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사설] 비쌀 때 안 팔더니, 폭락장에서 안전판 기능 잃은 국민연금

15일 코스피가 450포인트 넘게 빠지며 5554.22로 장을 마쳤다. 장중 한때 9% 넘게 밀렸고, 매매가 일시 중단되는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다. 1998년 도입 후 지난해까지 27년간 6차례뿐이던 서킷 브레이크가 올해만 벌써 10번째다. 최근 7거래일간 지수의 21%가 증발했고, 하루 낙폭만 봐도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최고치의 3배가 넘는다.

국민연금은 2008년 금융 위기 때 약 18조원,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때 약 13조원을 투입해 공포를 잠재웠던 증시의 안전판이다. 그러나 올 들어 외국인이 210조원 가까이 순매도하며 한국 증시를 현금출납기(ATM) 취급하는 사이 국민연금은 다른 길을 갔다.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는 대신 비중 상한선을 14.9%에서 20.8%로 올린 것이다. 외국인이 차익을 챙겨 빠져나갈 때 고점에서 주식을 그대로 끌어안은 셈이다. ‘비쌀 때 팔고 쌀 때 산다’는 자산 운용의 기본을 저버린 자충수였다.

그 대가로 국민연금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7월 말 기준 국내 주식 비중이 24.87%로 이미 목표치를 4%포인트 넘게 웃돌아 규정상 더 사들일 여력이 없다. 지난 7월 한 달간 국내 주식 평가 손실이 124조원에 달한다. 비쌀 때 비중을 줄여놓지 못한 결과 국민 노후자금이 타격입고 있는 것이다.

비중 확대 과정도 깜깜이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두 차례나 국내 주식 비중을 높인 것을 놓고 ‘외압’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연금 측은 ‘시장 안정’을 이유로 회의록 공개를 2030년으로 미뤘다. 향후 매매 전략은 가리더라도, 기존 원칙을 깨고 비중을 늘린 당시의 핵심 판단 근거만큼은 국민에게 소명하는 것이 시장의 신뢰를 되찾는 길일 것이다.

안전판이 무너진 시장에서 개인들의 빚을 내 투자하는 ‘빚투’ 잔고는 34조원을 넘었다. 반도체 초고위험 레버리지 ETF를 허용한 금융 당국은 결정 과정의 실체는 덮어둔 채 ‘죄송하다’는 사과 릴레이 뒤로 숨었다. 정부와 국민연금은 깜깜이 비공개와 형식적 사과를 거두고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자산 배분 원칙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국민 노후 자금 손실과 개미들의 눈물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