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200개를 모았던 제자, 스승은 무엇을 놓쳤나[신간]

이기호의 소설집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에는 소설가의 삶과 글쓰기의 의미를 되묻는 작품 7편이 수록됐다. 등장인물들은 소시민적이고 때로는 옹졸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작가와 문학의 자리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갱신하려는 치열함을 보여준다. 문학동네 제공
“교수님을 자유롭게 해드리고 싶어서요.”
대학교수이자 소설가인 ‘나’에게 제자 성우정은 1300만원이 있냐고 묻는다. 1300만원으로 자유롭게 해주겠다면서 말이다. 신종 다단계인가. 성우정은 1300만원이 있으면 비트코인 500개를 살 수 있다며 이걸 사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 거라고 말한다. 블록체인과 P2P, 채굴, 생성형 노드와 알고리즘에 대해서도 설명했지만 ‘나’는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나보고 사이버머니 같은 걸 사두라는 거지? 도토리 같은 거?” 성우정이 자신도 비트코인을 200개쯤 모았다고 하자 ‘나’는 오히려 진지하게 충고한다. “너도 그거 하지 마. 야, 자유로워지는 게 어디 그런 거로 되냐? 도토리가 많아봤자 다람쥐가 그냥 다람쥐지.” 그러면서도 작은 지방 사립대에서 원고 쓸 겨를도 없이 야간 강의까지 뛰는 자신의 상황을 성우정이 헤아리는 것 같아 내심 그에게 마음이 쏠린다.
10여 년 뒤, ‘나’는 아버지의 부동산 투자 실패로 4억3000만원의 빚을 떠안고 매달 원리금에 허덕인다. 그런데 빚보다 더 골치 아픈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아침 휴대전화에 카카오톡 메시지 200개와 발신번호 표시 제한으로 온 부재중 전화 40통이 쌓여 있었다. 젊은 여성으로 자신을 오인한 사람들이 보낸 성적인 말과 욕설이었다. ‘나’는 빚 독촉이 아닌 것에 안심하고 되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건 명백히 잘못 전달된 모욕이니까, 내 연락처로 왔지만 그 대상이 내가 아닌 것은 확실하니까”라며 “작은 해프닝”과 “오해”로 가볍게 여긴다. 그러나 한밤의 카톡 메시지와 전화 폭탄은 한 달 내내 이어지며 그를 괴롭힌다. 대체,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
이기호의 소설집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에 수록된 단편 ‘마음은 언제 휘어지는가-반감기’는 정체 모를 괴롭힘을 당하는 한 소설가가 그 배후를 추적하면서 오래전 제자와의 관계를 되짚는 이야기다. 소설은 그 과정에서 혐오가 반드시 노골적인 적의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자신과 무관한 고통은 무심히 지나치고 불편한 상황에서는 손쉬운 판단으로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며, 자신의 말이 지닌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타인을 향한 폭력은 자라난다. 그리고 그 상처는 때로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멀어진 뒤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우연히 발견한 단서를 통해 자신에게 쏟아지는 익명의 괴롭힘이 성우정과 관련돼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성우정은 종종 ‘나’의 연구실을 찾아와 말없이 노트북을 들여다보다 인사도 없이 사라지곤 했는데 ‘나’는 그것이 자신을 챙겨주는 성우정만의 방식이라고 여겼다. 그런 성우정이 자신에게 악의를 품을 이유가 있었을까. ‘나’는 성우정과의 오래전 일들을 하나씩 떠올린다. 소설은 ‘나’가 미처 헤아리지 않았던 관계의 이면을 드러내며 성우정에게 “마음이 휘어지는” 반감이 싹텄을 지점들을 더듬는다.
‘나’는 고된 노동을 하며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고단함을 내세우기조차 조심스러워하는 상식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쏟아진 여성혐오의 말들을 ‘요즘 애들’의 일탈쯤으로 여기고 카카오톡 프로필을 중년 남성의 사진으로 바꾸는 것만으로 괴롭힘에서 벗어난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릴 줄 아는 듯한 그의 시선은 남성이자 대학교수라는 자신의 자리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기에 성우정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려 하지 않았고 자신의 말과 판단이 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깨닫지 못했다. 소설을 따라가다 보면 성우정이 갖고 있던 비트코인 200개의 행방이 궁금해진다. 성우정은 결국 비트코인을 팔았을까. 그것이 반감의 씨앗이 된 것은 아닐까. 그러나 더 오래 남는 질문은 ‘나’가 가볍게 여긴 말들이 성우정에게는 어떤 무게로 남았느냐는 것이다. 소설은 그 간극에서 비롯된 상처가 어떻게 관계를 바꿔놓는지 조금씩 드러낸다.
이 작품을 비롯해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에는 소설가의 삶과 글쓰기의 의미를 되묻는 작품 7편이 수록됐다. 표제작 ‘예술원에 드리는 보고’와 그 후속작 ‘우리는 왜 엉망이 되어가는가’는 예술원에 대한 비판에 이어 목소리를 내도 바뀌지 않는 현실 속에서 조금씩 비겁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어두운 골목길을 배회하는 자, 누구인가’는 작가가 누리는 안온한 자리를 돌아보고 ‘젊은 유령은 어떻게 말하는가’는 북토크를 둘러싼 작가와 독자 사이의 긴장을 통해 문학을 둘러싼 오늘의 세태를 비춘다. 때로 우스꽝스럽고 초라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작가들은 자신이 속한 세계의 모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설집은 그런 사소하고 민망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며 쓴다는 것은 무엇인지, 작가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를 묻는다. 등장인물들은 소시민적이고 때로는 옹졸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작가와 문학의 자리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갱신하려는 치열함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