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저는 페미니스트가 맞습니다”

2026년 7월 15일 오전 10시,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의 성차별적 괴롭힘 및 성희롱 진정 기자회견’이 열렸다. (출처: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대위)    
2026년 7월 15일 오전 10시,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의 성차별적 괴롭힘 및 성희롱 진정 기자회견’이 열렸다. (출처: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대위)    

일터 내 ‘페미니즘 사상검증’ 피해자, 국가인권위에 진정 제기

2026년 7월 15일 오전 10시,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의 성차별적 괴롭힘 및 성희롱 진정 기자회견’이 열렸다. (출처: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대위)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의 채용 면접에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라는 질문을 받고, 입사 후에도 “인류 역사상 성범죄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발언 등 성차별적 괴롭힘과 성희롱을 겪은 노동자가 침묵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기로 했다. 바로 김민지 씨다.

김 씨는 노동 현장의 ‘페미니즘 사상 검증’ 피해자로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15일 오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전국여성노동조합, 청년유니온,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채용성차별공동행동(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외 12개 단체)으로 구성된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동대응위원회’는 김민지 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당당히 변화를 촉구했다.

면접 때부터 이어진 성차별적 괴롭힘, 사상검증, 외모 비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 있지만 “5인미만 사업장이라 보호 못 받아”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김민지 씨는 채용 면접 단계에서부터 심각한 ‘사상 검증’을 겪었다. 면접 당시 해당 기관의 대표는 김 씨의 이력에 성폭력 피해자 지원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한 사실이 적힌 것을 보고,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라며 성차별적인 질문을 던졌다.

입사 이후에도 대표의 언어폭력과 성희롱 발언이 계속되었다. 대표는 김 씨가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는 걸 알고는 회식 자리에서 당시 상황을 캐묻는가 하면, 그에 대해 답변하자 “왜 너를…?”이라며 비웃는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외모에 대한 지적도 일삼았다.

“어느 날은 대표실로 불러 인터넷에 ‘오.타.쿠’ 세 글자를 검색한 뒤 제 외모를 만화 캐릭터와 비교하며 ‘거울 좀 봐’, ‘머리도 그렇고, 안경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풍채도 그렇고…’, ‘주말에 아울렛이라도 가서 옷도 좀 사고 그래~ 여기 주변에 싼 데 많아~’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몸에서 냄새가 나니 병원에 다녀오란 말까지 들었다. 김 씨는 “대표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와 모욕감에 한동안 멍하니 앉아만 있는 시간들이 반복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민지 씨는 한 달 남짓한 근무 기간 동안 반복적인 모욕과 성희롱을 겪으며 무력감과 자괴감에 시달렸고,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인가?’, ‘내가 정말 문제인가?’라고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주변 사람들도 ‘내가 알던 민지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회사를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라도 대응을 하려고 했지만, 해당 일터가 ‘5인 미만 사업장’에 해당해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제도의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김 씨는 ‘성평등을 지향하는 사람을 페미니스트라고 한다면, 이 자리에서 선언하겠다’며 “저는 페미니스트가 맞습니다”라고 당당히 밝혔다. 이어 “누구도 성평등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검증당하거나 모욕당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인권위 진정 사유를 말했다.

여성노동자에 대한 “평등권 침해”이자 “직장 내 성희롱”

고용·계약 관계에서 페미니스트에 대한 불이익, 공격 심각한 수준

진정 대리인을 맡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의 강미솔 변호사는 “2016년경 게임 및 콘텐츠 업계에서 ‘페미니즘 사상 검증’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이래로, 일터를 비롯한 생활영역 전반에서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공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성 노동자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거나 관련 글을 공유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고용 또는 계약 관계에서 심각한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동대응위원회’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와 요구안을 전달했다. (출처: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대위)

강 변호사는 피진정인의 행위가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과 성별을 이유로 고용 영역에서 불리하게 대우한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라고 못박았다. 또한 연애 여부나 성적 지향에 대한 사적 질문을 하거나, 여성의 신체를 성적 시선으로 대상화한 발언을 하는 것은 “명백한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가해 사업장이 국가 공인 훈련기관으로서 일반 기업보다 높은 인권 감수성이 요구되는 기관임에도, “진정인에 대하여 여성혐오적, 성차별적 발언, 직장 내 성희롱을 반복적으로 하여 진정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인격적 존엄성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페미니즘 사상검증 공대위’ 노헬레나 공동대표 역시 “2016년 게임업계의 ‘성우 부당해고 사건’ 이후, 페미니즘 사상 검증은 다른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고 설명했다. “기업과 공공기관은 논란을 피하겠다는 이유로 페미니즘 사상 검증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수용하며, 잘못된 선례를 만들어 왔다. 그 이후 여성혐오 세력은 더욱 대담해졌고, 기업은 노동자를 보호하기보다 여성혐오에 편승하거나 침묵하는 길을 선택해왔다.”

노 대표는 “페미니즘 사상 검증은 여성노동자의 SNS를 파헤쳐 공격하는 것을 넘어, 여성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하고, 일터에서 자신의 역량을 펼칠 기회마저 빼앗고 있다.”고 그 심각성을 강조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인 진정인이 직장에 적응하고 자신의 역량을 펼쳐야 할 중요한 시기에 피해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결국 피해자는 존엄을 훼손당한 채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는 “개인 간의 갈등이 아니”라고 못박은 노헬레나 대표는 “여성노동자의 신념을 검열하고,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모욕하고, 성평등에 대한 인식을 근거로 (조직에서) 배제하는 ‘페미니즘 사상 검증’에 기반한 차별”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국가인권위에 실태조사 및 재발방지 대책 세우도록 요구

기자회견에서 공대위는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2020년, 페미니즘 관련 글을 공유하거나 지지를 표했다는 이유로 괴롭힘과 직업상 불이익을 주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또한 그러한 혐오와 배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렇다면 이제 국가인권위원회는 자신이 세운 그 원칙을 이번 사건에도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더불어 “지금의 인권위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라며 “인권의 원칙보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혐오세력의 목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 속에서, 인권위가 제대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대위는 구체적으로 다음 세 가지 요구안을 제시했다.

첫째, 피진정인의 행위가 성차별적 괴롭힘이자 성희롱이며, 사상 및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 행위임을 분명히 확인할 것.

둘째,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사업장 규모와 관계없이 성희롱·성차별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을 포함한 실효성 있는 개선 대책 마련을 권고할 것.

셋째, 직업능력개발훈련기관 지정·심사 기준에 성평등 규정과 성희롱 예방체계, 인권교육 이수 여부를 포함하고, 위반 기관에 대한 제재 방안을 마련하도록 권고할 것.

공대위는 “누구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일터에서 존엄을 의심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재차 목소리를 높이며, ‘성평등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진정인과 연대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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