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엔화 개입 효과 절반 날아갔다…이번엔 미국의 실탄이 도마에 [마켓프리즘]

◆…(사진=GPT5.6 제작)
◆…(사진=GPT5.6 제작)

미국과 일본이 15년 만에 공조해 엔화를 떠받친 지 열흘 만에 상승분의 절반이 되돌려졌다. 엔·달러 환율은 10일 1% 오른 159.29엔으로 마감해 주요 10개국 통화 가운데 가장 부진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장은 그 말을 뒷받침할 실탄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엔화는 지난달 달러당 164엔 근처까지 밀려 1986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이후 미국과 일본 양국이 1998년 이래 처음으로 공동 개입에 나서면서 이달 초 155엔대까지 올랐다. 그리고 10일 159.29엔으로 되돌아왔다. 전문가들은 시장이 추가 개입이 없었다는 데 실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투입된 금액은 적지 않았다. 블룸버그가 중앙은행 계정을 분석한 결과 일본당국은 지난달 30일 약 530억달러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하루 기준 사상 최대 규모다. 다음 날인 31일에도 340억달러가량이 추가로 들어갔다. 베센트 장관은 개입 직후 미국 경제와 납세자에게 도움이 되고 세계 경제를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일본을 지원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환율 개입에 쓸 수 있는 재무부의 전용 수단인 외환안정기금 보유액은 2200억달러에 못 미친다. 일본이 하루에 530억달러를 쓴 것과 비교하면 상황을 뒤집을 만큼의 규모는 아니라는 평가다. 원리상 무제한 여력을 가진 곳은 연방준비제도다. 그런데 지난달 개입에서 연준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이 지켜보는 지점은 160엔이다. 2024년 여름 이 선을 넘자 당국이 개입했던 전례가 있어 심리적 기준선으로 자리 잡았다. 에버코어 ISI의 마르코 카시라기와 강 류는 미국과 일본이 엔화가 160엔 위에서 지속적으로 거래되도록 놔두면 시장이 개입 부재를 미국의 달러 매도 기피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봤다.

주목할 것은 일본 기업들의 반응이다. 엔저로 이익을 보는 수출기업들까지 환율 안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쓰비시전기의 후지모토 겐이치로 최고재무책임자는 "일본 경제 전체에 영향을 주는 문제는 자사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엔저가 곧 모든 것이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쓰이물산의 다나카 마코토 최고재무책임자는 "무엇보다 시장이 안정되고 변동성이 낮아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일본무역진흥기구의 이시구로 노리히코 회장은 엔화 약세가 수출에 실질적인 이점이 있지만 일본 기업은 원자재를 거의 전부 수입한다며, 특정 환율 수준에서는 비용이 오히려 늘어나기 때문에 수출기업이 엔저로 항상 이득을 본다고 말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제트로가 지난 3월 발표한 조사에서 기업들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꼽은 환율대는 달러당 120~124엔이었다.

기업들의 부담은 소비자가격으로 넘어가고 있다.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은 엔화 하락을 상쇄하기 위해 일본 내 가을·겨울 상품 일부 가격을 4%가량 올릴 계획이다. 기대 자체가 낮아지고 있다는 언급도 나왔다. 미쓰비시전기의 후지모토 최고재무책임자는 일본의 펀더멘털과 회복되지 않는 무역수지를 고려하면 달러당 120~130엔은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의 카막샤 트리베디를 비롯한 전략가들은 개입에 대한 반응이 비교적 조용했던 것이 통화 약세의 근본 원인을 보여준다며, 세계적 여건 변화나 정책적 이변이 없으면 시간이 지나며 하락 압력이 다시 나타날 것으로 봤다. 관건은 일본은행이다. 7월 회의 주요 의견에는 물가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한 위원이 인상 속도를 높일 가능성을 언급한 내용이 담겼다.

스와프 시장은 9월까지 인상 확률을 63%로, 10월 인상은 거의 확실한 것으로 반영하고 있다. 다만 그것으로 충분한지에는 의문이 남는다.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알렉스 코언 외환전략가는 엔화가 강해지려면 더 강력한 개입이나 일본은행의 9월 인상 신호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 흐름은 국내 시장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난달 공조 개입에는 한국도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베선트 장관이 개입 이유로 아시아 통화의 연동성을 든 만큼, 엔화가 다시 밀리면 한국도 같은 틀 안에서 움직일 여지가 생긴다. 원화는 지난달 달러 대비 8% 가까이 절상됐는데 그 동력은 반도체 기업의 달러 환류와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이었다. 엔화처럼 개입으로 방향을 튼 것이 아니어서 성격은 다르지만, 미국 금리가 다시 오르면 좁혀진 한미 금리차가 벌어진다는 점은 같다.

일본 기업들이 겪고 있는 문제도 남의 일이 아니다. 환율이 빠르게 움직이면 수출로 얻는 이익보다 원자재 비용과 실적 예측의 어려움이 더 크게 다가온다는 것이 이번에 나온 목소리들이다. 미쓰이물산이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도 변동성이 낮아지기를 바란다고 한 대목이 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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