앞으로도, 온타리오 호수’라고 적힌 대형 입간판을 설치하는 것으로 맞받았다. ‘온타리오’를 둘러싼 신경전은 무역전쟁이 본격화한 양국 관계의 현실을 상징한다.

집권 2기 출범 직후부터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 우방인 캐나다를 향해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하라. 그게 당신들한테 유리하다”고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세계 각국에 막대한 보복관세를 부과한 이른바 ‘해방의 날’(2025년 4월2일) 이후엔 양국 간 긴장이 더욱 높아졌다.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에 맞서 캐나다에선 미국 상품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잦은 협박 속에 양국 간 무역협상은 길고도 지루하게 이어졌다.

2026년 8월 들어 협상은 돌파구를 찾는 모양새였다. 도미닉 르블랑 캐나다 국제통상장관(대미 협상 대표)은 8월21일 미국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협상 타결에 매우 근접했다”고 말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3시간여 막판 조율을 마친 직후였다. 하지만 르블랑 장관은 같은 날 밤 마크 카니 총리의 명에 따라 돌연 귀국길에 올랐다. 미국 쪽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전에 예고한 대로 8월22일 0시1분부터 200억달러 규모의 캐나다산 물품에 대해 50%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협상 결렬 다음날인 8월22일 오전 카니 총리는 22분에 걸친 대국민 연설에 나섰다. 그는 기존 합의 수정과 추가 요구 등 미국 쪽의 막판 ‘골대 옮기기’를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 미국이 요구하는 걸 순순히 내주지 않겠다. 캐나다의 주권을 침해하거나 주요 산업을 위태롭게 만드는 걸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공격당하면 전쟁할 수밖에 없다. 지금 캐나다는 (미국한테) 공격당했다”고 말했다. 카니 총리는 이날 미국이 부과한 관세에 비례해 캐나다도 미국산 물품 약 900가지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무역전쟁’의 전면화를 공표한 셈이다.

2026년 8월30일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온타리오 호수 주변에서 한 여성이 ‘지금도 앞으로도, 온타리오 호수’라 적힌 대형 입간판 사진을 찍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트럼프 압박에 눈 하나 깜짝 않는 카니 총리

미국과 캐나다는 1994년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에 따라 멕시코와 함께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묶였다. 양국 간 공급망도 긴밀히 연계된 상태다. 한쪽에서 생산한 부품을 다른 쪽이 수입해 완성품으로 조립한 뒤 재수출하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무역전쟁이 장기간 불을 뿜으면 양국 모두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미 뉴욕타임스 등 미국 매체들은 “9월 중순 이후 치즈 등 유제품류와 생선류, 의류, 각종 생필품 등 미국 소비자물가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란 침공으로 국제유가가 폭등하면서 미국 경제는 벌써 여러 달째 물가 인상 압박에 시달려왔다. 캐나다와의 무역전쟁이 장기화하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터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또다시 무모한 대외정책으로 자기 발목을 묶은 모양새다. 카니 총리는 9월1일 기자들과 만나 “무역협상 재개를 위한 긍정적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캐나다의 주권을 존중하고, 협상에 더 신중한 자세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까? ‘협상의 달인’을 자부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기술’은 오직 하나다. 위협과 압박으로 협상 상대를 벼랑 끝까지 몰아간 뒤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에서 거래를 매듭짓는 방식이다. 이번에도 통할까? 쉽지 않아 보인다.

카니 총리는 미국 하버드대학을 거쳐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금융·경제 전문가다. 그는 정치권에 입문하기 전 캐나다 중앙은행장(2008~2013년)을 지낸 뒤, ‘비영국인’ 최초로 영국 중앙은행장(2013~2020년)까지 역임했다. 2024년 9월 쥐스탱 트뤼도 당시 총리는 그를 중도 좌파 성향인 집권 자유당의 ‘경제성장 태스크포스’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현실 정치권에 발을 들인 그는 트뤼도 총리가 지지율 하락 속에 자진 사임을 결정한 2025년 1월 자유당 당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같은 해 3월 전당대회에서 무려 85.9%를 득표해 압도적으로 당대표에 선출돼 무난히 총리직에 올랐다.

캐나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아바쿠스데이터의 최신 여론조사(8월31일) 결과, 카니 총리에 대한 국정수행 지지율은 56%를 기록했다. 미국발 무역전쟁은 그를 ‘강한 지도자’로 부각한 호재였다. 8월31일 퀘벡·온타리오·브리티시컬럼비아 3개 주에서 치른 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자유당 후보가 모두 당선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앞서 카니 총리는 2026년 1월20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특별 연설에서 바츨라프 하벨 체코 초대 대통령이 반체제 작가이던 1978년 펴낸 ‘힘없는 자들의 힘’을 인용해 세계적 반향을 부른 바 있다. 내용을 곱씹어보자.

2026년 7월6일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마크 카니 총리가 연설하고 있다. REUTERS

공산당 집권 시기에 어느 시장 골목의 채소가게 주인은 출근하자마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고 적힌 팻말을 가게 앞에 내걸었다. 채소가게뿐이 아니다. 시장 골목의 모든 가게가 같은 팻말을 내걸었다. 이념에 동의해서가 아니다. 그저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희망을 담은 일종의 ‘부적’이었다. 하벨 전 대통령은 이를 두고 “거짓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카니 총리가 당시 연설에서 주목한 것도 마찬가지다. 채소가게의 팻말은 곧 패권을 앞세운 미국의 일탈을 비판 없이 수용하는 국제사회를 상징한다. ‘미국에 맞선 중견국의 단합’을 강조해온 그는 연설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체제의 힘은 진실에서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진실인 것처럼 행동하는 데서 나온다. 체제의 취약성도 거기서 비롯된다. 단 한 명이라도 거짓이 진실인 것처럼 행동하는 걸 멈추면, 채소가게 주인이 구호가 적힌 팻말을 치우면, 체제의 환상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제 세계 각국의 기업과 정부가 팻말을 내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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