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포기하고 사과한 대통령, 진짜 숙제가 남았다

국정 운영의 딜레마 토로하며 '설득'에 초점 맞춘 기자회견... 정부와 여당 앞에 놓인 새로운 과제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18일 열린 이재명 대통령의 현안 기자회견은 국정 최고 책임자가 짊어진 개혁의 현실적 무게와 짙은 고뇌가 묻어나는 자리였다. 취임 이후 줄곧 선명성과 거침없는 추진력을 앞세웠던 모습과 달리, 이번 회견에서 대통령은 한층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단상에 섰다.
지지율 하락이라는 매서운 민심의 회초리 앞에서 이 대통령은 변명이나 남 탓으로 일관하기보다 국정 운영의 딜레마를 숨기지 않고 정책의 배경을 차근차근 설명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이 대통령은 "작은 성과와 국민들께서 보내주시는 큰 성원 앞에서 두려움과 겸손함이 줄어들었다"며 "국민에 대한 존중심이 좀 부족하지 않았을까"라고 자신의 과오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수사라기보다 제도를 바꾸는 일만큼이나 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뼈아픈 깨달음으로 읽힌다.
"언제나 국민은 옳다"며 몸을 낮추고, 비판자들의 불안감까지 포용하려는 노력은 꽉 막힌 정국을 풀어갈 새로운 소통의 출발점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반발 인정하지만... '할 일은 하겠다'는 개혁 의지 보여
다소 유연해진 태도 속에서도 구조적 모순을 혁파하겠다는 뚝심은 드러냈다. 비록 기득권의 저항이 거세고 지지율 하락의 늪에 빠지더라도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거센 논란의 중심에 선 부동산 문제와 농지 전수조사를 언급하는 부분이 그랬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농지) 전수조사했더니 그 때문에 엄청나게 저한테 욕하는 거 안다"라면서도 왜 그러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비판이 기득권의 저항과 맞물려 어떤 오해에서 비롯하고 있는지에 대해 짚어냈다.
미프진 문제에 관해 언급하면서는 "우리가 하나의 개혁 과제를 선정해 추진할 때마다 반대자들·반발자들이 쌓여 간다. 이래서 개혁의 힘이 점점 약화되고,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된다"면서, "저는 아직까지는 그러고 싶지 않다"라고 강조했다. 반발로 개혁에 머뭇거리기 보다는 정면 돌파를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원망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해서 "이해한다", "국민들의 냉정한 실망과 비판을 무시하겠다는 건 전혀 아니다"라면서도 "이해하지만 저한테 권한을 준 이유가 그 일을 해내게 하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제가 소명으로 국민에게 약속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종국에 가서 '아 이렇게 많은 것들이 바뀌었구나, 내 삶도 더 나아졌구나'라고 느끼게 되면 평가도 많이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개혁의 진통은 자신이 온전히 감내하고 후일 결과로 평가받겠다는 것이다.
서두에서도, 마무리에서도... '반성' 메시지
시민들이 18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역 대합실에서 TV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의 대국민 기자회견을 시청하고 있다.
하지만 굳건한 의지와 진정성 어린 설득만으로 모든 개혁이 완수되는 것은 아니다. 반발은 필연적이라 해도, 그것이 대중의 불안감과 결합해 일정 선을 넘어서면 결국 개혁의 동력 자체에 치명적인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 역시 이 위태로운 경계선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모두발언에서 "선명한 주장이나 선언이 아니라 실행을 통한 결과로 증명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민생 개혁 통합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아픔과 갈등에 대해서 충분하게 공감하지 못했다"고 고백한 대목이 이를 방증한다.
또한 이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도 "일에 집중하고 또 결과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까 그 과정에서 세심하지 못한 게 매우 큰 문제인 걸 이제 많이 아프게 깨닫게 됐다"고 토로했다. 기자회견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이러한 발언을 강조한 것은, 개혁이라는 목표를 향해 직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세심하게 돌보지 못하면 결국 개혁의 정당성마저 훼손될 수 있다는 성찰을 보여준다.
이번 회견에서 대통령이 개별 현안에 대해 곧장 '사이다형' 단답보다 그 배경을 앞서 길게 설명한 것 역시, 사안을 호도하는 왜곡된 선동을 방어하고 불필요한 오해를 최소화하려는 고도의 설득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 같은 '성찰'과 세심한 접근법이 실제 정책 추진 과정에서 어떻게 반영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모호한 파병론과 에두른 인사 책임은 다소 아쉬워
이번 기자회견에선 국정 최고 책임자의 무게를 고려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아쉬운 지점들도 있었다.
첫째, 호르무즈 해협 파병 문제에 대한 모호한 태도다. 이 대통령은 "전쟁에 관여, 개입하는 파병은 없다. 그것은 명백하게 말씀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형태의 파병이든 군 자산 파견이든,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 원칙을 지켜왔고, 앞으로도 그 원칙은 변함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는 '전투병 파병'에 국한된 얘기이며, 비전투병이나 군수 지원 자산의 파견 가능성에 대해서 완전하게 부정한 건 아니라고 보여진다. 국제적 분쟁 지역에 군사 자산을 보내는 행위는 그 자체로 확전의 불씨를 안고 있으며, 평화라는 확고한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될 소지가 다분하다. '국익 보호'라는 명분 아래 군사적 개입의 문을 일부 열어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얄팍한 실용주의가 굳건해야 할 원칙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둘째, 거듭되는 인사 참사에 대한 책임 인식이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와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은 현 정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이 한계에 봉착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인사는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며 제도의 한계나 인재풀의 부족 등 상황적 어려움을 토로하는 데 머물렀다. "인사 시스템을 재점검하겠다"고 덧붙이긴 했으나 실무진의 검증 실패를 넘어 최종 인사권자로서 국민 앞에 더 명확하고 무겁게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고 쇄신을 약속했어야 마땅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후 인사하고 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당대표실에서 이재명 대통령 기자회견 생중계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100분의 기자회견은 이재명 정부가 선명성에만 기대지 않고, 현실의 반발들을 직시하며 좀 더 '실용적으로'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분기점이 됐다. 다치고 깨지더라도 끈질기게 기득권의 벽을 두드리며 국민을 설득하겠다는 선언은 묵직하다. 다만, 이 선언이 그저 구호에 그치지 않도록 실현해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차원에서, 무겁고 지난한 설득을 대통령 한 사람만이 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부와 여당은 국정 운영 과정에서 제기되는 정당한 비판은 겸허히 수용하되, 악의적 프레임이나 설명 부족으로 촉발된 대중의 반발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섬세하게 다가가야 한다. 제도를 바꾸는 진정한 힘은 결국 그 제도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끈질기게 움직이는 과정에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와 여당 앞에 놓인 새로운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