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난에 대한 무시와 낙인을 거부한다

〈아시아 빈민대회〉 일본, 필리핀, 홍콩, 대만, 한국의 ‘빈곤과 불평등’
아시아 빈민대회 컨퍼런스 〈아시아의 빈곤과 불평등 - 반빈곤운동의 오늘〉에서 대만 시민단체 ‘인생백미’(Do You A Flavor)의 아용 추(A-Yong Chu) 활동가가 대만 홈리스들의 거처가 되고 있는 멍자 공원에 대해 설명했다.
“왜 빈곤한 사람들은 제도 밖에 위치해야 하는가? 왜 기본적인 권리를 갖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가난하다고 증명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가?”
아시아 빈민대회(APAP) 컨퍼런스의 첫 세션 “아시아의 사회보장: 현주소와 나아갈 길”의 좌장을 맡은 김교성 중앙대학교 교수의 질문은 아시아 각국 복지제도의 핵심적인 문제를 짚어냈다.
지난 16일 〈아시아의 빈곤과 불평등 - 반빈곤운동의 오늘〉이라는 주제로 열린 컨퍼런스에는 한국, 일본, 필리핀, 홍콩, 대만 5개국의 반빈곤운동 활동가와 법률가들이 모였다. 참가자들은 각국의 복지제도가 빈곤층의 생존권을 보장하기보다, 엄격한 행정의 장벽과 사회적 낙인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일본 ‘미즈기와 작전’…행정의 문전박대와 수치심의 벽
일본의 기타시마 쇼고 변호사/사회복지사는 “일본의 빈곤 현황과 공적 부조의 문제점”을 발표했다. 2021년 기준 일본의 상대적 빈곤율은 15.4%로 한국(15.1%)을 웃돌며, 지난 20년간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공적 부조인 생활보호제도 이용자 수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도 지난 10년간 지속해서 감소했다.
‘상대적 빈곤 인구’ 대비 생활보호 수급 비율(포착률)은 10% 수준에 불과하다. 전체 인구 대비 수급률은 약 1.6%에 그친다. 기타시마 변호사는 낮은 수급률의 원인으로 세 가지 구조적 장벽이 있다고 분석했다. 첫째는 사회적 낙인이다. ‘일하지 않고 돈을 받는다’, ‘게으르다’는 편견과 차별적 시선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어, 빈곤층이 수급 신청 자체를 꺼리게 만든다는 것.
둘째는 수급 신청 단계에서 거부당하는 현실이다. “복지 담당 공무원이 수급 희망자에게 ‘65세 미만인데 왜 일을 안 하느냐?’, ‘친척에게 도움을 청하라’ 등을 말을 하며 수급 신청서 접수를 거부하고 돌려보내는 ‘미즈기와(水際·수변) 작전’이 자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즈기와 작전이란, 적이 상륙하기 전에 해안에서 저지하는 군사작전을 가리키는 표현에서 가져온 말이다.
또한 생활보호 수급 자격으로 ‘자동차 소유’를 금지하고 있는데,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지방에서 살아가려면 차량이 필수로 필요하기 때문에 “차에서 숙식하는 노숙 상태로 내몰리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설명했다.
셋째는 수급을 받는다 해도, 생활비로 충당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 20년간 생활보호 지급 기준액이 네 차례나 인하되었고, 최근의 급격한 물가 상승도 반영되지 않아 수급자들이 민간 푸드뱅크에 의존해 겨우 연명하는 실정이다”라고 전했다.
때문에 일본의 반빈곤 활동가와 법률가들은 공적부조를 시혜가 아닌 ‘법적 권리’로 명확히 하고, 미즈기와 작전을 금지하며, 수급 기준 결정에 있어서 민주적 통제를 보장하는 ‘생활보장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필리핀 도시빈민연대(UPA) 알레한드로 마르셀리노 앤디 활동가가 필리핀 사회의 다차원적 빈곤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일다
필리핀 경제성장의 성과는, 소수민족과 농어촌에 미치지 못했다
필리핀 도시빈민연대(UPA) 알레한드로 마르셀리노 앤디(Andy) 활동가는 “격차 좁히기: 필리핀의 빈곤과 불평등 현황”을 발표했다. 필리핀 정부의 공식 통계상, 빈곤 가구 비율이 2023년에는 전체 인구의 15.5%(약 1,750만 명)이었다. 그리고 팬데믹 이후 지속된 경제성장과 노동시장 여건 개선, 일자리 창출 등으로 2025년엔 전체 인구의 9.7%로 줄었다.
그러나 앤디 활동가는 “이러한 지표는 심각한 착시를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6년 기준 필리핀 5인 가구의 공식 빈곤선은 월 14,634페소(1인당 하루 약 97페소, 한화 약 2,000원)에 불과할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낮게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올해 6월 필리핀 여론조사기관 SWS(Social Weather Stations)에 따르면, 필리핀 가구의 무려 49%(약 1,360만 가구)가 스스로를 빈곤하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필리핀 통계청은 인구의 12.8%가 교육, 보건, 주거, 위생, 고용 등 다차원적 결핍을 겪는 ‘다차원적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차원적 빈곤지수는 소득빈곤선 위에 있는 필리핀인 가운데서도, 기본서비스 이용과 삶의 질 측면에서 여전히 상당한 장벽을 경험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드러낸다.”
또한 이런 현실은 “경제성장의 성과가 사회 전체에 동일하게 체감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앤디 활동가는 말했다. “팬데믹 이후의 경제성장 성과는 메트로 마닐라 등 도심에만 집중되었을 뿐, 농어촌 지역과 민다나오 등 역사적으로 소외된 주민들과 부족 공동체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일회성 현금 지급 프로그램에 의존하고 있으나, 정치적 부패와 데이터 불확실성으로 인해 근본적인 빈곤 탈출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앤디 활동가는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보다 현실적인 ‘빈곤 측정’, 더욱 강력한 사회보장제도, 양질의 일자리와 공공서비스에 대한 폭넓은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홍콩 악명높은 ‘쪼개기 주택’에 사는 고령의 도시 빈민들
홍콩 소코(SoCO)의 응와이퉁(Ng Wai Tung) 활동가는 “홍콩의 빈곤 현실과 정책 변화를 위한 활동”을 발표하며, 열악한 주거 현실과 정책의 후퇴를 고발했다.
홍콩은 도심 내 분할주택(기존 주택을 여러 개 작은 방으로 나눠 각각 임대하는 형태로, 화장실·주방 등을 공동 사용하거나 매우 협소한 경우가 많음), 칸막이방, 철창 집 등 비인간적인 주택에 거주하는 인구가 약 21만5천 명에 달한다고 한다.
홍콩 소코(SoCO)의 응와이퉁(Ng Wai Tung) 활동가가 열악한 홍콩의 주거 환경을 설명했다.
응와이퉁 활동가는 “낮고 불안정한 임금을 받는 도시 빈민층은 일자리와 교통편의 때문에 도심의 열악한 환경을 떠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청사완의 이와빌딩은 건령 61년의 건물로, 240개가 넘는 분할주택으로 나뉘어 있다. 주민의 90%가 60세 이상이다. 하지만 이 고령 주민들은 생활기반과 지역사회의 관계 때문에 도심 지역을 쉽게 떠날 수 없다.”
그리고 홍콩 정부의 정책적 퇴행이 심각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식 빈곤선을 폐지했기 때문이다. “홍콩 정부는 2022년 이후 기존의 빈곤선을 더 이상 적용·발표하지 않고 있다. 대신 ‘맞춤형 빈곤 완화’ 정책을 중심으로 빈곤 대책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분할주택 거주자, 한부모 가구, 노인가구’ 등 일부 집단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장애가구나, 저소득가구 등은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홍콩은 올해 3월, 분할주택을 1년 내로 등록한 뒤 3년의 유예기간 동안 개보수하고, 이후 최소 기준을 충족시켜야 합법적으로 계속 임대할 수 있게 하는 ‘간박방(簡樸房 간소하고 소박한 방) 조례’를 도입했다. 그러자, 임대인이 주택을 개조한다는 이유로 세입자들을 대거 퇴거시키면서 수많은 노인과 취약계층이 쫓겨나고 있다고 응와이퉁 활동가는 이야기했다.
게다가 홈리스 전용 공적 주거나 복지 정책은 전무하다는 비판이다. 응와이퉁 활동가는 “공원에서 밤 9시 이전에는 눕지 못하게 통제하거나, 소지품을 무단 철거하는 등 홈리스 배제 정책으로 일관해, 소코(SoCO)에서 정부를 상대로 3차례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승소를 이끌어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번영 속에서 배제된 사람들, 대만의 홈리스
대만 시민단체 ‘인생백미’(Do You A Flavor)의 아용 추(A-Yong Chu) 활동가는 “상처 입은 섬과 낙인을 짊어진 사람들: 대만의 빈곤 경험 당사자들이 겪는 낙인, 행동, 그리고 사회변화”를 발표했다. 대만은 반도체와 AI 산업의 성장에 힘입어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공식 빈곤율은 7.3% 수준으로 낮지만, 보조금을 받는 인구는 5% 미만에 불과하다.
아용 추 활동가는 “대만의 사회복지법제는 저소득층 보조금 심사 때 사회복지사가 직접 방문해 조사할 ‘고정 주소지’를 필수 조건으로 요구한다”고 말하며, “주거가 없는 최빈곤층인 홈리스는 보조금을 받을 자격에서 행정적으로 전면 배제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정부는 타이베이 메인역이나 멍자 공원 같은 홈리스들의 거점을 행정상 주소지로 인정하지 않으며, 최근에는 멍자 공원을 리모델링 후 관리를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홈리스의 접근을) 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용 추 활동가는 “국가(대만)가 국제사회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와 주권을 증명해야 했듯, 가난한 이들도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해 자신이 얼마나 유용하거나 불쌍한지 끊임없이 증명하도록 강요받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인생백미에서는 빈곤층을 시혜 대상이 아닌 사회적 삶의 주체로 세우는 ‘빈곤한 사람들이 만드는 타이베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2026년 10월 16일, 명동 가톨릭회관 7층 대강당에서 아시아 빈민대회 컨퍼런스 〈아시아의 빈곤과 불평등 - 반빈곤운동의 오늘〉이 열렸다. ⓒ일다
한국의 복지 사각지대를 만드는 ‘기준중위소득’과 ‘부양의무자 기준’
재단법인 동천의 김산하 변호사는 “발굴되어야 할 빈곤, 증명되어야 할 권리: 한국의 불평등과 제도의 배제”를 주제로, 한국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한계를 짚었다.
첫째는 비현실적인 기준중위소득이다. 보건복지부가 가공해 발표하는 “기준중위소득이 실제 통계상의 소득과 큰 괴리”가 있다. 2024년 기준 1인 가구 기준중위소득은 222.8만원으로, 가계금융복지조사 중위값 276만원과 소득분배지표 중위값 320.9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이로 인해 비수급 빈곤층이 81만~113만 가구에 이른다고, 김 변호사는 설명했다.
둘째는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 남아있는 “부양의무자 기준”이다. “가족에게 부양 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실질적 빈곤층을 배제하며, 단절된 가족 관계를 당사자가 수치스럽게 입증하도록 강요한다”는 것.
셋째는 “발굴에만 집착하는 행정”을 지적했다. 김산하 변호사는 “정부가 26개 기관의 47가지 정보 등 빅데이터와 AI 알고리즘을 동원해 위기가구 ‘발굴’에 집착하지만, 발굴된 인원의 절반은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으로 연계되는 비율은 6.7%(2025)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오히려 과도한 개인정보 침해와 ‘부정수급’이라는 프레임으로 수급자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회보장은 기본권…“우리는 무시당하는 것을 거부한다”
컨퍼런스에서는 아시아 5개국의 복지제도가 ‘생산주의 복지’(Productivist Welfare)의 역사적 유산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복지를 인간의 존엄과 권리가 아닌, 경제성장의 보조적 수단으로 다루어 왔고, 국가의 재정 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돌봄과 부양 책임을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해 왔다는 점이다.
각국 정부는 수급 자격을 극도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부정수급’ 방지와 예산 절감이라는 명목 아래 가난한 사람들에게 수치스러운 ‘빈곤 증명’을 요구해왔다. 일본의 ‘미즈기와 작전’, 대만의 ‘고정 주소지 요건’, 홍콩의 ‘공식 빈곤선 폐지’, 한국의 ‘부양의무자 기준’, 필리핀의 ‘비현실적 빈곤선’은 모두 가난한 이들을 사회안전망 밖으로 밀어내는 구조적 걸림돌이다.
아시아 빈민대회에 참가한 각국 활동가들과 빈곤 당사자들은 “우리는 무시당하는 것을 거부한다.”고 선언하며 아시아 빈민의 초국적 연대 의지를 밝히는 한편, 각국이 사회보장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기본적 권리’로 재정립할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