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천조국' 미국, 빚은 '5경국'…美 국채 바이백의 숨은 맥락

미국 국가부채가 자그마치 6경원을 향해 가고 있다. 달러의 기축통화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앞으로 더 많이 늘어날 수 있다 . [사진|뉴시스]
미국 국가부채가 자그마치 6경원을 향해 가고 있다. 달러의 기축통화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앞으로 더 많이 늘어날 수 있다 . [사진|뉴시스]

'천조국' 미국은 이제 '5경국'으로 불러야 할 판이다. 한해 국방비로 1000조원이 넘는 돈을 쓰는 나라라는 의미에서 붙은 별명이 '천조국'이다. 그런데 미국이 짊어진 빚을 원화로 바꾸면 단위가 달라진다.

미국 국가부채가 자그마치 6경원을 향해 가고 있다. 달러의 기축통화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은 앞으로 더 많이 늘어날 수 있다 . [사진|뉴시스]

미국의 국가부채가 19일(현지시간) 사상 처음으로 40조 달러를 넘어섰다. 1달러당 1400원으로 환산하면 5경6000조원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40조 달러의 문턱을 넘은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 자체가 경제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빚이 40조 달러를 넘어섰다고 미국 경제에 당장 빨간불이 켜진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문제는 '경' 단위로 올라버린 빚을 굴리는 데 치르는 비용, 즉 이자다. 미국 정부는 세금으로 지출을 충당하지 못하면 국채를 발행해 돈을 빌린다. 기존 국채의 만기가 돌아오면 새로운 국채를 발행해 갚아야 한다. 그런데 국채금리가 오르면 새로 빌리는 돈의 이자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미 국채 이자 부담은 천조국이라는 별명이 붙은 국방비를 넘어섰다. 미국 정부가 2026회계연도 첫 10개월 동안 지출한 순이자비용만 9630억 달러다. '천조국'이 나라를 지키는 데 쓰는 돈보다 국채 이자를 갚는 데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는 미국 장기 국채금리가 오르면서 이자 부담이 더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30년 만기 미 국채는 대표적인 안전 자산임에도 지난 19일 금리가 장중 5.34%까지 올라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재정 상황과 관련한 걱정이 장기 국채금리 상승의 주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무리 안전한 자산이라도 공급이 계속 늘어나면 채권 금리는 오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결국 미 재무부가 움직였다. 미 재무부는 19일 10~30년 만기 국채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바이백 규모를 회당 최대 20억 달러에서 최소 40억 달러로 두배 이상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9월 9일부터 11월 4일까지 적용한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필요하다면 바이백 규모를 더 늘릴 수 있다는 뜻까지 내비쳤다.

국채 바이백은 재무부가 시장에 이미 풀려 있는 국채를 다시 사들이는 제도다. 로이터통신은 일부 투자자들이 이번 조치를 장기금리를 낮추려는 시도로 해석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기존 국채 발행 계획을 넘어서는 조치가 발표되자, 30년물 금리는 5.34%에서 5.18% 수준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약발은 오래가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다음날 "베선트 재무장관의 시장 부양 개입이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데 실패하면서 미국 장기 국채가 다시 매도세에 휩싸였다"고 전했다. 30년물 국채금리는 다시 5.24%까지 뛰어 바이백 발표 직후 하락폭의 상당 부분을 되돌렸다. 바이백으로 시장의 수급을 조절할 수는 있어도 미국의 재정적자와 40조 달러의 빚 자체를 없앨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진 | 뉴시스, 그래픽 | 챗GPT]

게다가 국채금리가 너무 높아지는 걸 미국 정부가 용인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자 시장의 걱정은 달러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는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로이터통신은 21일 "워싱턴이 차입비용 상승을 용인하지 않는다면 달러가 결국 그 조정을 떠안는 것 아니냐는 익숙한 우려가 다시 살아났다"고 외환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로 재무부가 바이백 확대를 발표한 19일 장기 국채금리와 달러는 함께 떨어졌다. 21일엔 3개월 만에 달러가 유로화 대비 최저 수준까지 밀렸다. 금리를 누르면 달러 가치가 약해지는 것 아니냐는 이른바 '달러 가치 희석(debasement)' 논쟁까지 고개를 들었다. 숀 오스본 외환전략가는 로이터에 "대가는 치러야 한다"며 "금리가 더 높아지든지, 아니면 달러가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조국' 미국은 어느새 빚으로는 '5경국'을 넘어 '6경국'으로 향하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본질적 질문은 세계 투자자들이 앞으로도 미국의 국채를 지금과 같은 조건으로 사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미국이 기축통화라는 파워를 유지하는 데 치러야 할 가격이 점점 비싸지고 있다. 미국 국채금리와 달러 가치는 우리나라의 기준금리와 원달러 환율과도 직결된 문제다. 미 재무부가 국채 바이백에 나선 숨은 맥락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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