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꿈틀대는 정글을 지나 차모로 동굴 천연 풀에 풍덩~ [괌 투어]

패것 케이브 입구. 정글 속에 감춰져 있다.
패것 케이브 입구. 정글 속에 감춰져 있다.

패것 케이브 입구. 정글 속에 감춰져 있다.

국민 신혼여행지인 괌이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젠 웰니스다. 휴양과 쇼핑을 넘어 아웃도어와 액티비티 체험을 점차 중심으로 내세우고 있다. 무더운 태평양 날씨가 숨겨놨던 트레킹 코스들도 속속들이 발굴되고 있다. 국내외 어디서도 해보기 어려운 경험을 선사하는 길들이다.

대표는 괌 북동부 해안의 패것 케이브Pagat cave 트레킹. 구슬땀을 뚝뚝 흘리며 정글을 헤치고 나아가면 태평양 절벽과 숨겨진 동굴에서 수영도 즐길 수 있는 굵고 짧은 길이다.

차가 갑자기 도로 한가운데에 섰다. 여기가 들머리라며 분주히 내리는데 도통 어디가 입구인지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웠다. 다시 보니 'PAGAT'이란 글자가 적힌 자줏빛 표지판이 보인다. 그 옆 나무 그늘 아래로 꽤 넓은 오솔길이 숨겨져 있다.

가이드를 맡은 괌한인산악회 최승환 대장은 트렁크를 열더니 장갑과 구명조끼, 손전등을 꺼내어 일일이 나눠 준다. 그만큼 험하고, 물이 깊고, 어둡단 뜻이다.

"인증 사진 찍으실 거면 지금 찍으셔야 돼요. 걷기 시작하면 몰골이 말이 아닐 겁니다."

최승환 대장이 짐짓 너스레를 떤다. 그는 33년 전 괌으로 이민을 왔고, 36년 전에 등산을 시작한 베테랑이다. 겁을 주는 이유가 있다. 괌에서 걷는다는 건 꽤 힘든 일이다. 그것이 평지일지라도. 특히 우기인 여름이면 습도가 높아 실외로 나가는 순간 바로 등에서 한줄기 땀이 주르륵 흐를 정도다. 게다가 패것 케이브 트레킹은 꽤 급경사인 길도 지나야 한다.

코스를 요약하면, 전체 길이는 편도 2km, 왕복 4km로 짧다. 15번 도로에 붙어 있는 들머리(구글지도 좌표 13.4999, 144.8771)에서 바다까지 정남쪽 방향으로 쭉 오솔길을 질러가면 된다. 처음 절반은 완만한 임도지만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경사가 급해지고, 로프를 잡고 오르내려야 하는 구간이 나온다. 전체 고도차는 약 150m. 그렇게 고생해서 길 끝에 다다라야 패것 동굴과 침식에 의해 형성된 아치를 만나볼 수 있다.

정글도를 들고 앞장서는 최 대장의 등을 좇는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다니는 길이라 개척산행을 해야 되는 건 아니지만, 문제는 태풍이다. 태풍으로 나무가 쓰러지면 우회로를 내거나 나무를 자르고 길을 뚫어야 한다. 그는 패것 케이브 트레킹에 애착이 크다. 위험구간에 자비를 들여 로프를 직접 매달아 두었다. 길에 나름의 스토리텔링도 부여하고 있었다. 이른바 '패것 10경'이다.

"10가지 비경이 이 길에 숨어 있어요. 미모사, 가짜꽃, 반얀트리, 고대 차모로 절구, 라떼스톤, 아치, 바다 전경, 하트바위, 동굴, 물방울 반영이죠. 오늘 하나씩 알려드릴게요."

최 대장의 안내에 따라 정체 모를 열대림의 존재가 하나씩 드러난다. 건들면 잎이 오므라드는 미모사, 오레가노와 바질, 마취 성분이 있어 물고기를 잡을 때 쓴다는 피시킬러 버섯 등이다. 잎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 가짜꽃도 많다. 곤충을 유인하려고 큰 꽃인 양 위장하는 생태전략이라고 한다. 그가 알려 주지 않았더라면 그저 시든 잎 정도로 치부했을 터다.

3년 전에 쓰러진 나무도 지난다. 당시 풍속은 시속 225km에 달했다고 한다. 큰 나무가 뿌리째 뽑혀 넘어진 것도 놀라운데, 지금까지 살아 있다고 한다. 괌의 생명력이다.

20분 정도 평평한 길을 지나자 급경사 내리막이 시작된다. 약 120m의 고도를 미끄러운 암릉과 흙길을 따라 내려야 한다. 물론 능숙한 산꾼이라면 30분 정도면 끝까지 주파할 만하다. 하지만 패것 케이브 트레킹은 전체 소요시간을 5시간 정도 잡는 게 보통이다. 오고가는 데 2시간, 옷을 갈아입고 말리는 데 15분, 해안절벽 구경 45분, 물놀이 2시간이다.

패것 케이브로 내려서는 길은 전반부는 완만하지만 후반부는 급경사에 장애물이 많아 주의를 요한다.

차모로인들이 제를 올리는 신성한 유적지

급경사 구간을 지나면 숲이 자욱해진다. 그늘 밑에 있어도 날씨는 푹푹 찌고, 모기는 찌른다. 긴 바지를 입었어야 했다. 급한 김에 팔 토시를 꺼내서 양 다리를 억지로 넣어 본다. 그러는 차에 모두의 발걸음이 느려진다. 주변을 둘러보니 라떼스톤과 차모로 절구가 있다.

"패것은 차모로족의 고대 마을이 자리 잡은 곳이에요. 차모로족 전통 가옥 주춧돌인 라떼스톤과 절구들이 대량으로 발견됐죠."

괌 정부에 따르면 이 마을은 약 2,000년 전에 처음 들어서기 시작해 1700년까지 번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스페인 군대가 상륙하고 식민지배를 시작하면서 자연히 쇠락의 길을 걸었고, 지금은 유적지만 남았다. 미국 역사보존재단으로부터 '미국에서 가장 위험에 처한 역사 유적지 11곳' 중 한 곳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물을 토대로 패것인들의 생활을 추정해 보면 주로 채집과 거북이 사냥, 어획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물고기와 거북이 뼈가 많이 출토됐다. 낚싯바늘도 79개나 나왔다.

"패것 케이브 트레킹을 다니다 보면 이따금 차모로인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이들은 곳곳에 산재한 라떼스톤 유적지를 찾아서 꽃을 올리고 제를 지내더라고요. 선조들에 대한 예를 표하는 것 같아요. 그들에겐 이곳이 잃어버린 성지겠죠."

라떼스톤 유적지를 지나 몇 걸음 더 나아가면 갑자기 시야가 확 열리면서 바다가 펼쳐진다. 이곳에선 파도 침식으로 인해 형성된 아치를 만나볼 수 있다. 인생사진 명소다.

"옛 차모로인들이 이곳에서 낚시를 많이 했다고 해요. 지금도 밑을 내려다보면 물고기가 바글바글합니다."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깎아지른 절벽 아래를 본다. 등 뒤에서 뭔가가 휙 하고 날아간다. 가이드가 던진 빵조각이다. 빵조각이 바다 표면에 떨어지자마자 순간 포말이 파르르 일어나며 팔뚝만 한 형체들이 물 위로 튀어 오른다. 학꽁치와 비늘돔이라고 한다.

또한 이 절벽에서 피는 꽃이 특이하다. 연인꽃이라 부른다는데 현지에선 하프Half 플라워, 혹은 나나수라고 부른다. 원형이 아니라 한쪽으로만 펴서 꽃 두 개를 맞대야 완성된 모습을 보인다. 괌 전설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커플이 이 꽃을 서로 나눠 가지고 서로를 그리워했다고도 한다. 꽃 두 개를 합치면 꼭 예쁜 미선나무 꽃을 떠올리게 만드는 모양새다.

한편 하트바위는 아치 오른쪽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하트 모양의 바위일 줄 알았는데, 구멍이었다. 바다 가까이 절벽에 침식에 의해 손바닥 두 개를 포갠 크기만큼의 하트 모양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구멍 아래로 파도가 들이치는데 하얗게 포말이 일면 아주 예쁘고 또렷한 하트 사진을 얻을 수 있다. 또 산호화석도 많으니 발을 딛을 때 신중해야 한다.

해안절경을 뒤로 두고 250m쯤 되짚어 나오면 땅이 움푹 꺼진 지형을 찾아볼 수 있다. 이곳이 바로 패것 케이브다. 기회가 된다면 커다란 코코넛 크랩이 동굴 안쪽으로 따라오라는 듯 기어가는 것도 볼 수 있다. 차모로인들은 희귀한 생물이 길을 인도해 주는 듯한 모습을 보면 "타오타오모나Taotao Mo'na가 인도한다"고 말한다. 산과 야생을 보호하는 선조들의 영혼을 뜻하는 말이다. 영화 '아바타'의 개념을 생각하면 꼭 맞다.

동굴은 이중으로 구성돼 있다. 처음 내려서면 무릎 정도 깊이의 작은 풀장이 나타난다. "동굴 수영이라면서, 이게 전부라고?"란 말이 절로 나온다. 물론 진가는 감춰져 있다. 풀장 안쪽으로 깊숙이 몸을 숙이고 탐험하듯 들어가면 그 안에 숨어 있는 커다란 수영장을 만나볼 수 있다. 가장 깊은 곳의 수심은 3m, 수영실력이 뛰어나지 않다면 구명조끼가 필수다.

패것 케이브 수영은 가이드에 따라 내용과 시간이 다르다. 편히 시간을 보내게 해주는 이도, 여러 레크리에이션을 선보이는 이도 있다.

"바로 옆이 바다잖아요? 그런데 이곳은 민물이에요. 삼투압 현상 때문에 해수가 더 유입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옛 차모로 패것인들에게 이 동굴은 각별한 존재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마르보 동굴을 제외하면 이곳이 근방의 유일한 식수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귀중하니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다고 한다. 그래서 수영 중에도 형성 중인 종유석이나 석순은 가급적 만지지 않아야 한다.

"작지만 놀 거리가 많아요. 다이빙할 수 있는 곳도 있고, 포토 스팟도 있죠.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이 드나들며 놀 수 있는 수중구멍도 있고요. 종유석과 석순도 여기만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 한국엔 없어요."

더위에 달궈진 몸을 냉수에 풍덩 담구는 쾌락보다 더한 쾌락이 기다리고 있다. 먼저 손목에 찬 손전등의 불빛을 하나 둘 끈다. 마지막 손전등이 꺼지는 순간, 완전한 암흑이 찾아온다. 공간을 채우는 건 어디서 떨어지는지 모를 톡톡 물방울 소리들뿐. 명상의 시간. 문명에 찌든 몸을 대자연에 풍덩 담근다. 트레킹과 수영으로 쿵쿵 뛰던 심장박동이 점차 잦아든다. 완전히 줄어들면, 이제 다시 힘을 얻고 돌아갈 시간이다.

패것 케이브 트레킹 중 만나는 해안절벽. 고대 차모로인들이 낚시를 했다.

기자는 이제 갓 8개월 된 아기를 두고 있다. 그래서 여행을 가도, 예전과 좀 시선이 다르다. 괌에서 유용했던 정보들, 또 느낀 점을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 패것 케이브 트레킹은 코스는 외길이라 큰 문제가 없는데 동굴 입구를 찾기가 꽤 어려우니 가급적 가이드 동행 패키지를 이용하길 추천한다.

· 괌의 성수기는 겨울, 비수기는 여름이다. 우기라 그렇다. 때때로 내리는 폭우를 견디고 날씨 운이 빼어나다면 비수기에도 올 만하다. 항공권, 숙박비 등이 훨씬 싸기 때문이다.

· 덥다. 많이. 물론 40℃에 육박했던 한국의 지난 폭염에 비하면 견딜 만하다. 평균 28℃, 최고 31℃ 선이다.

· 고환율과 코로나 이후 철수한 매장이 많아 쇼핑의 메리트가 예전만 못하다. 그래도 여전히 몇몇 제품은 한국보다 싸게 살 수 있다. 11월 블랙프라이데이에 방문을 추천.

· 대중교통이 없다. 중심가 시내에 유명 호텔과 매장을 도는 버스는 있지만 섬 멀리 가는 편이 없다. 대신 카카오택시가 있다. 카카오T 앱에서 '괌택시'를 찾으면 된다. 현지 한인가이드나 한인택시도 대부분 카카오톡으로 소통한다.

·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미국. 비행시간이 짧다. 4시간쯤 걸린다. 아이한테 부담이 한결 덜할 듯하다.

· 일부 호텔에선 저녁에 맥주를 무료로, 무한대로 준다.

· 차모로어 인사인 '하파 데이Hapa adai'를 많이 쓴다.

· 20년 전만 해도 일본인이 90%, 한국인이 10%였는데 지금은 한국인이 60%, 일본인이 40% 정도로 역전했다. 그 덕에 한국어가 유창한 직원도 많고 한국어가 병기된 경우도 많아 매우 편해졌다.

· 아이들 물놀이에 특화된 리조트 PICPacific Islands Club는 몇 해 전 리모델링해서 시설이 꽤 괜찮아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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