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공기 속 수분으로 작동 배터리 개발…'자폭 기능'까지 탑재

미국 연구진이 습한 공기와 접촉하면 수분을 흡수해 전력을 생성하고, 필요 시 전자기기를 스스로 파괴할 수 있는 수분 작동형 배터리를 개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게재됐다.

미국 라이스대학교와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공기 중 습기를 흡수해 전기를 생산하는 신축성 배터리를 개발했다. 이 배터리는 기존 배터리처럼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웨어러블 기기와 사물인터넷 기기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배터리는 마그네슘 양극과 은·염화은 음극, 염화리튬염이 주입된 셀룰로오스 막으로 구성된다. 셀룰로오스 막이 주변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하면 염이 녹아 전해질이 형성되고, 이를 통해 전류가 발생하는 원리다.

배터리는 밀폐된 포장재 안에서는 비활성 상태를 유지한다. 일반 배터리는 보관 중 자가 방전으로 인해 서서히 전하가 감소하지만, 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이 없는 건조한 상태로 보관되기 때문에 이러한 화학 반응이 발생하지 않아 장기간 성능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기존 배터리에 사용되는 독성·가연성 액체 전해질을 없애 안전성도 높였다.

연구진은 이 배터리가 습도가 낮은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웨어러블 건강 모니터, 소형 로봇, 원격 센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배터리는 실내 공기와 접촉한 뒤 약 7분 이내에 안정적인 출력을 내며, 전압은 약 1.6V로 일반 AA 배터리보다 다소 높은 수준이다.

이번 연구의 공동저자인 아마이 반도드카르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 전기·컴퓨터공학과 조교수는 이 배터리가 사실상 소금물을 전해질로 활용하기 때문에 독성과 가연성을 가진 기존 전해질이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배터리의 구조는 비늘로 몸을 덮고 있는 천산갑에서 영감을 얻었다. 연구진은 단단한 배터리 셀을 비늘처럼 촘촘하게 배치하고, 이를 탄성이 있는 S자형 전선으로 연결해 시트를 늘리거나 접어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같은 구조 덕분에 실제 배터리 셀이 전체 면적의 87%를 차지하면서도 양방향으로 최대 80%까지 늘어날 수 있다. 또한 구부리거나 비틀어도 내부 저항이 거의 변하지 않는데, 이는 배터리 셀이 고정된 상태에서 물결 모양의 전선이 변형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 배터리를 이용해 무선 블루투스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최대 30시간 동안 구동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기존 배터리를 사용하는 유사한 기기와 비슷한 수준의 성능이다.

연구진은 이 배터리에 습기에 반응해 전자기기를 스스로 파괴하는 킬 스위치 기능도 적용했다. 이 장치는 밀폐된 공간에 알루미늄과 요오드 분말을 건조 상태로 보관하다가, 누군가 기기를 분해하거나 열려고 하면 구획이 파손되면서 내부에 축적된 수분이 화학물질과 반응하도록 설계됐다.

연구진은 개념 검증을 위해 이 시스템을 무선 가스 센서에 적용한 결과, 내장된 전자회로를 포함한 장치 전체가 활성화 후 약 3분 만에 완전히 파괴되는 것을 확인했다.

공동저자인 아브라함 바스케스-과르다도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학교 전기·컴퓨터공학과 조교수는 이 배터리가 단순한 개념 증명을 넘어 IoT 기기와 의료기기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실용적인 에너지원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또 이 배터리가 가볍고 생체 적합성이 뛰어나며 무독성 소재를 사용한 만큼, 향후 유연한 전자기기와 일회용 의료기기에 사용되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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