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프트·마블 쥐고도 주가 반토막…엔터 제국 가둔 ‘플랫폼의 덫’ [흔들리는 제국-엔터]

“유니버설뮤직그룹(UMG), 지금이 저가 매수 기회일까.”
세계 최대 음악 제국 UMG의 주가가 52주 신저가를 잇달아 경신하며 추락을 거듭하자 월가와 외신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테일러 스위프트, 켄드릭 라마, 아리아나 그란데 등 현시점 글로벌 팝 시장을 지배하는 슈퍼스타 라인업을 대거 쥐고도 시장의 외면을 받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어서다.
엔터테인먼트 공룡 월트디즈니의 주가 흐름 역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5년간 40% 이상 하락하며 장기 박스권에 갇힌 모습이다. 팬데믹 시기 스트리밍 열풍에 힘입어 가파른 밸류에이션 상승을 누렸던 글로벌 엔터 공룡들이 본격적인 ‘몸값 리셋’ 시험대에 올랐다.
글로벌 음악 시장은 UMG, 소니뮤직(23%), 워너뮤직(17%) 등 이른바 ‘빅3’ 레이블이 전 세계 음반·음원 시장점유율의 약 70% 이상을 분점하는 과점 구조다. 이 중에서도 UMG는 명실상부한 절대강자다. 테일러 스위프트를 비롯해 팝 시장을 지배하는 톱스타 라인업을 대거 보유했으며 글로벌 시장점유율만 30%에 달한다.
그러나 세계 1위 음악 제국 UMG의 주가 곡선은 시장의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했다. UMG 주가는 올해 들어 32.51% 폭락하며 14.82유로 수준까지 추락했다. 과거 25~30유로 선을 넘어 주가수익비율(P/E) 25배 이상의 고평가를 누리던 ‘엔터 가치주’의 위용은 온데간데없다.
최근 주가 폭락의 결정적 계기는 2분기 실적 발표였다. 핵심 수익원인 유료 구독 수익 성장률은 6.7% 증가했으나 시장 전망치(9.3%)에 미치지 못했고 이 회사가 1분기에 기록한 7.9% 성장률보다 둔화됐다.
“스포티파이나 애플뮤직의 유료 구독자가 늘어날수록 UMG의 음원 로열티 수입은 영원히 우상향할 것”이라던 월가의 신화가 깨진 탓이다. 팬데믹 시기 폭발했던 글로벌 스트리밍 유료 가입자 수가 이미 포화 상태에 다다랐다는 공포가 주가를 짓눌렀다. 번스타인 애널리스트들은 고객에게 보낸 노트에서 유니버설의 2분기 실적이 모든 면에서 기대에 못 미쳤으며 스트리밍 구독 수익의 잠재적 개선이 연말로 미뤄졌다고 밝혔다.
자회사 인수 과정에서 발생한 저마진 구조, 법적 대응 비용 증가, 굿즈 부문의 매출 감소에 더해 보유 중인 스포티파이 지분 평가손실까지 반영되며 순이익이 급감했다.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 빌 애크먼이 이끄는 퍼싱스퀘어가 640억달러 규모의 인수안을 제안했으나 UMG 이사회가 “기업가치를 현저히 저평가했다”며 거절하는 등 경영권을 둘러싼 잡음까지 겹쳤다.
1923년 설립 이후 디즈니, 픽사, 마블, 스타워즈, 20세기 스튜디오, ESPN 등을 흡수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콘텐츠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월트디즈니 역시 ‘콘텐츠 제국의 늪’에 빠졌다.
디즈니의 차트는 더 적나라하다. 지난 5년간 디즈니 주가는 무려 41.69% 폭락하며 100달러 초반대 긴 박스권 하단에 갇혔다. 코로나 시기인 2021년 200달러에 도달한 이후 2022년 초부터 약 80달러에서 110달러 사이를 머물고 있다. 고점과 비교하면 반토막에 가까운 수치다. 이 시기 디즈니를 사지 않았더라면? 디즈니 주가가 절반 가까이 하락할 때 S&P500은 지난 5년간 70% 이상 급등했다.
디즈니의 위기는 스트리밍(OTT) 후발주자로 나선 ‘디즈니플러스(디즈니+)’의 천문학적인 적자 누적에서 시작됐다. 넷플릭스를 잡기 위해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쏟아부었으나 플랫폼 가입자 수 증가세가 꺾이자 곧바로 막대한 재무적 부담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더해 지난 수년간 계속된 과도한 프랜차이즈 IP의 우려먹기와 완성도 미달,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을 둘러싼 논란이 겹치면서 핵심 충성 고객층인 팬덤마저 이탈하는 이중고를 겪었다.
전통적인 극장 흥행 불패 신화마저 흔들리자 디즈니는 대규모 구조조정과 비용 절감, CEO 교체라는 진통을 겪어야 했다. 테마파크와 크루즈 등 오프라인 체험 사업부문이 실적을 떠받치고 있지만 본업인 영화와 스트리밍 등 핵심 콘텐츠 사업의 체질 개선 없이는 과거의 화려한 멀티플을 되찾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UMG와 디즈니. 엔터 공룡들을 덫에 가둔 건 ‘플랫폼 성장의 한계’다. 팬데믹 시기 폭발했던 ‘스트리밍 구독 모델의 양적 성장 포화’가 지속되면서 콘텐츠 공급자인 UMG, 공급자이면서 유통사인 디즈니의 기업가치 역시 함께 갇혀버린 셈이다. UMG는 음원을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등 외부 테크 플랫폼에 공급하는 유통 종속적 구조다. 이 때문에 플랫폼의 가입자 성장 정체가 곧바로 UMG의 음원 로열티 매출 둔화로 이어졌다.
반면 디즈니는 넷플릭스에 맞서 자체 OTT(디즈니+)를 직접 구축하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부은 끝에 돌아온 것은 천문학적인 적자와 가입자 이탈이라는 재무적 압박이었다.
플랫폼 덫에 걸린 두 공룡…UMG엔 시간, 디즈니엔 칼날
월가의 처방전은 시간이다. 가치 투자를 다루는 티모시 베이어 CFA는 포브스에 “UMG는 부서진 회사가 아니라 단지 부서진 주식일 뿐”이라고 썼다. UMG의 최근 주가 폭락은 단기 실적 부진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시장의 전형적인 회의론을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그는 분기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으나 글로벌 스트리밍의 지속적인 성장성, 독보적인 음악 카탈로그, 대체 불가능한 브랜드 파워와 고수익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본질적 구조는 훼손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펀더멘털 대비 주가가 하락한 현재의 매력적인 밸류에이션 구간은 장기 가치 투자자들에게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만 시장 전반의 시각이 모두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UMG를 분석하는 월가 21명의 애널리스트 중 7명이 ‘보유’, 3명이 ‘매도’ 의견을 제시하며 신중한 기류를 유지하고 있다.
디즈니는 본업의 현금 창출력과 성장 모멘텀을 바탕으로 강한 반등 가능성을 인정받는 분위기다. 디즈니를 담당하는 32명의 애널리스트 중 29명이 ‘매수’ 의견을 유지하고 있으며 평균 목표주가는 127.22달러로 약 18.9%의 상승 여력을 제시하고 있다. 시장은 디즈니를 ‘부서진 플랫폼’이 아니라 체질 개선을 거치는 과정으로 판단한다.
울프 리서치는 디즈니에 대해 목표주가 131달러를 제시하며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테마파크와 크루즈 등 체험 부문의 물량 증가를 재활성화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두 자릿수의 주당순이익(EPS) 성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웰스파고증권의 스티븐 캐할 애널리스트는 디즈니가 주가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디즈니+ 전면 철수’라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즈니가 직접 OTT를 운영하는 거대한 비용 부담을 덜어내고 과거처럼 순수 콘텐츠 라이선스 모델로 복귀할 경우 주가가 약 40% 이상 상승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