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스페인 뒤흔든 세우타 사태는 왜 ‘위선의 향연’이라 불리는가 [평범한 이웃, 유럽]

7월24일 스페인 발렌시아 시청에서 ‘파우에서의 휴가’ 환영식이 열렸다. 올해 30명의 사하라위 난민 아이들이 발렌시아 가정에 초청돼 여름 두 달을 보낸다. ©발렌시아 시청
7월24일 스페인 발렌시아 시청에서 ‘파우에서의 휴가’ 환영식이 열렸다. 올해 30명의 사하라위 난민 아이들이 발렌시아 가정에 초청돼 여름 두 달을 보낸다. ©발렌시아 시청

스페인, 모로코, 사하라위 난민을 둘러싼 역사적 맥락은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이는 얼마 전 아프리카 내 스페인 영토 세우타에서 발생한 모로코-스페인 불법 월경 사태와도 이어진다.

7월24일 스페인 발렌시아 시청에서 ‘파우에서의 휴가’ 환영식이 열렸다. 올해 30명의 사하라위 난민 아이들이 발렌시아 가정에 초청돼 여름 두 달을 보낸다. ©발렌시아 시청

나의 시댁이 있는 스페인 발렌시아에서는 여름마다 특별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아프리카 사하라위 난민촌의 8~12세 아이들을 초청해 두 달 동안 이곳 가정에서 함께 지내는 것이다. ‘파우에서의 휴가(Vacances en Pau)’라는 이름의 이 프로그램은 난민촌 아이들이 한여름만이라도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 스페인에서 영양을 보충하고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연대 활동이다. 30주년을 맞은 올해 발렌시아 가정에 초청된 사하라위 난민 아이들은 30명, 스페인 전역으로는 총 2300여 명이다.

두어 달만이라도 아이들이 스페인에서 편히 지내면 좋겠지만 약간의 긴장이 늘 존재한다. 몇 년 전 시댁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중 있었던 일이다. 마을 축제에 참가한 사하라위 난민 소녀가 축제 장비 관련 일을 하러 온 모로코 출신의 계절노동자에게 폭행을 당했다. 사하라위인이라는 것 외에 아무 이유 없는 폭행이었다. 주민들의 얘기를 들으니 모로코인과 사하라위인 사이에 종종 일어나는 일이고, 알려져봐야 자극적일 뿐 득 될 것이 없어서 언론에도 잘 다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모로코인은 왜 사하라위 난민 소녀를 폭행했을까. 그리고 스페인은 왜 매년 사하라위 난민 아이들을 데려와 보살필까. 스페인, 모로코, 그리고 사하라위 난민을 둘러싼 역사적 맥락은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얼마 전 아프리카 내 스페인 영토 세우타에서 발생한 모로코-스페인 불법 월경(越境) 사태와도 이어진다.

사하라위 난민의 출신지인 서(西)사하라는 아프리카 북서부에 위치한 분쟁지역이다. 북쪽으로 모로코, 동북쪽으로 알제리, 그리고 동남쪽으로 모리타니와 맞닿아 있다. 1884년부터 1976년까지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이곳은 스페인이 철수하면서 주변국들의 쟁탈 대상이 됐다. 스페인이 철수하기 직전인 1975년 모로코 민간인 35만명이 서사하라로 넘어가 영토를 점거한 뒤부터 분쟁이 본격화했다. 이후 모로코와 서사하라는 줄곧 대치 상태다. 서사하라는 알제리의 지원 아래 독립운동 단체 ‘폴리사리오 전선’을 창설하고 1976년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SADR)’ 수립을 선언한 뒤 무장투쟁에 나섰다. 모로코는 ‘대모로코 제국’ 건설에 방해가 되는 사하라위인이 못마땅하고 스페인은 자신이 철수한 옛 식민지의 분쟁에 일말의 책임을 느끼는 상황, 이것이 앞서 언급한 난민 초청 프로그램과 폭행 사건의 배경이다.

서사하라의 독립운동 단체 폴리사리오 전선의 수장은 브라힘 갈리(77)다. 2021년 4월 갈리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자 알제리 정부는 그가 스페인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수송기를 제공했다. 모로코가 갈리를 전쟁범죄자로 간주하기 때문에, 그가 스페인 공군기지에 도착해 북부 로그로뇨에 위치한 병원에서 치료받는 과정은 모두 알제리 국적의 허위 신분을 이용해 비밀리에 진행됐다. 이 사건이 알려진 직후 평소 모로코 군대가 엄격히 통제하던 세우타 인근 해안 감시가 갑자기 느슨해졌다. 순식간에 모로코인 및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 8000여 명이 수영 또는 고무보트를 이용해 세우타로 들어갔다. 세우타는 아프리카 최북단에 위치한 스페인 영유지 두 곳 중 하나로(다른 한 곳은 멜리야) 모로코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육로나 바다를 통한 진입이 가능하다. 이 사건은 당시까지 있었던 세우타로의 불법 이주 시도 중 최대 규모로 ‘48시간의 대혼란’으로 기록됐다. 이 사태는 갈리의 병원 치료에 반발한 모로코 측 보복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갈리는 44일간의 치료를 마치고 알제리로 출국했지만 스페인과 모로코의 외교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7월30일(현지 시각) 이주민들이 모로코에서 헤엄쳐 북아프리카의 스페인령 세우타로 국경을 넘어가려 하고 있다. ©AP Photo

이 갈등은 2022년 3월 스페인이 그간의 중립적 태도를 바꾸어 모로코의 서사하라 주권을 인정하면서 누그러졌다. 2023년 2월에는 스페인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모로코를 방문해 주권 등의 문제에서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관계를 강화하기로 합의한다. 스페인과 모로코는 화해한 듯 보였다. 그러다 올해 7월30~31일 모로코인 7만2000여 명이 모로코-세우타 국경을 넘고 그 과정에서 75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세우타 전체 인구(약 8만4000명)에 맞먹는 수가 불법 이주를 시도한 건 전례 없는 일이었다. 사태가 일단락된 지금,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지목된다.

첫째는 앞서 설명한 스페인·모로코·서사하라·알제리 간의 외교적 긴장 관계다. 이 일이 있기 열흘 전인 7월20일 산체스 총리의 알제리 공식 방문이 모로코를 자극했다. 이웃 국가인 알제리와 모로코는 서사하라 영토분쟁, 모래 전쟁(1963년 발생한 국경분쟁) 등으로 오랜 앙숙이며 현재는 국교 단절 상태다. 스페인은 주요 천연가스 공급처인 알제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알제리가 지원하는 폴리사리오 수장 갈리의 치료를 도운 것도 단순한 인도주의적 호의만은 아니었다. 모로코에는 이것이 스페인의 정치적 배신으로 보일 수 있고, 이번 세우타 사태는 그에 대한 보복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이번 사태 3주 전인 7월8일 나온 스페인 대법원의 판결이다. 2024년 11월, 바다를 헤엄쳐 세우타로 들어가려던 알제리인이 경찰에 적발돼 즉각 송환됐다. 그는 자신이 적법 절차 없이 송환됐다며 스페인 정부를 고소했다. 근거는 스페인 이민법 제10조 추가 조항인 “세우타 또는 멜리야의 영토 경계선에서 국경 통제물을 우회하여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다 적발된 외국인은 스페인으로의 불법 입국을 막기 위해 송환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는 ‘국경 통제물’을 물고 늘어졌다. 육로에는 철망이나 벽 같은 통제물이 있지만 바다에는 없으니 자신은 국경을 넘어도 송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우타 지방법원, 안달루시아 고등법원에 이어 스페인 대법원은 이 알제리인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 판결은 불법 월경이 문제없다는 게 아니라 통제물이라는 표현의 한계를 보완할 필요를 지적한 것이었지만, 이 판결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바다로 가면 송환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왜곡돼 일파만파 퍼졌다. 세우타 사태 직후 모로코 정부는 해당 판결과 이를 왜곡한 소셜미디어가 원인이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세 번째 이유로 거론되는 ‘트럼프와 네타냐후 개입설’은 추정이기는 해도 현재 스페인이 처한 상황을 잘 반영하는 설명이다. 스페인은 유럽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지 입장을 밝혀왔고 이란 전쟁에서도 줄곧 미국과 각을 세웠다. 그사이 모로코는 미국과 더 가까워졌다. 트럼프 1기였던 2020년에 미국이 모로코와 이스라엘 간 수교를 전제로 서사하라에 대한 모로코의 자치권을 인정하겠다고 하면서 미국, 이스라엘, 모로코는 한배를 탔다. 지난 4월에는 미국 하원 예산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에서 엄연히 스페인 영토인 세우타와 멜리야에 대해 “스페인이 관리하는 모로코 영토 내 도시들”이라는 표현을 써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즉, 눈엣가시였던 스페인을 위협하기 위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모로코의 힘을 빌려 불법 이주를 무기화했다는 설명이다.

사태 직후, 기다렸다는 듯 미국과 이스라엘에서 반응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3년 뒤 잘못된 세력(민주당)이 집권하면 우리도 그렇게 될 것”이라며 현 이주 억제 정책에 힘을 실었다. 대니 다논 주유엔 이스라엘 대사는 7월31일 X(옛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스페인은 우리에게 훈계를 계속하기 전에, 왜 아직도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갖고 있는지 세계에 설명하는 게 좋겠다.”

이 비난에는 어폐가 있다. 19세기에 식민 점령했다가 철수한 서사하라와 달리, 북아프리카의 세우타와 멜리야는 16세기부터 스페인이 영유해왔다. 주민도 스스로를 스페인인이라 여긴다. 그러나 역사적 배경이 무엇이든, 유럽 국가가 유럽 아닌 아프리카 대륙에 영토를 보유한 점은 그 정당성에 대한 의혹을 낳는다. 공쿠르상 수상자인 모로코 출신 작가 타하르 벤 젤룬은 세우타 사태 직후 모로코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모로코 경찰은 개입하지 않았다. 전 세계 모든 TV 채널과 주요 신문 1면에서 이런 영상을 보게 된 것이 부끄럽다”라면서도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이 도시들(세우타와 멜리야)을 모로코 당국에 반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스페인이 시대착오적인, 즉 식민주의적 문제에서 벗어날 기회”라면서 말이다(〈le360〉, 8월3일 ).

스페인이 세우타와 멜리야를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팔레스타인을 몰아낸 이스라엘이나 서사하라를 점거한 모로코에서 나온다는 점이 흥미롭다.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을 타인에게서 찾는 것은 인간의 뿌리 깊은 습성인 듯하다. 스페인이 한때 광대한 식민지를 보유, 약탈한 제국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독재 시기를 거쳐 민주화된 현재의 스페인이 과거사를 공유하는 나라들과 긴밀한 유대를 맺고 그들을 지원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해 8월11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한 외부 칼럼의 제목은 “스페인은 세계의 본보기다(Spain Is an Example to the World)”였다. 서구에서 예외적으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국방비 증액에 반대했을 뿐 아니라 이주민을 포용한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산체스 총리는 2024년 의회 연설에서 프랑코 독재 시절 스페인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언급하며 “우리는 라틴아메리카, 카리브해, 그리고 유럽에서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겪었던 고난의 여정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지금이야말로 그들이 간절히 바라던, 환대하고 관용적이며 서로를 지지하는 사회가 될 때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최근 스페인은 불법 이주민이라도 일정 자격(5개월 이상 거주, 5년간 무범죄 등)을 갖추면 1년 기한으로 합법 노동 허가를 내주기로 했고 약 50만명이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7월31일(현지 시각)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가 세우타에서 발언하고 있다. ©REUTERS

그러나 스페인의 행보는 소수에 속한다. 세우타 사태에서 이탈리아 멜로니 정부의 대응은 현 유럽의 분열적 상황을 잘 드러낸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불법 이주를 막지 못한 스페인을 맹비난하며 솅겐 조약(국경 통행 자유화) 예외 조항을 발동, 스페인과 이탈리아 사이에 국경 검사를 재개했다. 아프리카에 위치한 세우타는 솅겐 조약에서 제외되므로 이곳에서 유럽으로 넘어가려면 검문을 거쳐야 하는데도, 세우타에 발을 들인 불법 이주민이 순식간에 유럽 곳곳으로 퍼져나갈 것처럼 사안을 왜곡, 과장했다. 팩트는 묻히고 선동은 통한다. 세우타 사태는 반이민을 기치 삼는 유럽 극우세력의 효과 좋은 불쏘시개다. 극우세력에 어렵게 맞섰던 스페인 좌파 연립정부는 내년 총선을 우려 중이다.

스페인 일간 〈엘파이스〉는 이번 일을 ‘위선의 향연’이라고 표현했다.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는 국민을 막지 않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책임지지 않는 모로코의 위선, 이스라엘을 비난하면서도 정작 서사하라 문제에서는 모로코 손을 들어주고 말았던 스페인 정부의 위선, 이 사태를 선동에 이용하고 동맹을 약화시킨 이탈리아 등 일부 유럽 국가의 위선 말이다(〈엘파이스〉, 8월5일). 복잡하게 얽힌 위선의 정치가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사이, 먼저 희생되는 것은 고향을 잃은 난민과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관용과 책임의 가치가 각국의 이기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까. 세우타는 아직 끝나지 않은 시험대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