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DB형에서 DC형으로, 억 단위 목돈 지키는 현실적 자산 운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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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곰희의 연금 부자 수업(마지막 회)] 김 부장의 퇴직연금 잔혹사 탈출기

● 임금피크제 등으로 대세가 된 DC형 갈아타기

● 억대 목돈, 방치가 불러오는 수익률 격차

● IRP 활용한 소액 실전 연습과 ‘5분의 1’ 단계별 증액 전략

● 시장 변동 따른 자산별 고유 움직임 몸으로 익히기

● 대체자산, 흔들림 없는 구조 구축이 노후자금 완주의 핵심

지난해에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라는 긴 제목의 드라마가 인기를 끌더니 올해는 또 다른 드라마 ‘김 부장’이 인기를 끌었다. 전자는 우리 주변에 실재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소시민 김 부장을 다뤘고, 후자는 비현실적인 인간병기 김 부장을 내세웠다. 이번 글은 매우 현실적인 김 부장의 얘기다.

요즘 상담을 하다 보면 퇴직연금을 확정급여(DB)형에서 확정기여(DC)형으로 전환했다는 직장인들의 문의가 유독 많다. DB형은 근로자가 퇴직할 때 받을 퇴직급여가 미리 확정된 제도로 회사가 적립금을 운용한다. DC형은 회사가 매년 근로자의 계좌에 퇴직금을 적립해 주고, 근로자가 이를 직접 운용하는 제도다. 금액을 들어보면 적게는 1억 원, 많게는 5억 원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이런 흐름은 필자 주변에만 있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실제 통계를 봐도 DB형에서 DC형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매년 발표하는 ‘퇴직연금 투자 백서’에 따르면,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중 DB형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말 49.7%에서 2025년 말 45.7%로 1년 만에 4%포인트 줄었다. 반대로 DC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을 합친 비중은 같은 기간 50.3%에서 54.3%로 늘어나며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2025년 한 해 동안 제도 전환 등을 이유로 DC계좌로 새로 흘러들어온 적립금만 18조8000억 원, IRP계좌로 흘러들어온 금액은 43조4000억 원에 달한다. 1년 동안 퇴직연금의 전체 규모가 70조 원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가상의 인물, 김 부장을 떠올려 보자. 20년 넘게 한 회사에 다니면서 오로지 회사와 가족만 생각하고 살아온 그는 재테크라고 하면 부동산밖에 몰랐다. 투자 공부는커녕 펀드 하나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다. 그런 김 부장이 갑자기 퇴직연금을 DB형에서 DC형으로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흔한 이유는 임금피크제다. DB형 퇴직금은 퇴직 직전 3개월 평균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해 계산하는데, 임금피크제가 적용돼 월급이 줄어들면 그동안 쌓아온 퇴직금 전체가 낮아진 임금 기준으로 재계산되는 불이익이 생긴다. 반면 DC형은 그해 임금의 12분의 1 이상을 매년 자기 계좌로 받아 운용하는 방식이라, 임금이 높았던 시절의 퇴직금을 미리 확정지어 안전한 곳에 옮겨놓은 뒤, 줄어든 연봉 구간부터는 새로 적립을 이어가는 편이 유리하다. 김 부장처럼 퇴직을 5년 앞두고 임금피크제 적용을 앞둔 시점이 바로 이런 판단을 내리기 딱 좋은 타이밍이다. 이외에도 호봉제에서 성과급제·연봉제로 바뀌어 임금 상승이 정체된 경우, 혹은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져 무급휴직이나 단축근무 가능성이 커진 경우도 같은 이유로 DC형으로 전환을 고민하게 된다.

억대 목돈, 방치가 불러오는 수익률 격차

이유가 무엇이든 DC형으로 전환하고 나면 누구나 똑같은 고민에 부딪힌다. ‘이 목돈을 대체 어떻게 굴려야 하나.’ 요즘 2030세대는 일찌감치 투자 공부를 하며 투자를 일상으로 여기다시피 하니 조금 다를 수 있지만, 김 부장 세대는 여전히 부동산 외의 투자는 낯설다. 아예 투자에는 관심조차 없이 일과 가정, 또는 취미 활동만 생각하며 살아온 이들도 적지 않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2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며 성과급을 받아도 수백만 원에서 많아야 1000만 원대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돈이 들어오기도 전에 소비 계획을 짜는 게 보통의 직장인이다. 그런데 갑자기 억 단위, 심지어 수억 원의 돈을 내가 직접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누구라도 당황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미리 투자 관련 유튜브를 시청하고, 서적을 읽어보며 자기 나름대로 시뮬레이션을 해보더라도, 실제로 계좌에 거액이 찍히는 순간 그 시뮬레이션은 무용지물이 된다.

그러다 보면 큰 부담을 느끼며 얼른 해치워야 할 숙제처럼 여기게 되고, 결국 예·적금이나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로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금융사가 미리 정해둔 대표 상품으로 자동 운용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런 선택이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큰돈을 다루는 데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 만큼, 충분히 공부한 뒤에 운용을 시작하는 편이 서투르게 포트폴리오를 짰다가 엉망이 된 계좌를 나중에 수습하는 것보다 낫다. 앞으로 20년 이상을 굴려야 하는 돈인데 1~2년 늦게 시작하는 게 큰 문제랴.

진짜 문제는 ‘1년만 이렇게 두고 공부해서 제대로 운용해야지’ 해놓고선 몇 년씩 손을 놓고 방치하는 경우다. 실제로 ‘2025년 퇴직연금 투자 백서’를 보면, 적립금의 84%를 실적배당형으로 운용한 수익률 상위 10% 가입자는 19.5%의 수익률을 기록하며 적립금 증가분의 67%를 운용 수익으로 채운 반면, 원리금보장형에 74%를 방치한 하위 10% 가입자는 수익률이 0.5%에 그쳐 늘어난 돈의 대부분이 그저 납입한 원금이었다. 같은 제도, 같은 기간에도 관심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격차를 만든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현실적인 방법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첫째, DC계좌에 목돈이 들어오기 전부터 미리 다른 계좌에서 소액으로 자금 운용을 연습해 보는 것이다. 퇴직금이라는 큰돈을 처음 운용하는 순간부터 시행착오를 겪는 것과 이미 작은 실패와 성공을 몇 번 경험한 뒤에 큰돈을 다루는 것은 심리적으로 전혀 다른 문제다. 소액으로라도 직접 상품을 골라보고, 시장이 출렁일 때 자신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미리 확인해 두면, 실제 목돈이 들어왔을 때 덜 당황하게 된다.

가능하다면 DC계좌와 성격이 유사한 연금저축계좌나 IRP에서 연습해 보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일반 계좌에서는 투자가 가능한 개별 주식, 장내채권, 해외주식 등을 DC계좌에서는 투자할 수 없기 때문이다. DC계좌는 원리금보장상품이나 타깃데이트펀드(TDF), 인덱스펀드 등 실적배당형 상품 위주로 구성돼 있어, 투자 가능한 상품 라인업 자체가 일반 계좌와는 다르다. 그런데 연금저축이나 IRP 역시 DC계좌와 마찬가지로 개별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제한되고 펀드 중심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상품 구조와 투자 방식이 DC계좌와 가장 비슷한 환경에서 미리 손을 맞춰볼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만약 이 타이밍을 놓쳐서 이미 DC계좌에 목돈이 입금돼 버렸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땐 전체 금액을 한꺼번에 굴리려 하기보다, 총액의 5분의 1 수준의 일부 금액만으로 먼저 운용을 연습하며 익숙해진 뒤 점차 비중을 늘려가는 방법을 권한다.

헬스장에서도 처음부터 최대 중량에 도전하는 사람은 없다. 가벼운 무게로 자세를 익히고 몸에 부담을 확인해 가며 서서히 중량을 늘려야 부상 없이 실력을 키울 수 있다. 학창 시절 공부도 마찬가지다. 기본기를 충분히 다지지 않은 채 심화 과정부터 뛰어들면 결국 어딘가에서 무너지기 마련이다.

자금 운용도 다르지 않다. 처음부터 목돈 전체를 움직이려 하면 작은 판단 착오도 크게 다가와 위축되기 쉽지만, 일부 금액으로 먼저 경험을 쌓으면 시장의 흐름과 자신의 투자 성향을 파악한 뒤 나머지 금액도 한결 여유 있게 운용할 수 있다.

클래식 자산 배분 ‘6: 4 포트폴리오’로 시작하라

자산 배분의 시초인 이른바 클래식 자산 배분이라 하는 ‘주식 60, 채권 40(이하 6: 4) 포트폴리오’로 출발하면 좋다. 매우 쉬워 보이지만 막상 실천하려면 간단치가 않다. 하고 많은 주식과 채권 중에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서 투자하라는 것인가.

실제로 주식과 채권 안에는 수많은 결이 존재한다. 채권이라고 해서 다 같은 채권이 아니고 주식도 마찬가지다. 진정한 자산배분 연습은 이 세부 자산의 성격을 하나씩 쪼개어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같은 ‘6: 4 포트폴리오’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어도 내용물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코스피200을 60%, 국채 30년물을 40% 담으면 6: 4 포트폴리오다. S&P500을 60%, 국내 단기 회사채를 40% 담아도 마찬가지로 6: 4 포트폴리오다. 비율만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실제 성과와 위험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국내 주식시장과 장기 금리 변동에 크게 노출된 조합이고, 후자는 미국 주식시장과 환율, 그리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단기채권에 의존하는 조합이다. 즉 비율은 같지만 무늬만 같은 포트폴리오인 셈이다. 자산 배분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몇 대 몇으로 나눴는지’가 아니라 ‘무엇으로 그 비율을 채웠는지’라는 사실을 이 사례가 잘 보여준다.

이처럼 자산을 쪼개어 담은 뒤, 자산시장의 이벤트(금리인상, 환율 변동, 경기침체 우려 등)가 발생할 때마다 “왜 이 자산은 오르고, 저 자산은 내릴까?”를 유심히 관찰하며 기록해 봐야 한다. 각 자산의 고유한 성격을 몸으로 익히는 데만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이 기본기가 쌓이고 나면 비로소 ‘진정한 자산 배분’으로 나아갈 단계가 된다. 바로 주식과 채권 외에 대체자산(리츠, 인프라, 금, 원자재 등)을 추가하는 단계다. 여기서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머리 아프게 대체자산까지 왜 추가해야 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주식과 채권 조합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수익률의 한계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주식과 채권만으로는 인플레이션이나 특정 상승장에서 만족스러운 수익을 내기 어려울 때가 있다. 변동성의 한계도 고려해야 한다. 고물가·고금리가 동시에 오는 특수한 시장 상황에서는 주식과 채권이 함께 폭락하기도 한다. 이때 마음의 불안을 줄이고 계좌를 방어해 줄 방화벽(금, 원자재 등)이 필요하다. 금이나 원자재 같은 대체자산은 주식·채권과 움직임의 상관관계가 낮거나 음(-)의 관계를 가진다. 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휘청거릴 때 계좌의 쿠션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꾸준히 균형 지키며 오래 버티는 자가 웃는다

돌아보면 지난 1년간 열두 번의 원고를 통해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하나였다. 노후자금은 한 번의 결단이나 화려한 한 방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균형을 지키며 오래 버티는 사람에게 웃어준다는 것이다.

매달 다루는 소재는 달랐지만, 그 밑바닥에 깔린 메시지는 한결같았다. 좋은 투자자는 이번 달 수익률이 아니라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1년간 이 지면을 함께 읽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이제 연재는 마치지만, 각자의 계좌에는 앞으로도 수십 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오늘의 등락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만의 원칙을 묵묵히 지켜나가시길 바란다. 그것이 노후자금이라는 긴 시간을 끝까지 완주하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 전 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 프라이빗 뱅커(PB)

● 전 골든트리투자자문 파이낸셜 어드바이저(FA) 총괄이사

● 유튜브 채널 ‘박곰희TV’ 운영(구독자 수 125만 명)

● 저서: ‘박곰희 투자법’ ‘박곰희의 연금부자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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