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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저도 참사 유가족입니다 [예고된 죽음]

대통령님, 저도 참사 유가족입니다 [예고된 죽음]
경숙은 친밀한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 역시 '사회적 참사'라고 말했다. ©김희지 기자 / GPT 편집
경숙은 친밀한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 역시 '사회적 참사'라고 말했다. ©김희지 기자 / GPT 편집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유족·범죄피해자연대 활동가 이경숙

[편집자 주] 교제폭력과 스토킹 등 친밀한 관계 폭력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정부에 따르면 2023년 33만9804건이었던 관계성 범죄(가정폭력·교제폭력·스토킹) 신고 건수는 2024년 35만6988건, 2025년 43만9382건으로 늘었습니다. 특히 2024년부터 2025년까지 1년 사이에만 신고 건수는 무려 23% 증가했습니다. 지난 3월 '남양주 스토킹 살인 사건'을 계기로 가해자의 처벌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회에서는 피해자 보호명령 제도를 도입한 스토킹처벌법 개정안이 통과됐습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여전히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예고된 죽음의 고리를 끊기 위해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성신문은 피해자와 유가족,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친밀한 관계 폭력의 현실을 짚고,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를 위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한 장소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뿐, 동시다발적으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참사예요."

2023년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 지안(가명)씨의 유가족 이경숙은 친밀한 관계에서 반복되는 여성들의 죽음을 '사회적 참사'라고 불렀다. 국가가 막을 수 있었고, 막아야 했지만, 막지 못해 죽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이틀에 한 번꼴로 여성들이 사망한다. 지난해 친밀한 관계였던 남성이 죽인 여성이 137명. 살인 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까지 포함하면 389명이 피해를 당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 보도로 드러난 죽음만을 센 것으로, 기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 죽음은 셈에 포함되지도 않았다.

국가는 죽음의 예고를 분명히 들었다. 지난해 전국에서 경찰에 신고된 관계성 범죄만 44만 건이었다. 국가가 위험 신호를 알아채기에 절대 모자라지 않았다. '경찰이 피해자의 구조 신호를 안일하게 넘겼다', '그래서 보호조치가 늦었다', '보호조치가 부족했다', '보호조치가 있었지만 소용 없었다'…. 죽음이 드러날 때마다 국가의 대응이 한가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지적도, 죽음도 반복된다.

그는 묻는다. 국가가 예고된 죽음을 듣고도 막지 못했다면, 이것은 왜 '사회적 참사'가 아닌가. 4월 28일 목포에서 만난 경숙은 국가가 친밀한 관계 안에서 죽어가는 여성들의 고통을 사회의 아픔으로 함께 짊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숙은 친밀한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 역시 '사회적 참사'라고 말했다. ©김희지 기자 / GPT 편집

지안을 살릴 기회는 많았다. 경찰은 그 기회를 매번 놓쳤다.

경찰은 전 애인이자 직장 동료였던 가해자의 통제로 발생한 첫 번째 폭행 사건을 '쌍방 폭행'으로 처리했다.

이후 헤어지자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 가해자가 지안을 반복적으로 폭행하고 스토킹했다. 참다못한 지안이 가해자를 고소했지만, 이내 취하하며 고소취하서에 '가해자가 또 올까 봐 무서워서'라는 글귀를 남겼다. 추가적인 조치는 없었다.

이후 경찰은 지안이 가해자가 또 찾아왔다고 신고하자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두 달의 접근 금지 명령과 함께 네 시간 만에 풀어줬다.

접근 금지 기간이 한달 가량 남은 때, 지안은 가해자 손에 사망했다. 경찰이 풀어준 가해자는 회칼을 사고 지안의 행적을 쫓으면서 범죄를 준비하고 있었다. 경찰은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지안의 죽음으로 뒤늦게 알았다.

지안을 살릴 기회는 많았다. 경찰은 그 기회를 매번 놓쳤다. 판결문에 남은 '기회'의 흔적들. ©김희지 기자 ⓒ한국여성의전화

경숙은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 지안의 어머니도, 친동생도 깊은 우울에 빠졌다. 억울한 죽음에 더 억울함을 남겼다간 남은 가족들마저 떠나갈 것 같았다. 어떻게든 가해자가 올바른 죄명으로 벌받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게 상식이고 정의니까." 경숙은 지안의 장례식이 끝나고 몸을 일으켰다.

경숙은 지안이 남긴 증거를 좇으며 경찰의 수사 공백을 따졌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다녔던 직장을 탐문 수사하지 않는 경찰을 대신해 직접 직장 동료들로부터 증거를 모으기도 했다. 지안이 남긴 통화 녹음을 빠짐없이 들으며 속기록으로 남긴 것도 경숙이었다. 경숙은 재판에 출석하려고 직장 생활까지 내려놓았다. 그렇게 가해자가 법정에서 '보복살인' 형량을 피하려고 궤변을 늘어놓는 것도 모두 들었다. 경숙은 가해자의 주장에 울분을 터뜨리면서도, 법정 밖에서는 가해자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증거를 모아 제출했다.

결국 1심에서 공소장에 포함되지 않았던 '보복살인'이 인정됐다. 2심에서는 30년형과 형 집행 후 전자장치 부착 명령까지 확정됐다. 판결문에는 "이와 같이 피해자는 피고인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법률에 마련된 모든 보호조치를 강구하려고 노력하였다"는 문구도 남았다. 그제야 경숙은 판결문을 가족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지안의 어머니인 작은엄마가 판결문을 읽고 "수고했다"고 말해줬다. '상식과 정의'가 실현된 순간이었지만, 경숙은 지안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끝났다는 생각에 허무하기만 했다.

지안의 사건 판결문에는 "이와 같이 피해자는 피고인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법률에 마련된 모든 보호조치를 강구하려고 노력하였다"는 문구가 남았다. ©김희지 기자 ⓒ한국여성의전화

"피해자분들은 이렇게 따져볼 정신을 갖고 있을 수 없어요. 가족을 막 떠나보낸 유가족들도 그렇죠. 대부분 그래요. 저라서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제가 똑똑하거나 잘나서 그런 게 아니고, 다만 따질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재판 대응을 회고한 경숙은 "나라서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경숙은 법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지만, 그 상황에 정신은 차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경숙은 "지안이 떠나고 나서야 애틋했다는 걸 알았다"고 회고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무너지는 자리에서, 애틋함을 뒤늦게 안 '사촌 언니'였기에 가능했던 것 아닐까. 대부분의 피해자와 유족들은 경숙과 같이 샅샅이 따져줄 존재가 없다.

일곱이라 좋았지만, 일곱으로는 버거웠다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범죄피해자연대는 한 통의 전화로 시작됐다. 지안이 떠났던 2023년, 경기도 구리시에서는 '바리캉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가 전 남자 친구 김모씨에 의해 바리캉으로 머리를 밀리고 4박 5일간 감금되어 성폭력 피해를 당하던 중 구출된 사건. 뉴스를 본 경숙은 참담한 피해 사실에 피해자가 살고 싶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사건 기록 속의 지안이 공포 속에서도 무척 살고 싶어 했다는 것도 떠올랐다. 피해자의 전화를 수소문해 "살아 있어 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이렇게 하나 둘 모인 피해자들이 일곱. 경숙과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모임에 '범죄피해자연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피해자이자 연대자로서 서로를 돕는다. 피해자의 법정에 서주고, 대응 방법을 함께 고민한다. 피해 대응이 처음일 피해자들을 위해 매뉴얼도 만들었다. 경숙은 "무엇보다 지안의 일에 대해 마음 편히 이야기할 곳이 생겨 좋았다"고 말했다.

이들은 같은 피해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입법에도 나섰다. 피해자들이 모여 서로 겪은 일을 말하다 보니 "범죄의 패턴이 뻔했다." 가해자의 집착도, 경찰이 위험성 평가에 안일했던 것도, 그래서 가해자 분리에 실패한 것도 똑 닮았었다. 피해자들은 국가가 똑똑히 보이는 '죽음의 예고'를 자꾸 놓치는 것은 이런 피해자의 경험을 반영한 법이 없어서라고 결론 내렸다. 이들은 입법 공백에 놓인 친밀한 관계 안에서의 폭력을 규율하고, 경찰 수사 단계부터 피해자 회복 단계까지 피해자들이 믿고 맡길 수 있도록 통일된 매뉴얼을 만들어 달라고 국회에 요구했다. 지난해 9월에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을 통해 친밀관계폭력처벌법 발의에도 성공했다.

그러나 국회 벽은 높았다. 법안을 발의한 지 8개월이 지났는데도 처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경숙은 "의원실마다 전화를 돌려가며 간신히 올려놓은 법안"이 22대 국회 종료와 함께 사라질까 봐 초조하다. 미적지근한 변화에 피해자들도 지쳐간다. 경숙은 피해자들에게 "다 같이 출동하자"고 말하기 조심스럽다고 했다. 사실 피해자들 대부분이 자신의 피해 회복도 버거운 상태다. 경숙은 "괜히 기대를 걸었다가 좌절되면 더 큰 상처가 될 것만 같다"고 말했다.

요즘 경숙은 '피해자들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생각을 한다. 국민을 살리고 보호해야 할 국가가 아닌가. 그런데 국민이 살려달라고 신고까지 했는데도 살리지 못하는 일이 반복된다. 국가가 가해자를 제대로 분리해 놓지 않아 살아남은 피해자들도 안절부절못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피해자들이 모여 해결할 방법까지 알려줬는데도 법이 바뀌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어떻게 살아남으라는 걸까. 경숙은 "이 사회가 피해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해 11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경숙이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가정폭력처벌법 전부개정법률안(친밀관계폭력처벌법)'의 심사를 요구하고 있다. ©손상민 사진기자

지난 3월, 남양주에서 한 명의 여성이 또다시 친밀한 관계였던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그의 죽음은 지안처럼 '피해자가 수차례 신고하며 보호를 요청했는데도 막지 못한 죽음'이었다. 경숙은 서울로 달려가 기자회견에 섰다. "우리는 언제까지 같은 장례식을 반복해야 합니까." 국가가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 반복된다. 경숙은 지안을 잃었던 그때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난해 7월, 이재명 대통령은 4·16 세월호 참사, 10·29 이태원 참사, 7·15 오송 지하차도 참사, 12·29 여객기 참사 유가족을 만났다.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정부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정부를 대표해 사죄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국가의 부재로 인해 억울한 국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도 했다. 유가족이 흐느끼는 소리가 화면 너머로도 들렸다. '얼마나 큰 위로였을까.' 경숙은 "자제분들 잃은 마음이 눈에 훤했"지만, 대통령으로부터 위로받은 심정은 그저 헤아릴 수밖에 없다.

"이것도 참사예요. 한 장소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뿐, 동시다발적으로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는 참사예요."

우리 사회는 국가가 막을 수 있었고, 막아야 했던 죽음을 '사회적 참사'로 호명한다. 함께 아파하고, 기억하며, 같은 참사의 반복을 막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 안에서 반복돼 온 죽음은 단 한 번도 '사회적 참사'로 호명된 바 없다. 대통령 말마따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정부의 책임을 다하지 못해" 발생했는데도 말이다. 경숙은 이 죽음들을 '사회적 참사'로 인정하지 않은 지점에서 문제가 시작된 것 같다고, 조심스레 결론 내렸다.

임윤옥 성평등노동연구소 '소소' 소장도 경숙의 결론에 동의한다. 그는 2022년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당시에도 "반복되는 스토킹 범죄, 젠더 폭력은 세월호 참사 같은 사회적 참사"라고 주장했다. 임 소장은 "산업 재해가 일어나면 작업장에서 어떤 위험 요소가 있었는지에 대해 사업주 책임을 따지는데, 친밀한 관계 폭력과 같은 젠더 폭력은 개인의 책임, 혹은 가해자의 일탈로 보는 경우가 많다"며 "더 이상 이러한 범죄가 용납되면 민주주의 국가라 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경숙은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국가의 이름'으로 일어나선 안 될 죽음이었다는 것부터 인정받고 싶다. 비슷한 죽음에 한숨짓는 일도 없도록, 확실한 변화도 약속받고 싶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으면, 피해는 회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숙은 무엇보다도 "대통령에게 위로받는다면 피해자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상상했다.

"저희를 한 번만 만나 주십시오." 경숙과 피해자들은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지난 3월 17일 청와대 앞에서 여성인권단체 등이 주최한  '남양주 가정폭력·스토킹 여성살해사건 긴급대응 기자회견'에서 인천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의 유가족이자 범죄피해자연대 활동가인 이경숙씨가 발언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대통령님, 매년 10만 건이 넘는 국민의 "살려달라"는 신고가 접수되지만, 그 끝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지조차 제대로 집계되지 않고 있는 참사를 알고 계십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 누군가는 반복되는 스토킹과 교제 폭력, 가정 폭력 속에서 처절한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위험 신호가 여러 차례 감지되었음에도 끝내 살해되거나 죽음으로 내몰립니다. 2024년 한 해에만 관련 범죄로 108명이 살인·살인미수 피해를 입었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사각지대는 더 많을 것입니다. 반복된 위험 신호가 있었고 국가가 알고도 생명을 지키지 못했다면 이는 명백한 '사회적 참사'입니다. 단지 다른 장소와 날짜에 벌어졌다는 이유로, 우리는 오랫동안 이 비극을 개인의 불행으로 취급해 왔습니다.

저는 2023년 스토킹 범죄로 동생을 잃고 범죄 피해자 연대 활동을 하는 이경숙입니다. 이 참사에 국가가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면 내 동생은 지금도 살아 있었을 것입니다. 꽃이 필 때마다, 비가 올 때마다 눈물 흘리며 허망하게 그리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평범했던 저의 일상이 무너졌듯, 이 공포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에게도 언제든 닥칠 수 있는 냉혹한 현실입니다.

지금 유가족들은 슬픔에 잠길 시간도 없이 직접 증거를 모으고, 부실한 수사와 공소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겠다는 약속은 왜 최일선 현장에서 이토록 무력하게 무너집니까.

이재명 대통령님. 늘 "국가의 제1 의무는 국민의 생명 보호"라 강조하셨고, 약자가 억울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억강부약'의 민생 정치를 실천해 오신 대통령님께 간곡히 호소합니다.

저희를 한 번만 만나 주십시오. 현장에서 피눈물을 흘린 이들의 목소리가 빠진 제도는 또 다른 죽음을 막지 못합니다. 실용적인 제도 개선과 강력한 컨트롤타워 수립을 위해, 저희 유가족들과의 면담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국민이 국가에 "살려달라"고 외쳤을 때, 정말로 살아남을 수 있는 안전한 나라를 대통령님의 과감한 결단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응답을 기다리겠습니다.

2023년 스토킹 범죄 피해자 유가족 이경숙, 그리고 친밀한 관계 범죄 피해자 연대 올림

출처: 경찰청 '2024 사회적 약자 보호 주요 경찰 활동' 보고서

출처: 여성신문 https://n.news.naver.com/article/310/0000137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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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뉴스와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