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직 ‘마사지걸’ 치히로 상이 햇볕 아래 많은 기회를 누리길

영화 〈치히로 상〉 스틸컷 (©2023 Asmik Ace, Inc. /Netflix) 치히로가 두 눈을 감고 바다 바람을 느끼고 있다.    
영화 〈치히로 상〉 스틸컷 (©2023 Asmik Ace, Inc. /Netflix) 치히로가 두 눈을 감고 바다 바람을 느끼고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추천하는 영화 〈치히로 상〉이 있다. 영화 〈치히로 상〉은 야스다 히로유키의 만화 〈치히로 상〉을 영화화한 넷플릭스 작품이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이렇게 시작한다. ‘바닷가 도시락집에서 일하는 전직 성노동자. 사람을 끄는 힘을 가진 그녀가 당신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 준다.’

최근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에서 발표한 논평의 제목은 “최대한 많은 기회를 누리며 있는 힘껏 자유롭기를”이다. BJ 여성이 화장품 광고 모델로 발탁되었다가 소비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결국 광고가 내려간 사건에 대한 논평이었다. 성노동을 했다는 사실이 흠집이 되고 낙인이 되는 현실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다. 그러던 중 읽게 된 차차의 논평은 큰 공부가 되었다. 특히 “차차는 BJ 여성을 포함한 모든 여성이 최대한 많은 기회를 누리며, 있는 힘껏 자유롭길 바랍니다. 여자가 옷을 좀 덜 입으면 뭐 어떻습니까. 여자가 카메라 앞에서 섹시 댄스 추는 게 뭐 어때요. 여자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든, 그렇게 일하는 이유가 다 있겠죠”라는 문장이 인상에 남았다.

페미니스트인 나는 왜 성매매 산업이 성 착취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은 쉽게 설명하면서, 성노동자 여성의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복잡한 문제라고 생각했을까. ‘그냥 그렇게 일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왜 어려웠을까. 그즈음 친구의 추천으로 〈치히로 상〉이라는 영화를 알게 되었다. 영화의 주인공 치히로는 평화로운 바다 마을에 사는 해사한 미소를 가진 여성이다. 지금은 벤또 가게에서 일하고 있지만, 자기가 ‘마사지걸’이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말한다. 친절하기는 또 얼마나 친절한지. 치히로 상과 전직 성노동자라는 설정이 주는 낯선 조화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성노동이라는 소재를 너무 낭만화한 거 같아 별로다’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순간, 이런 나의 의심이 ‘음지의 성노동자가 양지로 나오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낙인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고에서, 현실에서, 영화라는 매체에서 성노동자의 존재가 드러나지 못하게 막는 사고방식은 모두 같은 뿌리에서 기인하고 있다. 그 생각을 한 후, 영화 〈치히로 상〉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자 영화는 답답한 현실과는 다른 자유롭고 충만한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치히로 상의 일상은 단조롭다. 노코노코 벤또 가게에서 주문을 받고 재료를 손질한다. 출근길에는 고양이에게 말을 걸고, 저녁에는 업소에서 같이 일을 했던 언니와 한잔한다.

그는 해변에 치는 잔잔한 파도처럼 자신의 리듬으로 규칙적인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는 생활인이다. 영화는 치히로의 과거에 대해서 쉽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치히로의 등에 남아 있는 칼에 맞은 흉터라던가, 외롭고 우울해 보이는 순간, 이상한 전화 통화들을 통해서 그녀의 역사를 추측해 볼 뿐이다. 영화 〈치히로 상〉에는 다양한 식사 장면이 나온다. 맛있는 음식은 지친 마음에 위로를 주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는 접착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음식이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누구와 함께 어떤 공간에서 먹는지에 따라서 체할 것처럼 속을 꽉 막기도 하고, 허기진 몸과 마음을 기분 좋게 채워주기도 한다.

치히로는 자기가 일하는 노코노코의 도시락을 정말 좋아한다. 입이 싼 나가이라 아줌마가 만드는 짜디짠 매실장아찌가 얼마나 입맛을 돋우는지, 정성스럽게 손질한 죽순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감탄하며 맛있게 도시락을 싹싹 비운다. 길에서 만난 짓궂은 꼬마 마코토에게도 도시락을 먹이고, 노숙인 아저씨에게도 도시락을 함께 먹자고 한다. 이들은 테이블도 없는 길가에서 한 손에 도시락을, 한 손에 젓가락을 들고 먹지만 남부럽지 않은 한 끼의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다. 흔히들 길에서 먹는 음식은 짠 내가 난다고 하는데, 이들이 먹는 도시락은 나도 한 입만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따뜻하고 맛있어 보인다.

이것과 대비되는 식사 장면은 오카지네 저녁 밥상이다. 오카지의 집은 말끔하고 번듯한 중산층 가정이다. 식사하는 내내 아버지는 권위적인 태도로 가족들을 통제하고, 온 가족이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숨 막히는 공기가 흐른다. 음식은 푸짐하고 화려하게 차려져 있지만 권위적인 밥상에서는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치히로는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어두워지는 오카지의 표정을 보고 이런 이야기를 해 준다. “음식은 함께 먹을 때 더 맛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밥맛을 떨어지게 하는 사람도 있어. 맛있는 음식은 혼자 먹어도 맛있고.” 반면, 짓궂은 초등학생 마코토는 싱글맘인 엄마가 밤에 일을 하러 가면 혼자 저녁을 챙겨 먹는 게 익숙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코토는 엄마가 해 준 야키소바가 정말 정말 맛있다고 한다.

그 말에서 마코토가 엄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느껴진다. 다양한 식사 장면들은 따뜻한 집, ‘정상 가족’이라는 환상을 깬다. 사람은 신뢰하는 사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