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우리나라인지, ‘좌리나라’인지 [한기호의 정치박박]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static/uploads/rss_39b482c1501c8bc0.jpg)
공직 정점서 “좌(左)아하게” 뿌리없는 조어법
“엉터리 단어, 공식 언어 신경써야” 훈시는 왜
한자교육 강화 빈말이더니…언어 모범의 붕괴
정치권내 공감대 결여, “일베 용어” 내부견제
진보 선명성 구애 폐쇄성…‘구조적 다수’ 뒷전
“개혁” “동지” 찾는 SNS 급증, 일반국민 소외
보수 잊게 할 ‘능력’ 깜깜, 진영논리·면피 급급
내-외치 기능부전에 헌법오독…낯선 대한민국
“‘많이들’ 함께해주세요”라고 당부하면서, 곧장 “‘좌아하게’ 말입니다”라는 진입장벽을 쌓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일 X(옛 트위터)에 정부 성과가 수백건이라고 자평한 사이트를 공유하며 남긴 말이다. 뿌리없는 조어법에, 화자가 대통령인 점에서 당황의 연속이었다. ‘우아(優雅)하게’의 대립어라면 ‘우열(優劣)’ 관계에서 찾기 마련인데, ‘들리는 대로’ 떠올린 우(右)의 반대말 좌(左)를 붙인 것이다. 강성지지층의 은어를 공직의 최정점이 추인한 데다, 드러내놓고 좌파 진영에 호소했다.
두가지 문제를 안고, 이 대통령은 6일 국무회의에서 “국어 문법에 안 맞는 ‘엉터리 단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며 “잘못 쓴 단어를 누군가는 지적해 줘야 언어가 정상적으로 발전한다”고 훈시했다. ‘장례식장이 유족 동의 없이 화환(花環)을 임의 처분할 수 없도록 표준 약관을 개정했다‘는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의 설명을 듣고 “보통 조화(弔花)라고 하지 않나. 경사에 쓰는 꽃은 화환”이라며 “공식 언어엔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화환은 꽃으로 된 고리일뿐, 축하와 근조 모두에 쓰인다.
앞서 보수 원로논객 조갑제 기자가 지난해 4·7월 이 대통령을 만나 ‘한자 교육 강화’에 공감했다지만, 기대감은 반년을 못 갔다. 지난해 12월 12일 교육부 등 업무보고에서 김언종 한국고전번역원장이 ‘학생들이 있을 재(在), 밝을 명(明)조차 어려워한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죄명” 멸칭을 소환하는 식으로 호응했다. 관심은 거기까지였다. 한자 교육 강화·병기 제도화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같다”며 “엄청난 벽을 넘어야 할 것 같다”고 벽을 쳤다. 그 부작용을 9달 뒤 몸소 보여줬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0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언어생활의 모범만 무너지고 있는 게 아닌 듯하다. ‘좌아하게’의 등장에 야권에선 ‘좌려된다’, ‘좌매하다’는 조롱이 나왔다. 진영내 반명(反이재명)으로 내몰린 이들도 떨떠름하다. 진보여권 스피커 김어준씨는 5일 유튜브에서 이를 대통령 지지자를 가장한 일부 네티즌이 만든 “일베 용어”라고 단언해 논쟁이 파생됐다. 이 대통령이 친윤(親윤석열) 검사 시비에 휘말린 김지용 중대범죄수사청장 후보자 인선과 개혁 정체성 갈등을 빚던 ‘강경파’들을 달래다 못해 꾸짖는 X 메시지를 쏟아낸 와중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4일 취임부터 1년 4개월간 X 글만 1030여건 게시했단 분석이 나왔다. 복수의 여론조사업체에서 ‘국정지지율 최저치’를 경신했단 경고음이 잇따랐던 올해 9월 한달에만 128건을 차지했다. 9일에도 이 대통령은 “순수한 급진성”과 함께 “능력도 안 되면서 큰 자리를 요구하고 인사나 국가정책까지 자기 뜻대로 하려다가 잘 안되니 대의명분 삼아 급진 개혁을 내세우며 내부 공격을 한다”고 비판했다. 유독 “동지”를 구호삼는 모습에 일반국민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이른바 진보·개혁 선명성 싸움으로 굽는 동안, 일명 ‘구조적 다수론’은 물건너 간다. 외연확장은 보수진영이 했어야 할 일조차 뺏어와 책임지는 “능력”을 보여줄 때에야 가능하다. 하지만 “명청(이재명·정청래)대전은 현실”을 부르짖으며 자초한 내분부터 “급진 개혁” 정책 부작용까지 무대책이다. 검찰 조직과 수사지휘·보완수사 기능을 2일부터 전면폐지해놓고, 개혁파 검사장 출신 광주중수청장은 “(개청)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며 “당장 정상 가동은 불가능하다”고 실토하는 형국이다.
경찰청장·중수청장·공소청장 모두 공석이며, 처음으로 전과자가 오를 뻔한 법무부 장관직도 비어있다. 일반국민이 처한 ‘범죄 암장’ 위험에 책임지는 자도 없는 치안 불안이다. ‘국가 기능부전’은 이뿐만이 아니다. 군사분계선(MDL) 이남에 1년도 안 된 북한군 매설지뢰 도발로 우리 장병이 발목을 잃고도 누군가는 사건 8일 뒤까지 진상조사를 미루려 했다. 독직(瀆職)군인들이 국민 알권리를 주적(主敵) 삼았고, ‘사고’로 왜곡한 대통령과 장관을 가해 전범(戰犯)이 핑곗거리로 삼고 있다.
지난 10월 1일 오전 경남 창원시 창원지검에서 작업자들이 검찰청 동판을 뗀 뒤 ‘창원지방공소청’과 ‘부산광역공소청 창원지부’라고 적힌 임시 간판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이 국가정보원장 접근을 거부했다거나 통일부 장관을 불편해했다는 기사와 한동훈 의원의 국정감사 검증 질의 보도를 겨눈 PG 남발도 이례적이다. 사실이 아니란 입장 뒤엔 일방의 가치판단이 아니라 육하원칙이 뒤따라야 한다. 이종석 국정원장의 이름을 왜 국내정치의 핵심 이슈인 공소취소 논쟁, 대북송금 재판과 맞물려 봐야하는지도 의문스럽다. 와중에 권력은 5·18 잘못 배운 미성년 야구부 선수생명 끊기에 진심이더니, 죽음을 오락거리 삼은 “진실” 참칭 역사왜곡 상업영화엔 스크럼을 짰다.
반도체 행운을 맞은 증시에서 ‘단일종목’ ETF 졸속 출시로 가치투자를 좀먹었다. 대선공약을 뒤집고 출발한 부동산 세제개편을 누더기로 만들었다. ‘경자유전’ 내세워 전국 농지조사를 강행하더니 돌연 농지에 관제 태양광 깔아보란 속내를 드러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군사도발·비방엔 쉬쉬하더니, 전쟁중 북한군 포로를 넘겨준 우크라이나엔 충돌지향이다. 침공전쟁으로 영국·유럽연합(EU) 제재 대상인 러시아로 연료를 대거 실어날랐단 외신발(發) 의혹에 외교 전선(戰線)이 턱없이 넓어질 지경이다.
효능감 이전에 위기감이 전례없다. 국회에선 법제사법위원장이 행정부 수반을 대통령 아닌 국무총리라고 우기기까지 했다. 삼권분립 4자와 헌법 조문 내 몇자도 읽기 힘들어졌는지,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원수 지위를 초헌법적 지배자로 올려놓고 싶은지 모를 일이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거쳐 ‘방탄 계엄내란’을 기화로 ‘대체불가 대한민국’까지 오면서 ‘우리나라’가 너무나 낯설어졌다. ‘우’라는 음절만 들려도 좌파를 떠올리는 모습에서 착안하자면, ‘좌리나라’라는 표현이 자꾸만 뇌리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