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출산도 하고 싶죠’ 트랜스남성의 이야기

박유안 씨는 27세의 트랜스젠더 남성이다. 그는 법원이 생식능력 제거 수술 없이 성별 정정을 인정한 첫 사례의 당사자이다. 현재 혼인평등 소송에도 참여 중이다. 유안 씨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에게 부여했으며, 이름에 담긴 의미는 ‘있을 유’와 ‘눈 안’이다. 그는 자신의 안목과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살겠다는 의지가 담긴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유안 씨는 청소년기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대해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사회의 압박 사이에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그는 자해를 하기 시작했고, 부모가 그 상황을 눈치했다. 결국 유안 씨는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걸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부모는 정신과 진료를 받게 했고, 유안 씨는 무책임한 의료진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는 학교에 다니는 것이 의미가 없게 느껴져 자퇴를 결심하고, 학교도 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부모는 이를 용인하지 않았고, 무단결석 대신 ‘병결’ 처리를 받게 하려고 그를 강제로 여러 병원에 끌고 갔다.
19살이던 그 기간에 집에서 쫓겨났고, 얼떨결에 독립 생활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유안 씨는 미성년자라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고, 미성년자면 일도 혼자 못 구하고, 부동산 계약도 안되고, 하다 못해 적금 하나도 못 깨더라고요. 그때 생활이 정말 어려웠고, 지인들 집을 전전하며 그렇게 살았다. 당연히 정신건강은 불안정했고, 취약했다. 유안 씨는 그 시기,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라고 하면서도 삶의 목표가 잘 지내는 게 아니라, 그저 버텨내는 거였다고 설명했다.
유안 씨는現在 차량 관련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노동은 자아실현의 수단이기 이전에 ‘대출금 상환’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책임감으로 연결된다. 그는 가장이 꿈이라고 말하며 웃었고, 가사노동이 적성이라고 밝힌 파트너와 반려견과의 삶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진행된 팀 이동으로 인해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유안 씨는 지난 팀은 성비도 균등한 편이었고 다양한 연령대가 있었지만, 지금 속한 팀은 남성 위주이고 약간 연령대가 있다. 그는 그런 남성문화에 좀 들어가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긴 해요.
유안 씨의 소소한 즐거움은 ‘식물 돌봄’이다. 한때는 200여개의 화분을 돌봤다고 한다. 이제는 30~40개 화분만 돌보고 있지만, 여전히 식물 돌봄 모임에 참여한다. 그 모임은 30~40대 기혼자가 주류지만, 유안 씨는 역설적으로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는 식물을 좋아하고 돌본다는 건 굉장한 관찰력을 요하는 일이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모임 구성원들은 대체로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조용히 관찰하는 분위기가 있다.
유안 씨는 오히려 퀴어 커뮤니티 모임에서는 ‘우린 소수자니까 다 비슷하겠지’라는 안일한 전제가 개개인의 고유한 결을 지워버리는 경험도 했다. 그는 공동체가 개인을 대할 때 ‘소수자’라는 카테고리로 묶어 일반화하기보다, 한 사람의 고유한 모습을 관찰하고 그 개별성을 마주하는 것이 진정한 존중의 시작인 것 같다. 유안 씨에게 거창한 꿈이나 목표가 있는 건 아니다. 가정을 꾸렸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혼인평등 소송에 트랜스젠더 원고로 참여했고, 트랜스젠더 단체 조각보 활동도 하고 있다.
유안 씨는 사실 배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방송통신대학에 들어갔지만, 회사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어서 휴학 중이다. 그는 만약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수능 시험을 치고 대학에 들어가고 싶고, 어릴 때부터 꿈꿨던 연구원으로 되어 깊이 있는 학업과 연구에 매진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지금 그 꿈을 이루기는 어렵기 때문에, 현실적인 삶을 사는 일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다. 그는 배우자, 반려견, 그리고 가능하다면 아이까지, 함께 사는 가정을 꾸리고 싶다. 가능하다면 직접 임신, 출산을 하고 싶지만, 그가 임신·출산을 한다면 일이 복잡해질 거라는 걸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