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회장 vs 호반그룹…초박빙 다툼

재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진칼 경영권 분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경찰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했다는 의혹을 받는 한진칼 강제수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진칼은 대한항공 등을 계열사로 둔 한진그룹 지주사다.
한진칼 2대주주인 호반그룹이 한진칼 지분을 야금야금 늘리며 한진그룹을 긴장시키는 가운데, 한진칼 경영권 분쟁 2라운드가 어떤 양상으로 흘러갈지 재계 관심이 뜨겁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는 최근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한진칼을 압수수색했다.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고발장을 제출한 지 1년 4개월여 만이다.
앞서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지난해 5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류경표 한진칼 대표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당시 한진칼 2대주주인 호반그룹이 한진칼 지분을 17.44%에서 18.46%로 늘렸다고 공시하자, 한진칼은 자사주 44만44주(지분율 0.66%, 약 663억원)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해 맞대응에 나섰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와 달리, 사내근로복지기금으로 넘어간 주식은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이를 두고 한진칼은 “구성원 생활 안정, 복지 향상을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호반그룹과의 지분 격차가 좁혀지자 조 회장 측이 자사주를 우호지분으로 활용하려 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통상 사내기금은 경영진 측 우호지분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고발장에서 “자사주 출연은 지배권 방어 목적 외에는 합리적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려운 부당 기부 행위”라며 “경영진이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위반하고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경찰의 압수수색으로 한진칼 경영권 분쟁이 안갯속으로 빠져든 가운데, 또 다른 변수가 등장했다. 일본항공(JAL)이 최근 한진칼 지분을 취득하며 조원태 회장 우군 구도가 달라질지 관심이 쏠린다.
JAL은 최근 대한항공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며 한진칼 주식을 취득했다고 밝혔다. 대량 보유 공시(5% 이상)가 나오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JAL의 보유 지분은 5% 미만으로 추정된다. 대한항공 측은 “JAL이 한진칼의 장기적인 시장 가치를 감안해 내린 자체적 투자”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은 이번 전략적 파트너십을 계기로 여객, 화물 부문 협력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시장에선 JAL이 확보한 한진칼 지분은 델타항공과 마찬가지로 조 회장 측 우호지분으로 본다. 한진칼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회사 지분은 20.57%, 호반그룹 측 지분은 19.83%였다. 호반그룹이 지난 7월 지분율을 20.15%까지 높이며 격차를 0.42%포인트로 좁혔다.
한진칼의 다른 주요 주주 지분은 델타항공 14.9%, 한국산업은행 10.58%, 국민연금 5.11% 등이다. 이 중 델타항공과 산업은행은 조 회장 측 우호지분으로 분류된다. 아직까진 조 회장 측 지분이 46% 수준으로 호반그룹 측을 앞서고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더해 조 회장 측이 JAL을 추가 우군으로 확보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여전히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산은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 10.58%가 캐스팅보트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산은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한진칼 지분을 확보했다. 산은은 한진칼 투자를 단행할 당시 시장 안정을 위해 일정 기간 투자금 회수를 진행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후문이다. 다만 오는 12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이 마무리되면 산은 입장에선 본래의 정책적 투자 목적을 달성하는 만큼 보유 지분 매각에 나설 가능성이 거론된다. 캐스팅보트를 쥔 산은이 보유 지분을 어느 쪽으로 매각하느냐에 따라 경영권 분쟁이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재계 관계자는 “당장은 조 회장 측 지분이 우위에 있지만 산은 지분이 혹여 호반그룹이나 호반 우호세력에 넘어가면 경영권 분쟁 구도가 달라질 수 있다”며 “경찰 압수수색으로 자사주 출연이 지배권 방어 목적이란 결론까지 나오면 조 회장 측이 수세에 몰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귀띔했다.
한편에선 조 회장 측 우호지분이 워낙 많아 호반그룹이 조 회장 경영권을 위협하기는 녹록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최민기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델타항공을 비롯한 우호주주 합산 지분율이 40%를 넘는 만큼 설령 산은 지분이 전량 호반그룹으로 넘어간다 해도 10% 넘는 격차가 있다”고 진단했다.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 경영권 분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사진은 대한항공 항공기 모습. (대한항공)
한진칼이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가운데 그룹 핵심 계열사 대한항공은 내부 갈등으로 뒤숭숭하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앞두고 조종사 노조가 파업 카드를 꺼내든 탓이다.
항공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최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아시아나항공 통합에 따른 조종사 서열(시니어리티)을 두고 사측과 갈등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노사 갈등의 핵심인 시니어리티는 조종사의 기장 승격과 기종 배정, 임금 등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승진 서열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쳐지면 각각 운영해온 서열도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문제는 양 사가 조종사를 채용하고 기장으로 승격시켜온 기준이 서로 달랐다는 점이다.
민간 경력 조종사를 채용할 때 대한항공은 약 1000시간의 비행 경력을 요구해온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300시간을 기준으로 삼았다. 군·민간 출신 조종사 간 기장 승격 서열 격차도 대한항공은 평균 9개월, 아시아나항공은 약 4년이다. 서로 다른 기준으로 만들어진 두 서열을 어떤 방식으로 합치느냐에 따라 통합 이후 승격 순서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사측은 양 사의 기존 내부 상대서열을 유지한 채 하나의 서열로 통합한다는 입장이다. 통합 이후에도 대한항공 조종사의 기존 승격 요건과 내부 서열이 유지돼 승격이 늦어지는 경우는 없고, 90% 이상은 오히려 빨라진다고 설명한다. 대한항공 민간 경력 조종사가 아시아나항공 민간 경력 조종사보다 기장 승격에서 평균 3년 3개월 앞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조는 서로 다른 채용·승격 기준을 그대로 인정하면 일부 아시아나항공 출신 조종사가 대한항공 출신보다 앞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두고 사측은 “외부 컨설팅 등을 통해 대한항공 조종사에게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는 객관적이고 타당성을 지니는 승진 서열 안을 마련했다”며 “조종사노조는 자신들이 무조건 아시아나항공 출신 조종사보다 먼저 승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아시아나 조종사들의 기존 경력과 자격을 모두 인정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고유가 여파로 통합을 앞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실적이 부진한 점도 변수다. 대한항공의 2분기 별도 기준 매출은 5조199억원으로 역대 2분기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정작 수익이 급감했다. 2분기 영업이익은 2618억원에 그쳐 전년 동기 대비 34.4% 줄었다. 연료비가 1조9991억원으로 전년 동기(9478억원)보다 110.9% 급증한 영향이 컸다.
아시아나항공도 실적 부진을 피하지 못했다. 2분기 매출은 1조547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7% 줄었고, 2951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해 적자전환했다. 이재혁 LS증권 애널리스트는 “국제유가 급등으로 대한항공 비용 부담이 커진 데다 아시아나항공 실적 부진도 악재”라며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앞둔 단기 비용 부담은 마지막 고비”라고 진단했다.
최근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다시 100달러를 넘어서는 등 전망도 밝지 않다. 고유가 흐름이 이어질 경우 3분기 이후에도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수익성 압박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양 사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통합하면 시너지는커녕 오히려 재무 구조만 악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가뜩이나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은 가운데 호반그룹과의 경영권 분쟁이 안갯속이라 한진그룹 경영진 고민이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78호(2026.09.30~10.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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