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이주노동자가 겪는 재난, 주범은 ‘차별’이다

폭우 속, 기계가 돌아가고 있는 국수 공장 안으로 물이 차오른 상황. 이주노동자가 사진을 찍어 사무실에 있는 팀장에게 보내며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테오 제공]    
폭우 속, 기계가 돌아가고 있는 국수 공장 안으로 물이 차오른 상황. 이주노동자가 사진을 찍어 사무실에 있는 팀장에게 보내며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테오 제공]    

[기획연재] ‘재난약자’의 목소리를 담다① 이주노동자

폭우 속, 기계가 돌아가고 있는 국수 공장 안으로 물이 차오른 상황. 이주노동자가 사진을 찍어 사무실에 있는 팀장에게 보내며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테오 제공]

재난은 잊을 만하면 또 발생해 매번 우리 사회를 무겁게 뒤흔든다. 반복되는 재난 속에서 우리는 ‘재난은 불평등을 타고 흐른다’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재난의 굴레를 만들어내고 어떻게 방치되는지, 또 재난의 위험이 누구의 코앞에 놓여 있는지는 충분히 말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재난은 안타깝지만 어쩌지 못하는 불가항력’으로 흘려보낸다. 위험으로 내몰리는 재난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재난 안전에 취약한 이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생생히 전하고자 한다.

‘위험해도 일해라’ 사고로 내몰리는 이주노동자

폭우가 쏟아진 날. 몰아치는 빗줄기가 공장 안으로 들이쳤다. 국수를 만드는 기계가 돌아가고 있는 1층 공장 바닥은 눈 깜짝할 사이에 빗물이 차올랐다.

“공장에 물이 찬 사진을 찍어서 2층 사무실에 있는 팀장님한테 보여주며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소용없었어요. 전선도 있어서 감전될까 봐 걱정되었지만 계속 일해야 했어요.”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테오(가명, 20대) 씨는 ‘한국에서의 재난’이라는 말을 듣더니 제일 먼저 국수 공장에서 겪었던 아찔한 순간을 떠올렸다.

한국인 노동자들이 퇴근한 뒤 남아 작업과 청소를 마무리하며 마음 졸였던 당시를 기억하는 테오 씨의 짧은 한숨이 이어졌다. 자칫 무슨 일이 생겼다면 그저 ‘사고’로 남았을 아찔하고 황당한 순간들. 이주노동자 테오 씨에게는 특별한 날이 아닌, 계속되는 일상이었다.

노동인구 5% 차지하는 이주노동자, 산재사망률은 한국인 비해 3.6배

테오 씨가 한국에 온 지 2년 반. 그동안 케이크 상자 제조 공장, 커피 캐리어 제조 공장, 국수 공장, 펄프 공장을 옮겨 다니며 일을 했다. 짧은 한국살이 동안 회사 네 곳에서 일을 했지만 언제나 위험을 ‘더’ 감수해야 했다.

“한 회사에서는 갑자기 지게차를 운전하라고 시켰는데, 저는 지게차 운전해 본 적 없어요. 부장님이 ‘야! 차를 운전할 수 있잖아. 지게차 정도는 해야지!’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일 끝나고 남아서 지게차 운전을 배웠지만 사고 나서 다칠까 봐 진짜 걱정했어요. 왜냐면 저는 (지게차) 면허도 없어요.”

테오 씨는 ‘면허가 없는데 운전해도 되는지’, ‘사고가 나서 다치면 어떻게 하는지’, ‘근무 시간 이후에 왜 남아서 배워야 하는지’ 어떤 질문도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그저 사고 없이 무사히 지나길 바랄 뿐이었다. 불편한 관계가 만들어질 때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했던 이주노동자의 경험은, ‘어떤’ 위험들을 참아내게 만들었다.

물이 들이친 공장 안에는 전선도 있어 감전 위험이 있었음에도 노동자들은 계속 일해야 했다. 미얀마 출신의 20대 이주노동자는 그런 현장에서 청소까지 마무리하며 마음 졸였던 당시를 이야기했다. [테오 제공]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노동인구 중 이주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5%이다. 하지만,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률은 비슷한 연령대 한국인 노동자에 비해 최대 3.6배에 달한다. 그뿐 아니라, 신고된 이주노동자 사망자 중에서 사망 정황이 행정 시스템에 기록된 경우는 전체의 6.4%에 불과하다. 나머지 93.6%는 사망 시점이나 정황이 비어 있다.(국가인권위원회 〈이주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인 분석 및 지원 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 2024)

이주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더 많이 죽어가고 있지만, 그 죽음의 경위조차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 현실이다.

탈출하려 해도 한국인 직원 지문 없으면 문도 못 열어…

2024년 아리셀 참사가 증명한 ‘차별의 대가’

법적으로 재난은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산업재해는 사회재난에 포함된다. 특히 언어 장벽과 제도적 소외, 취약한 노동환경에 노출된 이주노동자에게 산업재해는 단순한 작업장 사고를 넘어 삶의 기반을 뿌리째 흔드는 ‘치명적인 재난’으로 다가온다.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를 개인의 불운이나 단순 사고가 아닌, 복합적 재난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하는 이유다.

대형 참사가 일어나기에 앞서 수많은 사소한 징후와 경고가 나타난다는 ‘하인리히 법칙’은 오늘날 이주노동자의 일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위험 신호가 울리고 있지만, 차별과 방관이라는 벽 뒤에서 외면당하고 있을 뿐이다. 일상의 경고를 외면한 대가는 끔찍한 재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2024년 6월 발생한 아리셀 참사가 대표적 사례이다.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리튬전지 제조회사 아리셀에서 일어난 화재는 2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아리셀 화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피해를 키운 주요한 원인 중 하나였음이 밝혀졌다.

희생자 23명 중 18명이 외국 국적을 가진 이주노동자였고, 대부분 ‘불법’ 파견되어 일하면서 자신이 다루는 리튬전지 제품의 위험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작업장 안에 화재가 일어났을 때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훈련은커녕 기본적인 작업장의 구조조차 몰랐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또 대부분의 희생자는 출입문에서 떨어진 곳에서 발견이 되었는데, 이 출입문은 한국인 정규직 직원의 지문을 찍어야만 열 수 있었다. 이주노동자가 감지한 위험은 한국인 관리자의 승인 없이는 위험이 아니었다.

“이렇게 위험한데, 왜 알려주지 않나요”

누군가 다친 뒤에야 붙는 ‘거꾸로 된 경고문’

8년 전 미얀마에서 한국으로 온 라이언(가명, 30대) 씨의 경험도 다르지 않다. 전자공장에 이어 치즈 제조 공장에서 일했던 그는 고온의 물과 화학제품을 다루는 위험한 작업을 했다. 치즈 제조 후 세척 과정에서는 60도 이상의 고온수와 강한 세척제를 사용했기 때문에 화상을 입거나 피부질환을 겪는 동료들이 다수 발생했다. 문제는 이 작업의 위험성을 ‘일하면서 스스로’ 깨달아야 했다는 점이다.

단열이 잘 되지 않고 습기에도 취약한 이주노동자의 숙소에 가득 핀 곰팡이. 이런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호흡기 질환과 폐 질환, 피부 발진, 알레르기 등을 유발할 수 있다. [테오 제공]

“일하면서 뜨거우니까 조심하게 되는 거는 다른 사람들 보고 배워요. 또 치즈 만들고 나서 청소할 때, 약 넣거든요. 이게 피부를 빨갛게 해요. 피부에 닿으면요. 나쁜지 안 나쁜지 말해주는 거는 없어요.”

라이언 씨는 화상의 위험이 있는 작업 공정에 대한 안전교육도, 기계를 청소할 때 사용하는 약품에 대한 안내나 사용법도, 사고 발생 시 대처 방법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화상을 입거나 제품에 노출되어 다치는 동료들을 보면서 눈치껏 일하는 회사에서 누구도 안전하지 않았다.

“(사전에) 안전교육은 없었는데, 사고가 나면 (그때야) 안전에 대해 회사 벽에 써 있었어요. 처음에는 한국어로만 돼 있다가 나중에 미얀마어였는데, 틀렸어요. 글자가 반대예요.”

누군가 다칠 때마다 벽에 붙은 경고문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현실, 기본 안전 체계조차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재난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이주노동자에겐 그림의 떡인 ‘작업중지권’

기후 위기로 인한 폭염 역시 마찬가지다. 폭염이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직접적 요소로 부각되면서,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체감온도 38도 초과 시 작업 중지, 33도 이상 시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취하도록 규정을 정비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옥외 노동자 생명권 보장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이 같은 대책은 안타깝게도 옥외 노동자의 잇따른 사망에서 시작된 것이다.

지난해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7월 초, 인천에서는 맨홀 아래에서 측량 작업을 하던 50대 노동자가 숨졌고, 구미 공사장에서 사망한 이주노동자는 ‘작업 중 앉은 채’ 숨진 것으로 발견되며 큰 충격을 주었다. ‘온열 질환’이라는 사망의 이유는 이 처참한 참상을 드러내기에 한없이 부족하다. 일터로 향하는 첫날, 폭염으로 죽음에 이를 것이라고는 누구도, 꿈에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가 위험한 업무 지시나 부당한 환경을 거부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2004년 도입된 ‘고용허가제’에 있다. 고용허가제는 사업주에게 이주노동자의 고용 및 사업장 변경에 대한 절대적인 주도권을 부여한다. 사업주의 동의 없이는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 미등록 상태가 되는 게 두려운 이주노동자는 직장 내 괴롭힘과 차별, 위험한 환경을 참아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다. 테오 씨가 면허도 없이 몇 시간 연습만으로 지게차를 운전한 것이나, 국수 공장이 침수돼도 계속 일했던 이유 역시 이것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는 일터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 노동자가 스스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작업을 멈추고 대피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에게 이 권리는 멀기만 하다.

“우리가 하나만 잘못해도 일을 더 시켜요. 사장님한테 미움받거나 미등록이 될까 봐 참을 수밖에 없어요. 비자 때문에 회사를 자주 옮길 수도 없으니까요.” 라이언 씨는 직장 내 괴롭힘과 스트레스로 원형탈모를 겪고 4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결국 그만두었다.

2026년 9월 1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2026 전국 이주노동자대회’ 집회에서 다시 만난 테오 씨(왼쪽에서 세 번째). [이진영 제공]

“당신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안전은 ‘동료 시민’이라는 감각에서

차별은 비단 일터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주민을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냉담한 태도는 일상의 재난 상황에서 이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2023년 초 안산 이주민 밀집 지역에 발생한 화재로 어린 자녀 4명을 잃은 사건 이후, 지역 방송국 안산FM이 소방용품 지원 사업을 제안했으나, 지원 대상이 ‘국적자’로 한정되어 무산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안산FM은 4·16재단과 세월호 유가족, 고려인마을 통장, 이주민을 지원하는 종교인 등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연결하며 이주민 가구에 소화기와 화재경보기를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총 이주민 100가구에 직접 소방용품을 전달하고 재난 안전 워크숍, 심폐소생술 훈련, 다국어 재난 번역 앱 보급 등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선주민과 이주민을 연결하고, 동네에서 ‘아는 얼굴’을 만들어가며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초석을 다지고 있다.

제도적 사각지대 속에서도 안전을 만들어가려는 변화의 움직임은 지역 현장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안산FM 정혜실 대표는 “국적과 상관없이 재난은 모두에게 일어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당신의 체류자격이나 국적, 출신 국가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자 주민으로, 한 사회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동료 시민’이라는 감각을 공유하는 것,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의 변화가 절실합니다.”

‘동료 시민’이라는 감각이 일상에서, 일터에서, 이어질 때 재난으로부터의 안전도 함께 확보될 수 있다. 이주노동자의 일터가 안전해지고 이들의 삶이 평등하고 존엄해지는 길은 한국인 동료 노동자, 옆집에 사는 주민, 그리고 길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인식과 행동을 바꿀 때 비로소 열릴 것이다.

위험을 증폭시키고 재난을 불러오는 차별을 거부하는 문화, 일상의 감각이 필수적이다. 제도의 사각지대를 메우려는 연대와, 내 옆의 이주노동자를 ‘동료 시민’으로 바라보는 바로 그 시선에서 안전이 시작된다.

[필자 소개] 〈인권교육센터 들〉 현장발굴팀

은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재난을 인권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2025년부터 재난 피해자, 재난구호현장 활동가, 재난 약자 등을 만나며,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 기사는 아름다운재단의 지원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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