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우유팩 분리수거 의무화, 수거함만 설치하면 끝일까

우유나 두유를 넣는 데 활용되는 종이팩은 일반 폐지보다 품질이 좋은 고급 펄프를 얻을 수 있는 재활용 자원이다. 잘 재활용하면 고급 화장지 등을 만들 수 있지만, 국내 종이팩 재활용률은 14.1%로 낮다. 상당수는 재활용되지 못한 채 다른 폐기물과 함께 처리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정부는 아파트의 종이팩 분리배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026년 하반기에 ‘재활용가능자원의 분리수거 등에 관한 지침'을 개정해 일정 규모 이상의 아파트 단지에서 종이팩을 분리해 배출하도록 할 계획이다. 전용 수거함 제작 기준과 전용 수거봉투 배포 등 기반시설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종이팩을 따로 버리도록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겨레21이 종이팩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해 배출 이후 이동 경로를 추적한 결과, 분리배출된 종이팩이 수거 업체와 선별장을 거치는 과정에서 소각되거나 이탈하는 사례가 확인됐다. 결국 공동주택 분리배출 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시민들의 분리배출뿐 아니라 회수와 선별 체계도 함께 갖춰야 한다.
서울 노원·도봉구에서는 지자체와 도담마을사회적협동조합, 테트라팩코리아 등이 종이팩 분리배출 사업을 추진해왔다. 2023년부터 노원·도봉구 아파트에 종이팩 전용 수거함을 설치하고, 모은 종이팩을 선별장으로 보낸 뒤 제지업체까지 도달하도록 회수 체계를 구축했다. 제지업체는 이를 휴지 사이에 넣는 종이나 과자 상자 등으로 재활용한다.
전북 전주시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전주에서는 민간 업체와 협약해 공동주택에 종이팩 수거함을 설치하고, 종이팩만 별도로 수거해 곧바로 재활용 업체로 보내는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선별장을 거치지 않는 것이 노원·도봉구 사례와 다른 점이다. 모든 종이팩이 예외 없이 재활용 업체로 이동한다는 점에서 뚜렷한 장점이 있다.
전문가들은 지역마다 재활용 선별장에 종이팩 선별 지침을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현재는 선별장에서 종이팩을 반드시 별도로 선별해야 하는 운영 기준이 없어 지역마다 처리 방식이 다르다. 또한 선별장 시설 개선을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종이팩을 수거하는 회사에 지원금을 확대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정부 정책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추진되지만, 아파트 외 배출처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카페와 단독주택 등에서도 종이팩이 꾸준히 배출된다. 종이팩 배출량은 아파트가 40%, 카페가 25%, 단독주택이 24%, 학교·어린이집이 6.7%, 편의점·군부대가 4%를 차지한다. 60%가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 배출되는 셈이다. 기후부 관계자는 “향후 시범사업과 협약을 통해 카페나 군부대 등에서도 재활용률을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