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알리바바, 포드는 CATL…美 제재 속 커지는 中 기술 의존도

미국 정부가 중국의 기술 굴기를 억제하기 위한 수출통제를 포함한 여러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인공지능부터 전기차 배터리까지 세계 주요 기업들의 사업에 중국 기술이 점점 더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애플은 중국 내 AI 서비스를 위해 알리바바와 바이두를 선택했고 포드는 배터리 기술력을 위해 CATL과 손잡았다. 또한 폭스바겐은 중국에서 스마트 전기차를 개발하기 위해 샤오펑과 협력 중이며 스텔란티스는 전기차 생산과 공동 구매 분야에서 리프모터와의 파트너십을 확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기업들의 중국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전 세계 산업에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DC의 키티 폭 중국 담당 전무이사는 5년 전만 해도 중국은 주로 글로벌 기업들이 제품을 판매하러 가는 시장이었지만 현재는 특정 산업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찾는 곳이 됐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2019년 화웨이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이후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 장비에 대한 규제를 도입했다. 또한 중국의 반도체, 양자기술, AI 등의 분야에 대한 일부 미국의 투자를 제한하고 파운드리 업체인 SMIC 등 중국 기업을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 중국은 여러 기술 산업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수먼 만달 수석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BYD, 창안자동차, 체리자동차 등 중국 업체들은 지난해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의 약 63%를 차지했다. CATL, BYD, CALB 등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점유율도 70%에 육박했다.
만달은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기업과의 협력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는 주요 요인으로 비용 경쟁력, 규모, 제조 역량, 공급망 통합, 빠른 혁신 속도 등을 꼽았다. 그는 중국의 기술 굴기는 저비용 제조에서 규모, 공급망의 깊이, 혁신 속도를 중심으로 한 경쟁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변화는 특히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CATL은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 통합돼 있다. 예를 들어 포드는 미국 미시간주에 35억달러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면서 CATL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현지 기업들과 협력한다. 폭에 따르면 중국에서 사업을 운영하면서 AI 서비스나 클라우드 인프라가 필요한 다국적 기업들은 외국계 사업자에 대한 규제 때문에 현지 업체와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는 애플의 알리바바 및 바이두와의 협력을 언급하며 중국 내에서는 이런 협력이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옴디아의 리안 제이 수 수석 애널리스트는 특히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기 위해 현지 업체들과 협력한다고 설명했다.
AI 분야의 경우 중국 기업들이 개발한 모델의 성능이 향상되며 더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를 찾고 있다. 그 결과 중국 기술을 찾는 이유가 단순히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라는 기존 인식도 변하고 있다. IDC가 올해 초 실시한 조사에서 유럽 기업들은 중국 AI 모델을 도입하는 최대 이유로 비용이 아닌 보안 및 규제 준수 요건과 뛰어난 성능을 꼽았다. 폭은 서구 기업들이 저렴하기 때문에 중국 AI로 몰려가고 있다는 통념은 원인을 거꾸로 이해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앤트로픽과 오픈AI와 달리 알리바바와 딥시크 등 중국 기업들은 오픈소스 모델에 집중해왔으며 그 결과 전 세계 개발자들이 중국 AI 모델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수에 따르면 중국의 AI 기술 발전은 미국의 수출 규제로 첨단 반도체와 같은 분야에서 중국의 접근성이 제한된 상황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규제가 중국 내 혁신을 가속하는 효과도 냈다는 주장도 나온다. 수는 미국의 규제가 가져온 핵심 영향은 중국 내 혁신과 효율성 향상을 촉진하는 촉매제가 됐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지정학적 상황에 따라 산업별로 중국 기술의 채택 정도가 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수는 첨단 반도체, 사이버보안 관련 서비스, 국방 및 국가안보 분야에서 중국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강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만달은 전기차, 배터리, 소비자 전자제품, 로봇, 드론과 일부 AI 및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 기술을 더욱 많이 활용할 것으로 전망하며 그 결과 보다 파편화됐지만 실용적인 글로벌 기술 생태계가 형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폭은 배터리와 전자제품 제조 분야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이미 구조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AI는 전환기에 있고 자동차 소프트웨어는 아직 초기 단계인 것으로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