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이장 열에 아홉은 남성… 인권위 “‘세대주’ 중심 의사결정 구조 바꿔라”

137개 지자체 여성 이장 비율 8.43% 불과
“특정 성별에 불리하지 않도록 조례 검토해야”
여성친화형 농업기계반 교육생인 여성 농업인이 농기계 실습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전국 9개 광역자치단체 소속 137개의 기초자치단체에서 여성 이장의 비율이 8.43%에 불과하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인권위는 세대주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마을 의사결정 구조가 여성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며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이장 선출 및 임명 과정에서의 성차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 같은 내용이 확인됐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앞서 인권위는 2023년 전북의 한 마을에서 60년 동안 여성 이장이 선출된 사례가 없을 뿐 아니라 후보에도 추천된 전례가 없으며, 이장 추천권을 가진 마을개발위원회에도 여성이 포함돼 있지 않아 여성이 구조적으로 배제되고 있다는 내용의 진정 사건을 조사한 뒤 시정을 권고한 바 있다.
이후 인권위는 기초자치단체 단위에서의 성차별적 관행의 실태를 파악하고 성평등한 사회 기반 조성을 위한 정책 개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직권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2014년부터 2023년까지 2만8517개 행정리에서 진행된 이장 선출·임명은 총 10만7945회였으며, 남성과 여성이 선출된 비율은 각각 90.61%, 8.43%로 확인됐다. 지역별로 여성 이장 비율은 경상남도가 11.58%로 가장 높았으며, 제주특별자치도가 2.54%로 가장 낮았다.
이장의 자격 요건과 관련해 기초자치단체의 조례와 규칙에 특정 성별을 제한하는 직접 차별적 규정은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의 규칙은 주민총회 참석권이나 의결권, 후보 추천권 등을 '세대주', '세대주의 위임을 받은 1인' 또는 '세대 대표 1인'에게 부여하고 있었다. 또 일부 마을 정관은 회원 자격과 선거권·피선거권·의결권을 세대주 또는 세대별 1인에게 한정하고 있었다.
강원 강릉시 경포동 들녘에서 농민들이 무 수확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인권위는 이 같은 기준이 외형상 성별 중립적으로 보이지만, 농어촌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남성이 가구 대표로서 세대주 지위였던 관행과 결합할 경우 여성의 투표권과 의사결정 참여 기회를 제한하는 간접차별적 효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또한 리(里) 개발위원회 등 마을의 주요 기구와 비공식적 인적 네트워크가 남성 중심으로 형성된 경우에는 여성이 이장 선출 과정에 접근하는 단계에서부터 구조적 제약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인권위는 이러한 성별 불균형을 기초자치단체의 규칙이나 마을회 정관의 직접적인 결과로만 단정하기보다 오랜 사회문화적 관행과 가사·돌봄 부담의 성별 불균형, 남성 중심의 비공식 네트워크, 여성의 리더십 형성 경로 부족 등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판단했다.
이에 인권위는 지난 4일 읍·면을 두고 있는 기초자치단체장에게 "이장 선출 및 임명에서 특정 성별에 불리하지 않도록 관련 조례와 규칙을 검토해야 한다"며 "특히 주민총회 의결 자격에서 여성 주민의 참여를 구조적으로 제약하는 규정을 폐지해 성별과 관계없이 의사결정 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또 "이장 협의회 등을 통해 마을회 정관 등에 특정 성별에게 불리한 내용이 있는지를 검토하고, 해당 정관을 성평등한 방향으로 개정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며 "마을 개발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의 위원 구성이 특정 성별에 편중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인권위는 "기초 행정단위의 성별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은 특정 성별만을 위한 정책이 아닌 지역 의제를 다양화하고 확장하는 것이며, 민주적 대표성을 실질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며 "공공부문의 의사결정 과정에 성별 대표성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모니터링을 지속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