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껴안을 줄 아는 존재조차 내쫓는 오늘의 문제 [황정은·허태임 교환일기]

봄에는 버드나무 새순이 돋아난다. ©허태임 제공
봄에는 버드나무 새순이 돋아난다. ©허태임 제공

해양과학자들은 우리의 바다가 백화현상으로 위험에 처했다고 말합니다. 해수온 상승으로 산호초가 붕괴하면 해양 시스템 전체가 피해를 본다고 합니다. 봄에는 버드나무 새순이 돋아납니다. 저의 출근길 살구나무는 이제 꽃잎을 거의 떨구었습니다. 이 나무에는 지의류가 붙어 삽니다. 지의류는 이끼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이끼와 뒤엉켜 살기도 합니다.

저는 식물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의류를 학습하게 되었습니다. 지의류의 종류를 일일이 구분하고 동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제로 제 실력은 형편없습니다. 그럼에도 주변의 지의류 정도는 정확하게 알고자 노력합니다. 덕분에 그 살구나무 수피에 퍼져 사는 친구들만큼은 저마다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초무늬지의'와 '분말노란속매화나무지의'와 '분말테매화나무지의'를요.

지의류를 구성하는 녹조류 세포의 크기는 0.01㎜ 내외입니다. 균사는 그보다 더 가늘어요. 그들을 보기 위해 저는 보통 400배 안팎의 고배율 광학현미경의 도움을 받습니다. 지의류의 크기는 작게는 1㎜부터 크게는 수 미터에 이릅니다. 그중 '사슴지의'가 있습니다. 작고 작은 세포들이 얽히고설켜 만든 모양이 마치 여러 갈래로 갈라진 사슴의 뿔을 닮아서 사슴지의라고 부른다고 들었습니다.

사슴지의는 순록이 먹을 수 있는 양식입니다. 균류가 가두어 기른 녹조류에서 고열량의 탄수화물을 얻는 거죠. 미생물들의 공생과 협동이 없었다면 사슴지의도, 북극의 순록도, 그 순록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에스키모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극한 환경이 닥치면 인류도 지의류를 비상식량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기근이 들면 주변에 사는 지의류를 구해와서 찌고 설탕을 발라 과자처럼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여러 대륙의 선주민들 사이에서 전통처럼 내려옵니다.

저는 최근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유방암 가족력이 있기 때문에 일 년에 한 번씩 꼭 받는 검사가 있어서요. 초음파 검사를 받았습니다. 의사는 제 가슴을 기기로 문지르며 자신 눈높이의 모니터를 응시했습니다. 그 영상의 눈금은 새로 생긴 선종의 크기가 1㎝가 조금 안된다는 걸 알려주었습니다. 지의류를 보면서 생명을, 어쩌면 그 너머의 존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지의류는 균류와 녹조류의 집합체입니다. 균류는 식물처럼 스스로 양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균사'라고 하는 가늘고 끈적끈적한 접착제로 양분을 만들 줄 아는 무언가를 붙잡고서야 그 무언가로부터 얻어먹고 사는 거지요. 반대로 서로 도우며 살아보자고 제안하는 균류도 있습니다. 이러한 균류가 아주 작은 생물인 '미세 조류'나 '남세균'과 한몸을 이룰 경우, 이 결속체는 지의류가 됩니다.

지구라는 공동의 집에서 지의류처럼 살기. 잊지 않으려고 마음속에 깊이 기억합니다. 그런 낭만이 우리에게도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선을 그어 만든 팔레스타인 땅에서도 가능할까요? 서로 껴안고 살아가는 생존 방식이 서로를 밀어내는 것보다 더 이로울 수 있다는 계산이 어서 빨리 도입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수목원에서는 매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행사를 엽니다. 오늘은 손택수 시인과 안도현 시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시는 일종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내는 거라고, 두 시인이 입을 모아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수목원의 일이, 식물을 대하는 자세가 시를 쓰는 행위와도 같을 수 있겠네, 생각했습니다.

비가 왔고 지금은 그쳤습니다. 비구름이 승천하며 개고 있는 지금 풍경이 무척 감명적입니다. 때마침 작가님의 일기가 도착했습니다. '서부해당'이 모처럼 개화했다고요. 그런데 이전과 달리 분홍이 아니고 하얀 꽃을 피웠다고요. 그 연유를 저는 알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습니다.

평소보다 환경이 꽤 달라졌다면 식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호르몬을 조절할 줄 압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호르몬 균형이 와르르 무너졌을 테니까요. 꽃잎을 붉게 물들이는 색소인 안토시아닌을 만들라고 명령하는 호르몬 체계가 구실을 다하지 못했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작용한 건 아닌지 짐작해봅니다.

오늘은 5·18 민주화운동 46주기입니다. 양묘장 밖으로 오동나무와 아까시나무가 때맞춰 만개했습니다. 그 두 나무가 무리를 이룬 모습이 어지러울 정도로 찬란합니다. 낙조가 아름다울 것 같아 서쪽 하늘을 자꾸 보게 됩니다. 이팝나무 꽃이 내뿜는 그 좋은 냄새를 작가님도 맡으셨겠지요. 뛰다가 깜짝 놀라서 멈추셨을 것도 같습니다. 너무 빨리 더워지고 있습니다. 파주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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