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같은 익명출산, 다른 사회복지…프랑스의 ‘X출산’

X-출산으로 태어난 아기의 모습. [출처] 프랑스 ‘성난 X출신 협회’(Les X en colère) 홈페이지. https://www.lesxencolere.com/accueil X-출산 제도를 통해 태어난
X-출산으로 태어난 아기의 모습. [출처] 프랑스 ‘성난 X출신 협회’(Les X en colère) 홈페이지. https://www.lesxencolere.com/accueil X-출산 제도를 통해 태어난

보호출산제 이후, 위기 임산부를 만나다⑸

X-출산으로 태어난 아기의 모습. [출처] 프랑스 ‘성난 X출신 협회’(Les X en colère) 홈페이지. https://www.lesxencolere.com/accueil X-출산 제도를 통해 태어난 이들의 ‘뿌리를 알 권리’를 주장하는 단체다.

프랑스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 비교적 느슨하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함께 살며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자녀를 낳은 뒤 결혼하는 일도 흔하다. 무엇보다 이들에 대한 타인들의 따가운 시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혼 여성이 임신을 했는데 남성이 아이를 원하지 않거나 관계를 단절한 경우, 또는 애초에 여성 스스로 남자 없이 출산과 양육을 선택한 경우에는 혼자 아이를 낳아 키우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러한 여성들을 ‘처녀 엄마’(fille mère)라고 불렀는데, 부정적인 어감이 있어 지금은 ‘독신모’(mère célibataire)라고 부른다. 그리고 독신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

프랑스의 ‘비밀 출산’ 제도부터 ‘X-출산’까지

혼외 출산과 비혼 양육에 대한 사회적 제약이 상대적으로 적은 프랑스에서도 익명 출산을 선택하는 여성들이 존재한다. ‘X-출산’이라고 부르는 익명 출산의 이유는 다양하다. 경제적·심리적·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자녀를 양육하기 어렵거나 양육 의사가 없는 경우, 생부와의 관계가 단절된 경우 또는 성폭력으로 임신한 경우 등. 그중에서도 생부의 부재, 생부의 성격 결함, 생부와의 갈등 등이 여성들이 X-출산을 선택하는 주요한 이유로 나타난다.

사실 오래전부터 프랑스에는 ‘비밀 출산’(accouchement secret, 1793년 법률)과 ‘비밀 버림’(abandon secret, 1904년 법률)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프랑스혁명 이후 도입된 ‘비밀 출산’은 출생신고서에 산모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도록 했다. 또 ‘비밀 버림’은 부모가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 공적 보호기관에 아이를 맡길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현재의 익명 출산은 1941년에 생긴 제도로, 산모와 신생아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에서 도입되었다. 이 제도는 몇 차례 수정을 거친 후 1993년 민법에 편입되었으며, 3년 후에는 ‘마테이 법’(loi Mattei)에 의해 다시 일부 내용이 개정되었다. X-출산을 한 여성의 신원은 원칙적으로 비밀로 하되, 아동에게 비식별 정보를 남길 수 있고, 원할 경우 언제든 신원의 비밀을 해제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에서 한 해에 X-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는 4백~6백명에 이르는데, 그 수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기는 하다. 2013년에 640명이었던 X-출산이 2024년에는 446명으로 감소되었다.

X-출산을 선택한 산모에게 국가는 출산 비용을 전액 부담한다. 태어난 아이는 곧바로 생모와 분리된 뒤 병원 측 보호를 받다가 보호시설, 또는 위탁가정에 임시 배치된다. 아기는 잠정적 국가후견아동이 되어 2개월 동안은 입양될 수 없다. 이 기간 생모는 결정을 번복해 아이를 되찾을 수 있으며, 생부 역시 친자관계를 인정하고 양육 의사를 밝힐 수 있다.

한편, 본인이 직접 아이를 맡기지 않은 경우에 아이의 반환을 요구할 수 있는 기간은 6개월 이내이다. 그 이후에야 입양이 진행된다. 통계에 따르면 15~20%에 해당하는 산모가 이 기간에 생각을 바꾸어 아이를 찾아간다고 한다. 이 경우, 아기가 세 살이 될 때까지 아기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의료, 심리, 교육 등 사회적으로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X-출산을 담당하는 병원 측에서는 아이가 성인이 되어 부모의 신상을 알기를 원할 경우를 대비해 산모에게 자신과 생부의 건강 정보, 아이의 출생 배경과 출생 당시의 사정 등을 남기도록 권한다. 산모가 원할 경우, 자신의 신원 정보도 밀봉된 봉투에 넣어 남길 수 있다. 2016년과 2017년에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457명의 임산부 중 10%만이 인적 사항을 기재하였다. 42%는 아무 자료도 남기지 않았다.

프랑스 ‘X-출산 폐지’ 시위대. 피켓에 “알아야 할 권리”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성난 X출신 협회

X-출산 후, 생모의 후회와 뒤늦은 만남

2007년 2월, 파리 에펠탑 맞은편에 있는 트로카데로 인권광장에서 ‘X 출산을 폐지하라’는 시위가 열렸다. 주로 X 출산으로 출생한 아이들과 생모들로 이뤄진 시위대는 광장에 누워 몸으로 X자를 고통스럽게 재현하기도 했다.

〈르 파리지앵〉은 시위에 참가한 파니(49)라는 여성의 삶을 조명했다. 자신을 ‘자격 없는’ 엄마로 지칭하는 파니는 26년 전 X 출산으로 아들을 낳았다. 알제리 출신인 파니가 당시 아이를 임신하자 아이 아빠는 도망쳐버렸다. 파니는 엄격한 부모에게 임신을 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임신 6개월에 접어들었을 때 파니는 조국 알제리를 떠나 혼자 마르세이유로 향했다. 가족 중 파니의 임신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파니는 마르세이유에 있는 엄마 친구 집에서 만삭을 맞고 병원에 가서 X 출산을 한다. 당시는 이 방법만이 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여겼다. 이 한순간의 결정 때문에 자신의 삶이 회한으로 점철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해마다 아이의 생일이 되면 눈물로 밤을 지새웠던 파니는 아들이 18세 성년이 되는 해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로 결심했다. 자기 신분과 주소를 적은 종이를 아이를 버렸던 기관에 맡기면서, 만약 아들이 생모인 자신을 찾으러 오면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나왔다. 아들이 반드시 자기를 찾으러 오라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파니는 이 가냘픈 희망에라도 기대야 했다.

어느 날 파니는 마르세이유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의 전화를 받는다. 아들이 자기에게 첫 번째로 물어본 것은 ‘다른 형제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왜 자기를 버렸느냐는 질문은 하지 않는 아들의 전화를 받은 후, 파니는 대성통곡을 했다. 전화 접촉 후 파니와 아들은 양부모의 허락 아래 상봉했고, 모자는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양부모의 이해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파니는 이후 아들과 함께 X 출산 폐지 운동에 가담했다. 젊은 세대들이 자기와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회한으로 가슴을 치며 평생을 보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치겠다는 다짐이다.

모성만 있는 게 아니다, 한 생부의 오랜 법정 싸움

2023년 발간된 책 『그림자의 딸: 거짓말과 진실』(La Fille de l’ombre. Mensonges et vérité) 프랑스의 X-출산으로 태어난 베로니끄 파페이가 19세에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된 뒤 생부모와 자신의 출생 기원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증언록이다. 저자는 X-출산과 출생 기원을 알 권리에 대한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2000년 초까지만 해도 익명 출산은 오로지 여성의 결정만으로 이루어졌으며 생부의 의사는 고려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6년 4월부터는 생부의 의사도 반영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한 생부의 오랜 법정 싸움이 필요했다.

화제의 생부는 아이가 태어나기 2개월 전에 아이를 인정하고 키우겠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생모가 익명 출산을 감행해 아이가 다른 가정에 입양되었다. 7년간에 걸친 법정 싸움에서 법은 생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당시 생부의 변호사는 르몽드지에 다음의 말을 남겼다.

“이 사건으로 이제 생모의 막강한 결정권이 끝을 맞게 되었다. 익명 출산을 하는 여성들이 부성까지 없앨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듯 X 출산을 둘러싸고 많은 이들이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산모에게는 출산과 입양 이후 겪게 되는 죄책감과 상실감이, 아이에게는 자신의 출생과 가족관계를 둘러싼 정체성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X 출산의 영향은 익명으로 출산한 여성과 자신의 출생 배경을 알지 못한 채 성장한 자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이의 존재를 알지 못했거나 친자관계를 인정할 기회를 갖지 못한 생부도 영향을 받으며, 생모가 이후 새로운 가정을 꾸린 경우에는 그 남편,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도 자신들이 알지 못했던 가족관계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X 출산을 둘러싼 비밀과 단절은 당사자를 넘어 여러 가족 구성원의 삶과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약 200만 명의 프랑스인이 X 출산 제도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으로 추산된다.

임산부와 한부모 가정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두터운 지원

프랑스는 X 출산에서 생모, 생부 그리고 아동의 권리가 조금씩 확대되고 있으며, 제도를 둘러싼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무엇보다 프랑스 사회에서는 임신, 출산, 그리고 아이를 양육하는 기간까지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우선 임신과 출산에 드는 의료비 부담이 크지 않다. 임신 초기부터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산전검사와 출산 준비에 필요한 진료 등은 건강보험에서 100% 보장한다. 임신 6개월째부터 출산 후 12일까지는 임신과 관련이 없는 진료를 포함해 건강보험 적용 대상 의료비가 원칙적으로 100% 보장된다. 출산과 입원에 드는 비용 역시 건강보험 기준 범위에서 전액 지원된다. 다만 초과 진료비나 개인실 이용료 등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출산에 따른 현금 지원도 있다. 일정 소득 기준 이하인 경우, 영유아 지원급여(PAJE)의 하나인 출생수당을 받을 수 있는데 2026년 4월 기준 1,093.08유로(약 169만원)가 지급된다. 소득이 낮은 경우에는 최저생계보장수당(RSA)을 지급한다. 특히 혼자 아이를 양육하는 임산부에게는 증액된 RSA가 적용된다. 2026년 4월 기준 일반적인 1인 가구의 RSA 기준액은 월 651.69유로(약 100만원)인 데 비해, 임신한 한부모의 기준액은 월 836.85유로(약 129만원)이다.

프랑스는 임신기부터 출산과 초기 양육에 걸친 시기, 특히 부모와 아동에 대한 지원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생애 첫 1,000일(1000 premiers jours)’을 공공정책의 일환으로 시행하고 있다. 출처: 프랑스 코레즈 가족수당기금(CAF de la Corrèze)

한부모 가정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혜택도 다양하다. 우선 제일 많이 알려진 것은 가족지원수당(ASF)이다. 혼자 아이를 양육하는데 아이의 친부나 친모로부터 양육비를 전혀 받지 못하거나 일부만 받을 때, 또 양육비가 가족지원수당 미만일 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아이의 생부나 생모가 사망했을 경우나, 아이를 친자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도 받을 수 있다. 이들에게는 아이가 20세가 될 때까지 매달 아이 한 명당 약 201유로(약 31만원)가 지원된다. 부모 양쪽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아동을 맡아서 양육할 때도 지원금이 약 268유로(약 41만원)로 증가한다.

여성이 최저생계보장수당(RSA) 수급자이면서 양육 한부모의 경우, 증액된 RSA 기준이 적용된다. 2026년 4월 기준으로 자녀가 1명인 한부모의 RSA 기준액은 월 약 1,116유로(약 172만원), 2명인 경우에는 약 1,395유로(약 215만원)이다. 한부모에 대한 증액은 일정한 요건 아래 적용되며, 특히 막내 자녀가 만 3세가 될 때까지 적용될 수 있다.

그 외 주거비 지원, 어린이집 입소 우선순위, 급식비 지원 등 부모의 소득에 따라 차등적으로 정해지므로 소득이 낮은 가정은 더 많은 지원을 받는다. 아울러 세금 혜택으로 부담을 낮춰주며 지방자치단체에 따라 한부모 가정을 위한 다양한 지원이 제공된다. 학생인 한부모도 소득과 가족 상황 등에 따라 장학금이나 주거 관련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여러 군데에서 나오는 혜택이 다양하여 이를 알지 못해서 혜택을 다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홀로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되는 경우나 한부모 가정 아이를 양육하기에는 한국보다 프랑스의 사회적 여건이 훨씬 좋다는 얘기다. 세금을 많이 징수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이지만 국민을 위한 사회복지제도가 발달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경제 규모는 세계 7위권, 한국은 12-13위권으로 큰 격차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회복지 측면에서는 한국이 프랑스를 따라가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본 연재는 미혼모 아카이빙과 권익옹호 연구소가 한국여성재단 '위기임산부 지원 및 권익증진 사업'의 지원을 받아 기획·제작한 기록입니다.

불문학 전공, 프랑스 37년 거주했으며 현재는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파리 한국문화원 ‘씨네 클럽 꼬레’에서 한국 영화를 소개하고, 한국어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번역가이자 자유기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 임신 중 위기 상황을 경험했거나 위기임신 상담기관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는 보호출산제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소중한 목소리가 될 것입니다. 보내주신 사연이 기사로 채택될 시 소정의 원고료를 지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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