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와인을 바꾼 건 포도가 아니라 그릇이었다

루에다는 스페인에서 베르데호 화이트 와인의 산지로 알려져 있다. 루에다의 와인은 대체로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저온으로 발효한 젊고 신선한 화이트 와인이다. 그러나 루에다의 와이너리들은 다시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더 깨끗하게, 더 차갑게, 더 정확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베르데호의 산뜻한 산미와 허브 향을 지키면서도 더 깊은 질감과 긴 여운을 만들 수는 없을까.

루에다의 와이너리들은 한 가지 용기만 고집하지 않는다. 스테인리스, 오크, 푸드르, 콘크리트 에그, 유리병, 진흙 항아리 등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스테인리스는 베르데호의 산뜻한 과실 향과 허브 향을 깨끗하게 살려준다. 그러나 너무 스테인리스에만 의존하면 와인이 모두 비슷해질 위험이 있다. 그래서 일부 와이너리들은 스테인리스로 맑은 출발점을 만들고, 콘크리트로 입안의 폭을 넓히고, 목재로 구조와 긴 여운을 더하며, 유리병과 흙항아리로 시간과 산화, 질감의 다른 층을 만든다.

루에다의 보데가 데 알베르토에서 만난 콘크리트 에그는 달걀처럼 둥근 큰 콘크리트 발효조이다. 모서리가 없는 구조 덕분에 효모 앙금인 리스와 와인이 더 오래 접촉하며, 입안의 질감과 둥근 여운을 만드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콘크리트 에그는 바닐라나 토스트 향을 강하게 입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콘크리트의 표면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안쪽을 코팅했는지, 와인과 직접 닿는 면이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 산소 접촉이나 미세한 무기 성분의 움직임이 달라질 수 있다.

루에다의 보데가 데 알베르토에서 만난 대형 유리병 다마후아나는 태양을 끌어안는 용기이다. 다마후아나는 와인이나 올리브유, 각종 액체를 담는 데 쓰이던 전통적인 대형 유리 용기이다. 병들은 바닥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유리 너머로는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와인이 고여 있었다. 다마후아나는 신선한 베르데호를 만들기 위한 일반적인 용기가 아니라, 도라도라는 특별한 산화 숙성 와인을 위한 장치에 가깝다.

루에다의 보데가스 베르데알의 공장 안에는 현대식 제조 공간과 별도의 숙성 공간이 있다. 유리벽 너머로 오크배럴과 숙성 설비가 보이고, 바깥에는 현대식 제조 공간의 차갑고 정돈된 분위기가 이어져 있다. 데 알베르토가 땅속 동굴의 서늘함과 습도를 이용해 와인을 익혔다면, 베르데알은 그 조건을 지상 공장 안에서 현대식 설비와 공간 구성으로 재현하고 있다.

루에다의 와이너리들을 보고 있자니 한국의 장독을 떠올리게 된다. 장독은 흙을 빚고 구워 만든 다공성 그릇이다. 그러나 한국의 장류와 액젓 산업도 용기는 바뀌었다. 장독에서 1톤 규모의 PE 발효통으로, 작은 플라스틱 통과 비닐 내포장으로, 시멘트 탱크와 스테인리스 설비로 이동했다. 그것은 대량 생산과 위생, 관리 효율을 위한 변화였다.

루에다에서 본 와인 용기의 변화는 더 많이, 더 쉽게, 더 싸게 만들기 위한 변화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다르게, 더 깊게, 더 설득력 있게 만들기 위한 변화에 가까웠다. 스테인리스는 신선함을 맡고, 오크와 푸드르는 시간과 구조를 맡고, 콘크리트 에그는 질감을 맡고, 다마후아나는 태양과 산화를 맡고, 티나하는 흙의 숨결을 맡았다. 용기는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차별화의 언어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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