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느닷없이 유족 돼버린 아버지 "제 아들은 백형준입니다, 그날 이태원에 있었어요"

[유족 인터뷰] 참사 때 구조 나선 상인, PTSD·경영난으로 고통 겪다 사망... 행안부·특조위 '희생자' 인정

이태원 참사 희생자로 인정된 백형준씨 부친인 백가인씨가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인 이태원 세계음식특화거리에서 고인이 된 아들이 운영하던 가게를 살펴보고 있다.

참사 후 3년 반, 아버지는 갑자기 '유족'이 됐다. 2022년 10월 29일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어갈 때, 이태원 상인들은 부재한 국가를 대신해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상인들이 마주한 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상권 침체, 그리고 여전한 국가의 부재였다. 그중 한 명이었던 아들은 지난 4월 29일 결국 세상을 떠났다. 잘못한 것 하나 없는 아버지는 자꾸 "내 탓"인 듯한 마음을 짊어진 채 무거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태원 참사 당시 구조에 나섰던 상인이자 이후 겪은 어려움으로 지난 4월 29일 세상을 등진 고 백형준(사망 당시 37세)씨. 국가는 백씨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겨우 그를 돌아봤고 그에게 '160번째 희생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행정안전부와 10.29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달 26일과 30일 백씨의 죽음이 참사와 연관돼 있다고 인정하며 그를 희생자로 인정했다. 백씨가 숨진 후 두 달 만이었다.

애초에 떠나지 않도록 살폈으면 좋았으련만, '희생자'라는 호명도 국가가 인정해야만 가능한 이 현실에 아버지 백가인(67)씨는 그저 씁쓸할 뿐이다. 정갈히 갖춰 입은 아버지는 지난 2일 이태원 그 골목에 다시 섰다. 장사하던 아들이 참사를 목격하고 주저없이 부상자와 시신을 나르던 곳이다. 백씨가 골목을 천천히 오르던 중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졌다.

"내가 오니까 비가 와. 아들 있는 하늘이 위로하는 것만 같아."

▲ 이태원 참사 희생자로 인정된 백형준씨의 부친 백가인씨

이태원 참사 희생자로 인정된 백형준씨의 부친인 백가인씨가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참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골목을 올라 왼편으로 조금 더 걸음을 옮기자 아들이 "기어코 성공하겠다"며 버티듯 장사를 이어간 상점이 나왔다. 지금은 다른 가게가 된 이곳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가게가 나갔네... 다행이야"라고 읊조렸다. 그는 "2년 전 설에도 혼자 일하는 아들에게 음식을 해주려고 왔는데 이 일대가 휑해서 놀랐다"면서 "지금은 (상권이) 살아났다는 느낌이 든다. 아들도 생전 이태원이 다시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말했다.

아버지 가인씨는 이날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들 "백형준"의 이름을 처음 세상에 알렸다. 그러면서 "아들의 죽음이 참사에 의한 희생으로 인정됐으니 하늘에서 형준이가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기 바란다"며 "아들 일을 계기로 그동안 비교적 소외돼 온 상인, 부상자 등 여러 참사 생존 피해자들에게도 정부와 사회가 주목하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형준씨는 중학생 때부터 요리사를 꿈꿨다. 이 말을 하던 아버지는 옅은 웃음을 내보이며 "어렸을 때 아내와 음식점을 했었는데 그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대학도 조리학과로 진학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군대에서도 취사병으로 복무했고 제대 후 고급호텔의 조리사로 취업했다가 창업을 결심했다"고 떠올렸다.

형준씨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의 배경이 된 주점을 2020년 초 운영하게 됐다. 코로나19로 초반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2022년부터 손님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형준씨는 아버지에게 "코로나 때 진 빚을 금방 갚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고 인근에 2호점도 계약했다. 그런데 2호점 개업을 이틀 앞둔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를 마주했다.

참사 당시 형준씨는 친구의 부탁을 받아 해밀톤 호텔 인근의 주점에서 잠시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가게 안으로 인파가 몰려들자 어떤 상황인지 알아보기 위해 바깥으로 나갔던 형준씨는 아주 가까이서 참사를 목격했다. 건장한 체구의 그는 주저없이 부상자와 시신을 여러 번 옮기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로운 일을 한 아들 삶의 모든 것이 이후 달라졌다"고 떠올렸다.

지난 2022년 10월 29일, 백형준씨는 서울 용산 이태원 해밀턴 호텔 인근 골목 주점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이때 주점 바깥으로 나간 형준씨는 아주 가까이서 참사를 목격했고, 주저없이 부상자·시신 등을 여러 번 이송하는 등 구조활동을 했다.

"(이태원으로 오기 직전) 부천에서 장사할 때는 동생하고 장난도 잘 치고, 분위기 메이커였거든요. 그런데 참사를 겪고는 집에 전화도 잘 안 하고 집에 오더라도 방에서 잘 움직이지도 않았어요. 근처 친구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화를 잘 참지 못했어요. 눈의 흰자위만 보이며 소리를 지르다 2~3분 있다 '죄송해요'라고 하고..."

아직도 아버지 뇌리에 선명한 아들의 말이 있다. 어느날 형준씨는 아버지에게 "제가 이태원에서 무슨 일을 겪었고 그 뒤로 어떻게 살았는지 알긴 하세요? 사람 죽는 것도, 사람 사는 것도 별 것 아니에요"라고 토해내듯 말했다. 아버지는 그때 이후로 아들이 "정부를 많이 불신했다"고 회상했다.

"그때 형준이가 그러더라고요. '그때 나 죽을 뻔했어요. 밑에 깔린 사람들 끌어내고 온몸이 막 쑤셨어요. 그렇게 고생해서 구조했는데 용산구청에선 구조한 건 봐주지도 않고 (건축법을 위반했다며) 이상한 걸로 트집 잡고 그랬어요'라고요."

이태원 참사 1년 뒤인 2023년 백형준씨가 남긴 유서. 전날 아들과의 통화에서 이상함을 감지한 어머니가 다음날 가족들과 함께 형준씨의 자취방에 방문했고, 다행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백씨에게 가장 충격으로 다가온 건 참사 1년 뒤 아들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려고 했던 사건이었다. 전날 형준씨와 통화했던 어머니가 이상함을 느낀 뒤, 온가족이 나서 다행히 그를 자취방에서 구할 수 있었다. 이때 형준씨는 이런 내용의 유서를 썼다.

'이태원에 와서 3년간 코로나와 사고를 겪으며 내 자신의 멘탈이 정상이 아님을 느꼈습니다. 점점 가깝던 사람들과 멀어지고 화도 늘었습니다. 그냥 열심히 하면 다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더 악화되었습니다. 이태원 거리를 걷는 게 불편했습니다.

원래 죽는 건 크게 무섭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를 견디고 이태원 사고 터졌을 때 처음으로 죽는다는 걸 깊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족, 친구, 동생들 때문에 죽는다는 생각은 안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주변인들에게 직접 피해가 가기 시작해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이 선택을 하게 되었네요.'

아버지는 곧장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센터에선 아들의 병원 상담을 조언했지만 그때마다 형준씨는 "내가 무슨 문제가 있다고 정신병원에 데려가려고 하냐", "가족들까지 왜 그러냐"라며 여러 번 거세게 거절했다.

"이태원 상권 침체로 인한 경영난"은 형준씨를 더욱 옥죄었다. 유서에 적힌 것처럼 "주변인들에게 직접 피해가 가기 시작"하면서 버티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그때 2호점 오픈하려고 했는데, 이틀 남기고 참사가 발생했어요. (참사 이후로) 장사는 전혀 안 되는데 이미 2년 계약을 맺어서 임대료, 직원 월급, 식자재 비용 등으로 빚이 엄청 쌓였어요. 그래서 제가 그만두라고 했어요. '언제 풀릴 줄 알고 여기서 버티냐'고. 제가 빚도 좀 갚아줬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아들이 어마어마하게 부담감을 느끼는 거예요. '이태원에서 뼈를 묻겠다', '기어코 성공하겠다'고 했어요."

어떻게든 가게를 살리기 위해 형준씨는 갖은 노력을 다했다. 아버지로서 가장 아픈 기억은 아들이 위험한 오토바이를 타면서도 어떻게든 부모를 안심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고 백형준씨와 아버지 백가인(67)씨. 행정안전부와 10·29 이태원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 4월 29일 숨진 백씨를 참사 희생자로 인정했다. 백씨는 2022년 10월 29일 참사 당시 구조 활동에 나섰고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상권 침체에 따른 경영난을 겪었다.

"2023년 겨울에 오토바이를 하나 사겠다고 하더라고요. 임대료를 내야 하는데, 손님이 전혀 안 오니까 특기인 중국음식을 만들어 배달을 좀 해야겠다고요. 그런데 배달료도 몇 천원씩 하니까, 가까운 데는 오토바이를 타고 직접 배달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로서 마음이 아팠죠. '겨울에 미끄럽고 사고 나면 어떡하냐'고 그렇게 만류했는데 어느 날 오토바이를 타고 본가에 왔더라고요. 저희 안심시키려고. '저 오토바이 잘 타요. 안전하게 잘 탈게요.' 이렇게 말하던 모습이 지금도 마음에 너무 걸려요."

그렇게 버티던 형준씨는 2024년 봄 결국 가게를 접었다. 이후엔 어머니 가게, 친구 가게에서 일을 이어갔다. 빚을 갚기 위해 낮에 일하는 것과 별도로 밤에 일할 배달 전문 가게를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형준씨는 그 가게를 열지 못했다. 개업을 며칠 앞둔 지난 4월 20일부터 낮에 일하던 친구 가게에 출근하지 않았고 4월 29일 경기도 포천의 왕방산 중턱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아버지는 아직도 아들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아버지는 형준씨가 왕방산으로 향하기 전날 "가족과 여느 주말 저녁처럼 즐겁게 외식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고 말했다.

"죽기 전 마지막 대화가 그거였어요. '가게 열심히 해서 용돈도 드릴게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아빠는 용돈 줘도 별로 쓸 일이 없다. 그걸로 빚 갚고 열심히 살아라. 아빠 신경쓰지 말고.' 그런데 이렇게 돼 버렸으니 믿기지 않죠."

아버지는 "내 관심이 부족한 탓"이라고 자책하면서도 "국가에서 조금 더 적극적이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세세한 것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한 번 정도는 대면 상담을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분들 중에서 장사를 하며 참사를 목격하신 분이나, 부상을 당하신 분들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우리 아들에게 일어난 일이 언제라도 또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와 사회가 그동안 덜 주목 받아온 참사 피해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어요."

백씨는 마지막으로 "형준이는 순하고, 배려를 많이 하는 착한 아들이었다"며 "참사 때도 구조를 하며 세상의 소금 역할을 한 아들이 이번에 희생자로 인정되며 그동안 비교적 소외돼온 참사 생존자들에게도 관심이 가게끔 하는 소금 같은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 이태원 참사 희생자로 인정된 백형준씨의 부친 백가인씨

이태원 참사 희생자로 인정된 백형준씨의 부친인 백가인씨가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 (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 기사는 자살예방 보도준칙 4.0을 준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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