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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넘어선 K배터리…AI·ESS·로봇으로 '영토 확장'

ⓒChatGPT 생성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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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은 시사저널e 기자 nice@sisajournal-e.com]

LG엔솔 'ESS'·삼성SDI 'UPS·BBU'…AI 데이터센터가 새 고객으로

배터리 '빅3' 상반기 시설투자 4조원대…로봇·드론·UAM도 선점 경쟁

전기차를 중심으로 성장해온 국내 배터리 업계의 고객 지형이 달라지고 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이어지는 사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에너지저장장치(ESS)가 새로운 수요처로 빠르게 부상하면서다. 휴머노이드 로봇과 드론, 도심항공교통(UAM) 등 피지컬 AI 시장도 차세대 배터리 수요처로 거론된다.

변화는 이미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올 상반기 ESS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6배로 늘어났다. 삼성SDI도 AI 데이터센터 확대에 대응해 무정전전원장치(UPS)와 배터리백업유닛(BBU)용 배터리 판매 확대에 나섰다.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 판매량과 신차 출시 일정이 배터리 업황을 좌우했던 구조에서 벗어나 전력·IT 등 자동차 밖 산업으로 수요 기반을 넓히는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현재 전기차용 배터리 외에 ESS와 AI 데이터센터용 전력 솔루션, 로봇·드론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배터리 3사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장기 공급계약 및 합작법인(JV)을 통해 전기차 시장과 함께 성장해 왔다. 하지만 전기차 수요 증가세가 둔화하고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계획을 조정하면서 배터리 업체에도 전기차 이외의 수요를 확보해 기존 생산기반의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과제로 떠올랐다.

가장 먼저 실적으로 연결되고 있는 시장은 ESS다. LG에너지솔루션의 올해 상반기 ESS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6배 증가했고 전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 후반까지 올라왔다. 2분기 ESS 출하량도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전 분기보다 30% 이상 늘어났다. 상반기에는 최종 고객사가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데이터센터 운영사)인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포함해 3조원 이상의 신규 수주를 확보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ESS 생산능력도 빠르게 늘리고 있다. 기존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거점을 ESS 생산에 활용해 연말까지 북미에서 50GWh 이상의 ESS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전기차 수요 변화에 따라 기존 생산기반을 다른 제품에 활용하면서 동시에 북미 ESS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이다.

삼성SDI는 AI 데이터센터에서 새 수요를 찾고 있다. 회사는 올해 UPS와 BBU용 배터리 매출이 각각 전년 대비 7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상반기에는 전력용 ESS와 UPS·BBU 등 고출력 제품을 중심으로 AI 데이터센터 수요에 대응한 것이 실적 개선을 견인했다고 밝혔다. 미국 주요 ESS 고객사들과 장기 공급계약도 체결했다.

SK온 역시 전기차에 집중됐던 포트폴리오를 ESS로 확대하고 있다. 북미를 중심으로 ESS 사업 기반을 구축하고 기존 배터리 생산시설을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와 달리 현재 SK온의 실적에서 ESS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제한적이다.

3사의 온도 차에도 ESS가 배터리 업계의 핵심 비(非)전기차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특히 AI 데이터센터 확산은 ESS 시장의 성장 속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AI 데이터센터는 대규모 연산을 처리하면서 많은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비상 전력 확보가 중요하다.

재생에너지 확대도 ESS 수요를 뒷받침한다. 태양광과 풍력은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 생산한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하는 설비가 필요하다.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이라는 서로 다른 시장에서 동시에 저장장치 수요가 늘면서 배터리가 자동차의 핵심 부품을 넘어 전력 인프라의 주요 설비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셈이다. 고객군도 완성차 업체에서 전력회사와 ESS 사업자, 데이터센터 관련 업체 등으로 넓어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셀 공급을 넘어 ESS 시스템통합(SI)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차세대 수요 선점 경쟁 나선 배터리 3사

ESS가 이미 실적에 기여하는 시장이라면 휴머노이드 로봇과 드론, UAM은 배터리 업계가 다음 수요처로 주목하는 영역이다. 아직 시장 규모가 전기차나 ESS에 미치진 못하지만 피지컬 AI 산업 성장과 함께 차세대 수요처로 주목받고 있다. 제한된 공간과 무게로 장시간 구동해야 하는 만큼 고출력, 높은 에너지 밀도와 경량화 등이 배터리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글로벌 주요 로봇 업체 6곳에 원통형 배터리를 공급하고 있다. 차세대 모델용 샘플도 제공하면서 배터리 사양과 양산 시기를 협의 중이다. 올해는 로봇뿐 아니라 선박과 UAM 등으로 신규 적용처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의 첫 상용화 시장으로 휴머노이드를 유력하게 보고 있다. 회사는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개발 중이며 올해 하반기 휴머노이드 고객사에 샘플을 공급해 검증을 진행할 계획이다. SK온도 휴머노이드 로봇과 UAM 등 피지컬 AI 시장을 차세대 배터리 수요처로 주목하고 있다. 전기차에서 축적한 배터리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찾는다는 점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와 방향이 같다.

다만 ESS와 로봇·UAM을 같은 단계의 시장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ESS는 이미 매출과 수주가 빠르게 늘면서 전기차 수요 부진을 일부 보완하고 있지만 휴머노이드 로봇과 UAM은 아직 시장 형성 단계여서다. 배터리 업체의 실적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이다.

배터리 3사가 새로운 시장에 주목하면서 시설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이 올 상반기 배터리·소재 관련 생산시설 등에 집행한 투자액은 4조원대에 달한다. 투자 용처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전기차 생산능력 확대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기존 생산시설의 ESS 전환과 차세대 배터리, 신규 응용처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가 병행되고 있다.

삼성SDI의 중장기 국내 투자계획은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삼성SDI는 천안에 2040년까지 약 9조원을 투자해 차세대 배터리 기술 검증을 위한 마더라인과 연구개발(R&D) 거점을 구축할 계획이다. 울산에도 같은 기간 16조원을 투자해 전고체 배터리와 ESS용 리튬인산철(LFP), 소듐이온 배터리 등의 양산 기반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는 당분간 핵심 시장으로 남겠지만 ESS에서는 이미 비전기차 수요가 실적과 수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며 "업계의 관심은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에서 열린 신규 시장을 얼마나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키우고, 아직 초기 단계인 로봇·드론·UAM에서도 실제 고객을 확보하느냐에 쏠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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