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노래하다가..." 파도에서 노래를 건져 올리는 사람

윤천금 회장은 가수에서 문화인으로 활동했다. 그는 바다를 바라본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다시 물러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바람을 타고 들려오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파도가 부서지는 순간이면 그 속에서 지나온 삶과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에게 바다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오랜 세월 곁을 지켜온 친구이자, 노래의 영감을 얻는 삶의 무대다. 젊은 시절 강릉 경포의 바다에 마음을 빼앗긴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노래가 그의 삶이었다면 바다는 쉼터였다. 화려한 무대에서 잠시 벗어나 바다 앞에 서면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자신의 삶이 보이고, 지나온 시간 속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의 노래에는 인기와 화려함보다 사람의 이야기가, 삶의 흔적과 시간이 배어 있다. 사단법인 한국연예예술인총연합회 한국가수협회 윤천금 회장은 1952년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경북 안동으로 이주했다. 안동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마친 그는 서울로 올라와 영등포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접한 음악은 그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젊은 윤천금에게 음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통로였고, 훗날 가수의 길로 들어서는 출발점이 됐다. 남다른 음악적 재능은 결국 가수의 길로 이어졌다. 1980년 봄, 당시 최고의 등용문이었던 TBC 신인가요제에 출전했다. 그 시절 신인가요제는 지금과 달랐다. 작곡가와 가수가 한 팀이 되어 경연을 펼쳤고, 그는 작곡가 장욱조와 호흡을 맞춰 신인가수상을 거머쥐었다.
그는 1987년, 강릉에 윌카페를 열었다. 윌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카페가 아니었다. 윤 회장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고, 사람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공연장이자 문화공간이었다. 당시 동해안에는 가수가 직접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손님들과 함께 호흡하는 라이브 카페가 거의 없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윌카페는 문을 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릉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그는 경포 바다를 바라보며 살아온 인생을 회고한다. 경포호를 바라보며 살아온 그는 또 하나의 꿈을 품었다. 자신이 사랑했던 경포호에 오래도록 남을 상징을 하나 만들고 싶었다.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경포호의 풍경과 노래, 그리고 그곳에 깃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사공의 노래비' 다.
그에게 사공의 노래비는 단순한 기념물이 아니다. 1987년 바다를 찾아 강릉에 내려와 경포호를 바라보며 노래했던 시간, 윌카페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웃었던 기억, 그리고 강릉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자신의 인생 한 페이지다. 그는 마지막까지 노래를 부르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죽는 날까지 노래하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은 때로 한 곡의 노래와 닮아 있다. 윤천금 회장의 삶도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