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영알 1일 2산 도전! 귀경길에 모두 쓰러지다 [영남알프스의 가을 1일 2산 르포 (1) 천황산]

노란 금계국과 어우러진 천황재의 억새군락.
노란 금계국과 어우러진 천황재의 억새군락.

노란 금계국과 어우러진 천황재의 억새군락.

"다신 1일 2산 같은 건 하지 말자."

그게 모두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이 말을 끝으로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은 고요해졌다. 운전자를 제외하곤 모두가 차창에 머리를 대고 꾸벅거렸다. 그만큼 체력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지쳤다. 주행거리 800km에 9시간 30분, 산행거리 15km에 7시간 30분. 잠에서 깬 지는 23시간이었다.

1일 2산. 하루에 독립된 다른 산을 두 개 오르는 방식이다. 즉 서로 들날머리가 달라야 한다. 능선을 따라 옆에 붙은 다른 산을 오르는 건 1일 2산이라 칭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하루에 여러 산을 오르는 게 최근 몇 년 새 매우 유행하고 있다. 대개 100대 명산 때문이다. 주말에만 산행하는 직장인들 입장에선 먼 타지에 가서 산 한 개만 인증하고 돌아오자니 시간이 아깝다. 그래서 체력이 되는 대로 차를 몰고 유목민처럼 2개, 3개씩 한 번에 오르고 돌아오는 것이다. 선호되는 코스는 단연 최단코스다. 정상만 갔다 오면 되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산행 방식이 보편적인 곳이 100대 명산을 제외하고 또 하나 있다. 영남알프스다. 은화를 주는 완등 인증 사업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초기에는 은화 수량이 제한된 터라 선착순으로 빨리 끝내려고 하루에 3개, 4개씩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은 과열된 경쟁을 식히려고 한 달 최대 인증 봉우리를 2개로 줄여둔 탓에 한결 덜하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영남알프스 완등을 노리는 사람들은 한 달에 한 번, 두 개 산을 올라서 끝내려고 한다. 일종의 뉴노멀인 셈이다.

물론 보수적인 민족, 아니 산족정론지(?) 입장에서 이런 산행 패턴은 지양해야 하는 것이 맞다. 특정 코스에만 사람이 몰리면 내딛는 등산화가 만드는 답압에 의한 식생 피해가 커질 수 있고, 또 출발 기점인 마을 주민들에게는 주말이면 주차난이나 새벽 소음공해 등의 폐를 끼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산을 아래부터 정상까지 구석구석 오롯하게 둘러보고 산세를 느낄 겨를이 없다.

하지만 이러한 불만을 감수하고도 1일 2산을 택하는 이들이 있다.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직접 해보기로 했다. 목표는 1산으로 표충사 기점으로 천황~재약 연계산행을 한 후, 2산으로 석남사 기점으로 가지산을 가는 것. 1일 2산 초보답게 포부는 컸다. 억새도 보고, 바위 능선도 타고 싶었다. 그리고 당연히 거대한 영남알프스 산군은 이런 계획을 철저히 박살냈다.

서울 건대입구역 6번 출구. '초보운전'이란 글자가 큼지막하게 붙은 회색 SUV 한 대가 어리바리 나갈 곳을 찾아 헤맨다. 산행의 어려움보다 먼저, 운전의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다. 굼뜨게 사진기자와 2명의 게스트까지 픽업을 하고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빠져나가자 새벽 5시, 내비게이션은 3시간 30분은 족히 걸린다고 알려온다.

흔들거리는 차체에 사진기자가 불안한 목소리로 제안한다. 생각보다 괜찮은 터라 고사하고 계속 차를 모는데 영 시원찮은 눈치다. 결국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을 작동시키고 전방주시만 하자 놀랍게도 모두 평온히 모자란 잠을 채운다. 약간 부아가 나서 오기가 생기기도 했지만, 당장 덜해진 운전 피로도 탓에 AI에게 마저 긴 거리를 맡겼다.

휴게소에 잠깐 설 때면 동작이 급했다. 음식 주문을 미리 걸어두고, 그 틈에 화장실도 가고 물건도 사뒀다. 밥이 나오면 후루룩 대화 없이 마시듯 먹고, 또 바로 차에 탔다. 그렇게 부지런히 가고, 가고, 가니 표충사다.

산행 채비를 마치고 표충사 일주문을 지난다. 천황산 정상까지 보통 3시간에서 3시간 30분 정도를 잡는다. 정해진 시간계획대로 가려면 이를 1시간 정도 당겨야 했다. 표충사의 내력이 적힌 안내판에서 '임진왜란 때 활약한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대사를 모신 호국정신이 깃든 절'이라는 한 줄의 설명만 머릿속에 넣고 갈음한 뒤 바로 천황산 방면 이정표를 따라 오른다.

"생각보다 할 만할 것 같아요. 날씨가 산에 가기 딱 좋은데요?"

아웃도어 마니아 윤용만, 전혜선씨의 의욕이 높다. 악명 높다는 오르막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는지 생각보다 속도가 나는 편한 계곡길이다. 윤씨는 "영남알프스라고 하면 뾰족뾰족한 이미지인데 여긴 아기자기하다"고 했다. 옆에서 하염없이 시원하게 흐르는 금강동천이 등줄기에 어쩌다 한 번 솟아오르려는 열기마저 잡아채 사라진다.

작은 소와 폭포가 이어지다가 마치 중국 태항산에 온 듯 커다란 폭포 위에 자리 잡은 암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금강폭포와 한계암이다. 표충사의 혜각, 석정, 수안 스님이 본래 수행했던 금강산과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왜 스님들이 더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의문은 금방 풀린다. 금강폭포를 기점으로 등산로는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든다. 해발 501m에서 '응원합니다'란 글귀가 적힌 앙증맞은 바위부터 본격적이다. 이젠 시간과도 싸우고, 나와도 싸워야 한다. 정상만을 생각하며 정신없이 밀어붙인다. 가뜩이나 출발 시간도 늦어졌다. 지체할 수 없다. 몸이 확실히 풀리면서 계단이나 돌길도 거침없이 밀고 오르는데 별안간 거대한 너덜지대가 등장한다.

"저기 위에 보세요. 이정표가 보여요!"

너덜지대 상단 끝에 나무로 된 이정표가 보였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대로 한가운데를 질러가기로 했다. 너덜을 껑충껑충 뛰어 다니면서 치고 오른다. 고정돼 있을 줄 알고 밟았더니 흔들거려 아찔하길 몇 번. 가까스로 너덜을 빠져나온다. 그러고 돌아보니 너덜지대 끝부분을 따라 걸어 오르면 훨씬 수월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천황산에서 천황재로 내려서는 길은 데크로 조성돼 있다.

경주마처럼 올랐다. 오르면서 글도 쓰지 않고, 사진도 찍지 않았다. 그럴 겨를이 없었다. 이미 궤도에 오른 심장박동수를 떨어뜨리면 다시 올리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땅에 떨어진 신갈나무 나뭇잎들에 발이 미끄러지면서도 앞으로, 위로 오르는 몸짓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2시간 10분의 헐떡거림이 끝나자, 천황산 정상이다.

'천황산天皇山'이라 적힌 정상석을 보는 순간 그간 능선이 막아줬던 바람이 얼굴을 강타했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풍속이었다. 하늘은 구름으로 하얗게 칠해졌다. 그리고 비가 조금씩 내렸다. 아니, 비라기보다는 구름 방울이 그대로 직격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천황산 정상의 억새들도 모두 이 구름에 묻혔다. 은빛 억새 대신, 은빛 비구름이다.

일단 계획대로 재약산에 오르고자 길을 서둘렀다. 천황산에서 재약산 사이 천황재로 내려서는 길은 데크가 잘 조성돼 있어 걷기 편하다. 가는 길에 드문드문 나타나는 억새들을 붙잡아 보이지만 그 양이 많지 않다. 가끔 구름이 걷히면 재약산의 우람찬 암릉과 어우러져 멋진 모습을 연출하곤 하지만, 충분히 눈에 담으려고 하면 곧 사라져버리고 만다.

천황재에 도착하자 노란 금계국이 느낌 있게 포인트를 준 아담한 억새밭이 나타난다. 이 억새군락이 원래 옆 능선과 어우러지면서 꽤 멋진 사진 포인트가 된다고 했다. 그림을 기다리며 시간을 좀 보내봤지만, 도저히 오래 버틸 환경이 아니었다. 구름에 축축하게 젖어든 몸을 강풍이 말리자 금세 체온이 떨어졌다.

천황재에서 올려다 본 재약산. 흘긋 암릉을 보여줬지만, 곧 안개 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아 정말 안 되겠어요. 하산! 하산입니다."

재약산을 넘어 사자평을 가도 계속 이런 날씨라면 얻는 게 없다. 심지어 속도도 느려지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가지산은 해가 지고 나서야 오를 전망이었다. 결국 패잔병처럼 억새밭 사이로 난 길을 헤치고 내려선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길인지 꽤 묵었다. 맨 살 여기저기를 긁히고 난 후에야 길이 넓어져 끝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내리막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터벅터벅 발 내딛는 소리와 챙챙거리는 신경질적인 등산스틱 소리만 산에 울렸다.

우리는 마치 패잔병과 같은 몰골이었다. 재약산까지 가지도 못했다. 정상에 올라야 재약산載藥山의 원래 이름이 재악산載嶽山이고, 지나온 천황산은 일제강점기 들어서 붙은 이름이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느니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할 텐데. 도무지 염치가 없다. 산을 반쪽은커녕 반의 반쪽도 제대로 못 봤다.

일단 아쉬움은 산 위에 남겨둬야 했다. 저체온증도 방지할 겸 하산이 먼저다. 천황재에서 정신없이 떨어진다. 네이버지도를 기준으로 진불암 갈림길 지나서 한 번 더 나오는 갈림길에서 하산은 취향 차이다. 좀 더 얇고 능선을 그대로 타고 내리는 길은 롤러코스터처럼 수직 낙하한다. 힘들고, 버겁지만, 속도는 최고다. 반면 굵은 길은 사면을 지그재그로 타고 내려서서 한결 무릎 부담이 편하지만, 길어지는 거리는 어쩔 수 없다.

"아~ 비야, 올 거면 확 좀 더 와라. 오늘 등산 그만하게."

분명 기우제를 지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휙 돌렸지만 누구도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다는 표정으로 딴청을 피운다. 소요시간도, 거리도 짧은 편이지만 분명 종일 산행한 것 같은 데미지가 누적됐다. 앱에 기록된 획득고도가 1,200m다. 또 오른 만큼 고스란히 내려오기도 했다.

주차장으로 돌아온 패잔병들은 전의가 한풀 꺾였다. 하지만 전쟁은 가혹한 법, 다음 전장이 있었다. 그나마 2산으로 택한 가지산에 이르면 날씨가 조금은 맑아질 거란 예보가 있었다. 표충사 앞 편의점에서 급하게 컵라면을 먹는 듯 마시는 듯하고 나선 또 차를 몰았다.

룸미러로 바라본 천황산과 재약산은 여전히 안개 속. 20년 전 월간山 기사에선 이 안개 속 모습을 '재약 8봉이라 일컫는 기암괴봉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능선마다 곧추서 파고들 틈이라곤 전혀 없을 만큼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있는 철옹성'이라 평했었다. 그 철옹성이 안개마저 해자처럼 둘렀으니 도저히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40여 분 차를 타고 가지산 들머리에 이르렀다. 오후 3시. 먼저 내려온 등산객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산 위에 날씨는 좀 어때요?"

"안개 땜에 한 개도 안 보여가꼬 걍 내리 왔다. 비만 쫄딱 맞아 뿟네."

아연실색했다. 속으로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편집장한테 전화해서 날씨 좋을 때 다시 가겠다고 해야 하나?' 등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 뒤를 이은 생각이 답을 줬다.

'잠깐, 그러면 800km를 또 운전하라고?'

질끈. 누군가는 등산화 끈을 묶는 소리였고, 누군가는 체념하고 눈을 감는 소리였다.

천황산을 오르는 코스는 두 가지로 굳어져 있다. 하나는 얼음골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오는 것, 다른 하나는 표충사에서 출발해 원점회귀하는 것이다. 케이블카의 경우 편도 티켓은 판매하지 않고 왕복권만 판매하고 있는데 꼭 다시 타고 내려가지 않아도 무방하다. 즉 능선을 쭉 종주한 후 사자평에서 표충사로 하산해도 된단 뜻이다. 티켓값이 아까우면 재약산까지 간 후 천황재에서 샘물상회 터를 거쳐서 돌아가면 된다.

표충사에서 출발해 천황산~재약산~사자평을 거쳐 표충사로 가는 코스는 거리가 13km 정도 된다. 7시간 정도 걸린다. 길은 크게 희미한 곳은 없으나 급경사에 잡석이 깔린 구간이 많아 속도를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표충사에 넓은 주차장이 있다. 주차비는 승용차 기준 4,000원. 차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을 사용하고 바로 산행을 시작할 수 있다. 주차비를 아끼려면 1km 떨어진 부설주표충사관광지공영주차장에 대고 걸어오면 된다.

대중교통으로 표충사를 찾으려면 밀양버스터미널에서 하루 6회(08:00, 10:30, 11:40, 12:40, 14:40, 18:20) 운행하는 시외버스를 타면 된다. 표충사 1~3번 시내버스를 타도된다. 터미널에서 하루 4회(06:35, 09:10, 13:20, 15:50) 운행한다. 단 시외버스에 비해 운행시간도 부정확하고, 소요시간도 더 걸린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표충사관광지 일대에 식당가가 있다. 약산가든(352-7786)은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출연했던 흑염소 전문 맛집으로 역사가 57년에 이른다. 흑염소불고기(280g) 6만 원, 흑염소육회(260g) 6만 원, 더덕정식(2인 이상, 1인 1만7,000원), 더덕구이 3만 원 등이다. 7명 이상 방문하면 염소 한 마리 풀코스를 1인 7만 원으로 즐길 수 있다. 건강하고 산뜻하게 보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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