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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엔 '손짓', 한국엔 '압박'…트럼프의 연합훈련 축소 '이중 전략'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8월14일, 미국 뉴욕주 가든시티의 데이비드 맥 훈련·정보센터에서 연설을 마친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AP 연합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8월14일, 미국 뉴욕주 가든시티의 데이비드 맥 훈련·정보센터에서 연설을 마친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AP 연합

[김은별 미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북·미 회담 띄우자 韓 패싱 우려…다시 고개 드는 '통북봉남'

이란전·대미 투자 불만 작용했나…경제·안보 연계한 '협상카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지시한 가운데, 이르면 올가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대화 재개를 염두에 두고 한미 연합훈련 축소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다.

물론 이번 조치가 북한과의 대화 재개만을 겨냥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란 전쟁 지원에 소극적인 한국에 대한 불만과 대미 투자 약속 이행 문제 등 한미 간 경제·안보 현안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동맹국인 한국과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훈련 축소가 발표됐다는 점에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미 연합훈련이 축소되면서 대북 억지력과 한미 연합 대비태세가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트럼프는 8월16일(현지시간) 트루스소셜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대폭 축소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미 연합훈련이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북한에 부적절하고 적대적인 신호를 보낸다고 주장했다. 특히 자신과 김정은의 '매우 좋은 관계'를 강조하며 훈련 축소 필요성을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8월14일, 미국 뉴욕주 가든시티의 데이비드 맥 훈련·정보센터에서 연설을 마친 뒤 자리를 떠나고 있다. ⓒAP 연합

트럼프-김정은 11월 APEC 회동 가능성

발표 직후부터 대북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대화 재개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했다.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도 거론됐다. 8월1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는 11월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두 사람이 회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트럼프가 이번 훈련 축소를 김정은을 회담으로 유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도 앞서 "트럼프가 김정은과 외교적 교류를 다시 시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으며, 로버트 랩슨 전 주한 미국대사대리 역시 "김정은과 다시 관계를 맺기 위한 일종의 제스처"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는 과거 북·미 대화 국면에서의 훈련 조정과 비교해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도 북·미 대화가 진행되면서 한미 연합훈련이 연기되거나 취소된 적은 있지만, 훈련이 이미 시작된 뒤 기간과 규모를 축소하는 결정이 내려진 것은 이례적이다.

이번 '을지자유의방패(UFS)' 훈련은 당초 8월27일까지 11일간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한미 양국은 훈련 기간을 8월21일까지로 줄이기로 했다. 일부 야외 기동훈련과 반격 작전 관련 훈련도 축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결정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한국과의 사전 조율 여부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8월1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트럼프의 훈련 축소 지시 내용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미 정부 당국자는 아무도 그 내용을 몰랐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전쟁부)는 트럼프의 발표 직후 즉각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으나, 이틀이 지난 후에야 UFS 훈련 기간을 줄이고 일부 훈련을 축소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훈련 축소 자체뿐 아니라 동맹국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결정이 이뤄졌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특히 향후 북·미 대화가 재개돼도 한국을 '패싱'하고 미국이 북한과 직접 협상하는 '통북봉남(通北封南)'이 고착화할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제다.

특히 북한은 트럼프의 제스처에 대해 8월19일 현재 뚜렷한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미 연합 군사연습 UFS를 겨냥해 "자위적 권리 행사는 더욱 명백한 행동으로 표현될 것"이라고 강조했을 뿐이다. 이번 조치가 실제 대화와 성과로 이어질지 불투명하다는 점에서도 이번 결정에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불만도 함께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이란에 대한 미국의 하드파워가 한계를 드러내면서 트럼프는 동맹을 맹비난한다(Trump torches allies as Iran exposes limits of hard power)'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란 전쟁에서 미국의 군사력이 예상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어려움에 처했고, 트럼프가 군사작전에 동참하지 않는 동맹국들에 책임을 돌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가 이재명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까지 공개하면서 이란 전쟁에 동참하지 않는 한국을 두고 "왜 미국이 한국을 도와야 하느냐"는 취지의 불만을 드러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3월14일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 도하훈련에서 주한미군 장병들이 부교를 건넌 스트라이커 장갑차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韓, 안보에서 무역 오판의 대가 치를 수 있다"

또 전문가들은 북한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과의 협상에 회의적 시각을 갖게 됐고, 최근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하고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변수라고 전했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북한은 핵보유국 인정을 바라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데 과연 훈련 축소가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기에 충분하냐는 것이다.

에마 챈릿-에이버리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치·안보국장은 언론 논평에서 "트럼프의 이번 발표는 첫 임기 때 미완의 과제로 남겼던 김정은과의 직접 외교 복귀를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문제는 최근 몇 년간 영향력을 더욱 강화한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협상에 별다른 의지가 없다는 것"이라며 북한의 대화 의지를 핵심 변수로 꼽았다.

결국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봤을 때,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에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뿐 아니라 한국의 대미 투자 약속 이행 속도와 이란 전쟁 지원 문제 등에 대한 불만이 입체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린다. 미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한국의 무역 오판이 안보에서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기사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 정부의 투자 약속 이행 속도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다고 보도했다.

경제와 안보를 분리하기보다 여러 현안을 하나의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는 트럼프의 협상 방식까지 고려하면, 한미 연합훈련 축소는 북한에 대한 대화 신호인 동시에 한국을 압박하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됐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이번 훈련 축소가 김정은을 향한 '손짓'인지, 한국을 향한 '압박 카드'인지, 아니면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가진 것인지가 향후 한미 관계를 가늠할 중요한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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