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하나가 데려오는 세계, 당신의 글이 달라집니다

구윤재 시인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구윤재 시인은 최근 첫 시집 '미래 아이 뜀틀'을 출간했다. 시집을 읽은 후 그의 목소리로 시를 들으니 새로운 매력이 있었다. 눈으로 읽을 때는 무심히 지나쳤던 이름들이 귀로 들을 때는 훨씬 또렷하게 다가왔다.
시인과의 대화에서 이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시집에 등장하는 인물们은 은수, 지민, 수연, 나나, 승희, 성우 등이다. 시인은 이름을 쓰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름을 붙이면 해상도가 높아진다. 살아보지 않은 삶, 가보지 않은 장소,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제 것처럼 느낄 수 있게 된다"고 답했다.
이 대답을 듣자마자 공감했다. 해상도는 이미지의 선명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찍지만, 글은 선명하게 볼수록 존재하지 않던 것이 생겨난다. 이름이 붙는 순간 인물은 누군가에서 조금 더 구체적인 사람으로 바뀐다. 그 존재가 어떤 삶을 사는지 생각할 수 있는 단서가 생긴다.
이름이 없는 문장과 이름이 있는 문장을 비교해 보자. '그는 숲에서 걸어 나왔다'와 '유빈이가 숲에서 걸어 나왔다'를 나란히 놓고 읽어보면 같은 말 같지만 다르다. '그'를 읽을 때는 숲에서 걸어 나오는 실루엣을 멀리서 바라본다면, '유빈이'가 되는 순간 카메라의 줌으로 당긴다. 유빈이는 왜 숲에 있었을까, 버섯을 따러 간 걸까, 길을 잃은 걸까. '그'일 때는 묻지 않았던 질문들을 '유빈이'에게는 묻는다. 이름 하나가 붙었을 뿐인데 질문이 늘어나고, 상상이 시작된다.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붙이는 순간 인물에게 이끌리기 시작한다. 지수라는 이름을 적고 나면 지수는 어떤 골목에 사는지, 무엇을 먹고 싶어 하는지, 잠이 오지 않을 땐 어떤 행동을 하는지 같은 것이 궁금해진다. 작가가 인물을 만드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름이 작가를 안내한다고도 볼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든, 소설이든, 에세이든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이름을 쓰는 것이 좋은 글의 조건은 아니다. 이름을 꺼내놓지 않아도 좋은 글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 이름을 쓰지 않아야 완성되는 글도 있다. 다만 글이 제자리걸음을 할 때 이름은 좋은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이미 거기 있었지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름은 글 밖에서도 작동한다. 2025년 기후 시 앤솔러지 '여름, 연루'를 준비하며 시인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과 함께 경기도 화성습지에 갔다. 화성습지는 멸종위기종 철새들이 이동하는 경로에 있는 곳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자연유산이다. 그런데 생태복원이라는 명목으로 비식생 습지를 염습지로 전환하는, '말뚝 벽'을 세우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도요새들의 쉼터가 훼손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현장을 찾았다.
막상 습지에 도착했을 때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새들이었다. 그냥 새들이었다. 아름다웠지만 그저 바닷가 풍경의 일부처럼 보였다. 탐조를 하며 중부리도요, 붉은어깨도요, 알락꼬리마도요, 저어새를 보고 이름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풍경이 달라졌다. 비슷해 보이던 새들이 서로 다른 존재로 보이기 시작했다. 부리와 깃털의 색이 눈에 들어왔고, 다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새들이 좀처럼 착지하지 못한 채 하늘을 맴돌고 있다는 것도 그제야 보였다. 공사로 인해 쉼터가 사라진 탓이었다.
이름을 모르던 때였다면 새들이 하염없이 날고 있구나 하고 지나쳤을 장면이다. 하지만 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자 그 맴돎이 다르게 보였다. 그들이 겪고 있는 일을 외면할 수 없었다. 풍경이 사건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그렇게 연루된 것이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가장 작은 형태의 관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가 좋아하는 양꼬치집 이름이 '봉화양꼬치'이다. 일하는 곳 근처에 있기도 하고 사장님이 푸근하고 서비스도 좋아 자주 찾는다. 그러다 얼마 전 사장님 이름이 '봉화'여서 가게 이름이 봉화양꼬치가 되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 뒤로는 가게 간판을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사장님 얼굴이 함께 떠오른다. 이름을 알기 전과 후, 세계는 같은 세계지만 관계가 조금 달라진 것이다.
구윤재 시인이 시 속 인물들에게 이름을 붙인 것도, 제가 도요새들의 이름을 외운 것도, 결국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낯선 것에 가까이 다가가려는, 혹은 이미 가까이 있지만 제대로 본 적 없는 것을 비로소 바라보려는 태도 같은 것 말이다. 이름을 부르는 일은 세계를 향해 내가 먼저 손을 내미는 일이다. 그 손을 잡을지 말지는 세계가 결정하겠지만,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이라면 이름 하나를 적어보면 어떨까. 굳이 실명일 필요는 없다. 지어낸 이름이어도 괜찮다. 이름을 짓다보면 의외의 질문이 따라온다. 왜 하필 유빈인지, 왜 경숙이가 아니라 민서인지 이런 질문들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름에는 시대와 취향, 분위기가 담겨 있다는 점이다.
이름을 정하는 과정에서 인물의 나이나 성격, 살아온 환경까지 함께 떠오르는 경우도 많다. 유빈이는 젤리를 좋아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