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대기업·석사 출신도 줄섰다…경비 1명 뽑는데 170명 '우르르'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954만 명에 달하는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차례로 정년퇴직 연령에 들어서면서 은퇴 후 재취업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들 중고령층이 주된 일자리를 떠나고 있지만 이들이 재취업할 곳은 경비·청소와 운송, 복지 등 단순 서비스 분야에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중고령층 일자리 모델 개발 연구’에 따르면 주된 일자리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뒤 퇴직한 50세 이상 근로자의 가장 큰 재취업처는 사업서비스업이다. 사업서비스업은 경비, 시설관리, 청소, 인력 공급 등을 포함한다. 택시 운전을 포함한 운수업과 보건·사회복지서비스업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이들 세 산업 비중을 합하면 25.2%로 재취업한 중고령층 4명 중 1명은 전문성이 떨어지는 단순 서비스 분야에 종사하는 셈이다.

연구진은 “전문성이 강한 직업군은 재취업 진입장벽이 높아 극히 제한적인 분포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 재취업 일자리 중 금융보험업과 통신업 비중은 각각 2.6%, 0.4%로 미미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2차 베이비붐 세대의 대졸 이상 비율은 46.5%로 1차 베이비붐 세대보다 무려 20.6%포인트 높다. 고학력 은퇴자들이 저임금·계약직 일자리로 내몰리면서 국가적으로 인력 활용 비효율성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기업 출신과 석사급 고학력 지원자가 경비원 등 단순 서비스직을 지원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서울 중구의 한 인력파견업체 대표는 “최근 대형 증권사 건물 경비원 한 명을 뽑는데 지원자가 170명이나 몰렸어요”라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도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일한 사람은 이제 흔하다”며 “화단 관리와 재활용 쓰레기 분류같이 체력을 요하는 직업인 데다 고스펙 지원자는 관리하기도 어렵다는 인식 때문에 오히려 채용을 꺼린다”고 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고용24를 통해 구직 신청을 한 60대 79만9242명이 가장 많이 희망한 직종은 돌봄과 청소였다. 3명 중 1명이 돌봄과 청소를 재취업처로 택한 셈이다. 고용 시장에서는 이들이 원하는 일자리라기보다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평생 쌓아온 경력과 전문성이 은퇴 후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재취업 성과는 퇴직 전 주된 직장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에 따라 달랐다. 관리직인 행정·경영·금융보험 관리자의 재취업률은 58.3%, 사무직인 경영지원 사무원은 58.7%로 평균보다 낮았다. 반면 보육교사 및 사회복지 종사자 74.7%, 식당 서비스원 71.7%, 보건·의료 종사자 69.4% 순으로 재취업률이 높았다. 사무·관리직은 은퇴 이후 경력을 이어갈 통로가 상대적으로 좁았다.

경비원과 청소종사자는 진입 장벽이 낮아 재취업 시장에 다른 직종 출신이 대거 유입되면서 정작 해당 일자리에서 오래 일한 근로자의 재취업률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퇴직자가 주된 일자리 경력을 살리지 못하고 단순 서비스직을 전전하는 현상은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고용정보원은 “단순한 고용 유지를 넘어 경력 유형별로 차별화된 고령자 고용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까스로 재취업에 성공해도 고용의 질이 나빠지는 것이 문제다. 재취업자 중 계약직 비중은 50~54세 14.3%에서 60~64세 46.8%로 급증했다. 임금 하락세는 더욱 가팔랐다. 재취업자의 월평균 임금은 50~54세 456만원에서 55~59세 393만원, 60~64세 309만원으로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마지막 일자리의 법정 정년을 늘리는 것보다 은퇴 후 주된 경력을 살릴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축적한 전문성을 활용하지 못하는 건 개인의 손실을 넘어 국가적 손실”이라며 “숙련과 전문성을 활용할 수 있는 경력 연장형 일자리와 중장년층의 전직 시장을 함께 키우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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