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광장 이후 변화를 이어가려는 사람들에게
![남태령 집회에서 사회 보는 박지하 씨의 모습. [사진 제공-박지하]](/static/uploads/rss_752312bf77f51981.jpg)
[논문 밖 인터뷰] 윤석열 퇴진 광장 참여자들의 경험 연구한 박지하
남태령 집회에서 사회 보는 박지하 씨의 모습. [사진 제공-박지하]
윤석열 퇴진 광장 참여자 경험 연구-‘취약한’ 정체성들을 드러낸 발언자를 중심으로
」는 광장의 경험이 다양한 존재들의 정치적 주체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퀴어-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살펴본 연구다.
먼저, 탄핵 광장에서 자신의 ‘취약한’ 정체성을 가시화하는 발언자들을 주의 깊게 볼 수 있었던 건, 연구자 자신이 광장에서 긴 시간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저는 집회에서 사회자로, 자원봉사자로 때로는 그냥 참여자로 함께했습니다. 단상에 올라가 사람들 앞에서 발언하는 사람들을 연구했지만, 제가 단상에 올라가 발언을 한 적은 없어요. 그래서 더 발언자들의 용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2024년 12월 6일, 국회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가장 먼저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밝히면서 발언한 분이 계셨는데요. 그때 제가 사전마당을 진행하고 있었고, 무대 옆에 있었거든요. 누군가가 여러 사람 앞에서 커밍아웃을 하는 순간을 내가 이렇게 보는구나, 저 사람은 어떻게 이 자리에서 저런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놀라웠죠.
그날 이후, 발언자분들이 주어진 짧은 시간에 굉장히 정돈된 말씀들을 구구절절 하시는 것을 보면서, ‘이 이야기는 발언자들이 가슴 속에 아주 오랫동안 품고 살아왔던 이야기였구나. 언제든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만 있다면, 그런 공간만 있다면 터져 나올 이야기였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오랜 시간 고르고 다듬은 말 같았고요. 이 이야기들을 광장 안팎의 더 많은 사람들이 듣고 기억하기 위해서 뭐가 필요할까 고민 했던 게 이 논문의 시작이었습니다.”
10년도 안 되어 대통령 둘이 탄핵되는 흥미로운 나라에 살고 있는데요. 과거 박근혜 퇴진 집회(2016~2017)를 윤석열 탄핵 광장과 비교했을 때, 촛불의 단일함 대신 이번엔 응원봉의 알록달록 다양한 색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보이기도 하고, 이전보다 무지개 깃발이 많이 눈에 띄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박근혜 퇴진 집회에서 여성혐오, 장애비하 발언이 반복되었고요. 두 집회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경험으로 비추어봤을 때 차이와 변화를 어떻게 느끼셨나요?
“이번 논문 인터뷰를 하면서 지난 박근혜 퇴진 집회 때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무대에 올라 발언을 한 사람이 단 두 명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또 박근혜 퇴진 집회를 주관했던 단체가 투쟁 과정을 기록한 벽돌 두께의 백서 책에 ‘페미존’(Femi Zone, 여성·성소수자·장애인 등 소수자들이 혐오와 성추행 등으로부터 안전하게 발언하고 연대할 수 있도록 집회 참여자들이 만든 공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그래서 ‘누구를 중심으로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서 때로는 지워지고 무시되었던 목소리들을 명확히 남기고 싶었습니다.
민주주의가 이야기하는 평등한 사회는 정말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광장이라는 시공간에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그래서 자신의 ‘취약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발언이 계속 이어졌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윤석열 퇴진 대구집회가 열린 동성로에서, 연구참여자 분이 찍어준 사진. 그이는 지역 언론 뉴스민에 〈결혼일기〉를 연재 중이다. [사진 제공-박지하]
‘평등 수칙’(평등한 집회를 위한 규칙)은 박근혜 퇴진 촛불 때도 있었어요.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여성혐오와 장애비하 발언을 막지 못했죠. 그런데 평등 수칙이 윤석열 탄핵 광장에서는 기능할 수 있었던 건, 어느 한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정말 우연과 필연이 얽히고 그야말로 우주의 기운이 모여서 가능했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단순히 집회를 주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해야 된다는 의지만으로는 어려웠을 것 같아요. 문제되는 발언이 있다고 해서, 사회자가 마이크를 뺏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죠. 그 자리를 구성한 사람들이 ‘그래 저 말은 옳지 않아’라고 생각하고 그런 발언에 호응하지 않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주변과 온오프라인 상에서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것까지 나아가야 가능한 일이라는 걸 이번 광장에서 느꼈어요.
아마 지난 박근혜 퇴진 집회에서의 경험 덕분이겠죠. 우리가 현직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큰 변화를 만들었지만, 대통령 한 사람 바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죠. 그래서 ‘무엇이 새로워져야 정말로 일상의 민주주의가 가능할 것이냐’를 붙잡고 고민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어요.
또 이번 집회의 특징으로 2030 여성들이 주축이 되었다고 많이들 이야기하고 저도 매우 공감하는데요. 동시에 과거 중년남성 중심의 문화라고 여겨지는 운동권에 대한 거부― 이를테면 “깃발 내려라”, “조끼 벗어라” 이런 식으로 ‘이 자리에는 다른 정치적인 구호는 함께할 수 없다’는 식의 배제의 분위기와는 달랐다고 생각합니다. 비상계엄이라는 엄중한 시국에서 구분과 배제보다는 힘을 더 크게 모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남태령의 밤을 상징하는 문구인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당시 한 농민이 ‘우리 딸들 수고했다’ 응원하자, 한 퀴어 시민이 자신은 ‘딸이 아니다’라며 논바이너리 정체성을 설명했고, 이에 농민이 “그렇구나, 알아두겠다”라고 경청의 태도를 보인 것이 온라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신 걸로 아는데,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나요?
“제가 성격이 엄청 급한데, 사실 약속이 다 잡히고 내려간 게 아니었어요. 무작정 출발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부산 집회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자신을 밝히고 무대에 섰던 분이 계신데요. 이 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생각하고, 엑스(X)에서 이 분의 입장을 리트윗하신 분께 SNS로 DM을 보내면서 그냥 부산으로 출발했어요. 감사하게도 기다리다 보니 연락이 닿았고 당일 저녁에 바로 약속이 잡혔죠.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연결시켜주신 분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이 인터뷰를 통해 드리고 싶네요.
또, 지역 집회에서 발언을 해주신 분들을 만나면서 느낀 건데, 일종의 애향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집회가 이루어지는 대구 동성로 일대를 쭉 같이 걸으며 투어를 시켜주신 분도 계시고, 전라도까지 왔으니 무얼 먹어야 한다며 제 식사를 같이 고민해주신 분도 계셨어요. 지역의 발언자들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내가 이 지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여기서 어떻게 잘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는 분들을 만난 것이 좋았습니다.”
‘취약성’이라는 것을 보통은 감추거나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광장 참여자들의 발언을 통해 공적 공간에 출현해 자신의 취약성을 나타내는 것이 곧 그들의 취약성을 만드는 구조에 저항하는 일임을 보여주는 논문이었는데요. 논문을 쓰면서 본인도 자신의 어떠한 ‘취약성’을 떠올리거나 그들을 통해 용기를 얻은 부분이 있나요?
“문제의 원인을 약자들의 탓으로 돌리는 세상에서, 저항하는 사람들이 과도한 요구를 받는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법이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데도 ‘법대로 해’부터 ‘불편을 만들지 마라’, ‘방해하지 마라’ 또 ‘세련되게 해라’, ‘친절하게 해라. 그래야 들어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렇게 해서 바뀔 일이었으면 이미 세상이 바뀌었겠죠.
저는 이번 광장에서 마치 가슴 속 삼천원(‘누구나 가슴속에 상처 하나쯤은 품고 살잖아요’라는 드라마 대사에서 파생된 인터넷 밈. 인생의 씁쓸한 상처 대신, 겨울철 길거리에서 간식을 사 먹을 수 있는 현금 3천원의 소소한 위로를 표현한 말)처럼 항상 자신을 설명하기 위한 말들을 만들고, 부정당한 자신이 여기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 이야기를 품고 살아온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윤석열 파면 선고가 된 날, 기쁜 마음으로 행진하는 모습. [사진 제공-박지하]
내가 가진 어떤 정체성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살려고 또 세상을 바꾸려고 뭔가를 주장하는 일들에 대해서 남들이 모욕한다고 해도, 그것이 민망하고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 그럼에도 당당해지는 것 역시 투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그래야 지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들어줄 사람이 있을 때 이야기는 시작된다
‘환대는 발언자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몫을 우리의 몫으로 전환한다’는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들어줄 사람이 있어야 이야기는 시작될 수 있다’는 문장도요. 광장에서 참여자들의 상호작용도 있었지만, 발언자들의 발언 내용을 잘 이해하고 공감하며 사람들을 응집시키는 사회자와의 상호작용도 중요했을 것 같아요.
“페미니즘 덕분에 가능했다? 하하. 비상계엄이라는 것이 사회의 위기이기도 하지만, 그 시기가 저 개인에게도 굉장히 위기였거든요. 사회에 대한 회의감도 컸고, 그러다 보니 먹고 사는 어려움이 더 크게 느껴졌고, 동시에 활동가로서는 잘 살고 있는 건가 하는 고민이 있었는데요. 그때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여성학 대학원에 진학한 상태였어요. 페미니즘을 공부하지 못했더라면,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나의 어떤 취약함 같은 것들을 다르게 해석하는 힘을 배우지 못했더라면, 그 시간을 잘 못 넘어섰을 것 같아요. 눈앞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몰라 혼란스러웠을 것 같고요.
페미니즘을 배우고 익히며, 상황마다 배제되는 사람들이 누군지 살피는 감각도 조금이나마 키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 ‘나의 어려움이 제일 큰 어려움이다’라고 착각하지 않을 수 있었어요. 사사로운 일에 상처받기보다 큰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데에도 도움이 많이 됐고요.
탄핵 광장에서 사회를 본 덕분에 발언자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것도 영광이고, 광장 참여자들의 얼굴을 생생하게 앞에서 볼 수 있었던 것도 너무 좋은 기억이고요. 광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회의감도 걷어낼 수 있었습니다. 변화가 딱 하나의 방법으로 온다고 주장할 수는 없고, ‘내가 맞네, 니가 틀리네’ 싸우는 것보다는 이 바위를 깨기 위해 뭐라도 하는 사람들끼리 때로는 비판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서로 많이 격려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소수자, 약자들은 그들을 보이지 않도록 억압하는 사회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운동이잖아요. 그들이 어렵게 자신을 드러내면 곧바로 ‘눈에 띄지 말라’는 얘기를 듣곤 하죠. 논문에서 플래그라든지 뱃지, 굿즈 같은 것들로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식이 저항의 증거으로 타인과 연결되게 한다고 했는데, 혹시 평소에 착용하거나 달고 다니는 게 있나요?
“저는 세월호 추모 리본과 이태원 참사 추모 리본을 받으면 바로 가방에 달고, 굿즈나 스티커 같은 거를 받으면 그냥 바로 붙여버리거든요. 근데 어느새 다 떨어져 있어요. 그래서 밖에 나올 때 트랜스 플래그를 비롯해 그날의 착장을 세심하게 준비하고 나온다는 연구 참여자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집회 무대에서 노래방처럼 노래를 하냐며 지인이 온라인 중계를 보다가 캡쳐해서 보내준 사진. (사진 제공-박지하)
그리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했는데요. 저의 실명을 드러내며 이렇게 인터뷰를 하며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며 사는 것도 일종의 실천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포털에서 〈일다〉 인터뷰 기사에도 악플이 상당하더라고요. 그럼에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당당한 거. 그게 나를 후퇴하지 않게 만드는 것 같아요. 모두가 그렇게 살라는 얘긴 전혀 아니지만, 저한테는 그게 저를 끌고 가는 수행이라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윤석열 탄핵 집회에서 윤석열을 끌어내리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탄핵 다음을 상상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는데요. 광장에서 취약한 존재들이 서로의 ‘정치적 자원’이 되어 주고 탄핵 다음을 상상할 수 있는 에너지가 모이기도 했죠. 논문에 나오는 것처럼 일종의 ‘헤테로토피아적’ 시공간이었던 광장이 늘 열리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서로가 계속 연결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저는 지역이 진짜 중요하구나, 내가 손 내밀고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뭔가를 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먼저 결심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연결될 수 있는 시도가 필요하겠다 생각했고요. 좀 느리거나 부족한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성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인 것 같아요. 이미 있는 사회운동 조직들이 위축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고요.
광장이 끝나고 정권 교체가 되고 나서 정치 효능감을 느낀다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광장이 막 떠들썩하게 있었던 거에 비해서 세상은 여전히 조용하네 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거든요. 그 중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중간에서 그들을 연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어쩌면 구질구질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그런 일들을 포기하지 않고 해야겠죠.”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인데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저는 이전 비화 님 인터뷰(관련 기사: 부족해도 실천해보는 거야, “나쁜 비건 페미니스트” https://ildaro.com/10436)에서 들은 ‘완벽한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 아무 시도도 안 하는 것보다 시도를 하는 게 좋다’라는 이야기가 지금의 광장 이후에도 이 변화를 이어가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라고 봤거든요. 우리가 완벽하지 않아도 그것을 향해서 나아가는 게 운동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연구참여자 분께서 광장에서의 발언, 내가 한 ‘말’을 통해 더 이상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얘기를 해주시기도 했어요. 나의 이야기를 밖으로 꺼낸다는 것은 내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는 것이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넘은 것이고요. 그 선은 사람마다 다르게 쳐 있겠죠. 어떤 사람들은 대단히 높은 선을 넘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각자의 앞에서는 다 엄청 큰 선이잖아요. 그 선을 넘는 사람들을 많이 응원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다 보면 먼저 간 사람의 뒤를 따르는 사람도 생길 거고, 난 여기서 해야겠다 라는 사람도 생길 수 있다는 걸 인터뷰하면서 느꼈고 굉장히 용기가 됐어요.”
는 ‘비건 화이팅’을 줄여서 만든 별칭. 페미니스트이고 비건 실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